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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산만들기] 김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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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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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9월 30일(월) 14:19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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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산림 임헌회, 선비의 본분과 배움의 본질을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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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기승(순천향대 스마터아카데미원장·국제문화학과 교수) | ⓒ 온양신문 |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개화와 수구, 친일과 저항, 좌익과 우익, 독재와 민주로 갈라져 치열한 대립과 갈등을 빚는 과정이었다. 국론이 분열되어 민족적 역량을 결집해내지 못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고, 국토는 분단되어 아직도 통일국가를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민족 해체의 위기를 극복하고 역사를 한걸음 발전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정신적 지도자들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천도교계 손병희와 불교계 한용운은 3.1운동을 정의와 인도의 가치를 내세우며 민족의 평화적 독립이라는 방향을 제시했다.
대한민국 시기 천주교계 김수환은 정의와 인권의 가치를 제시하면서 평화적 민주화의 실현을 가능하게 했다. 한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들은 우리사회의 대립과 갈등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역사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19세기 후반 한국 사회는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일 것인지의 여부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다. 보수적 위정척사파 유학자들은 서양을 금수와 같은 무리라고 하여 배척했고, 개화파는 서양과의 교류를 통해 부국강병의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수구파와 개화파의 갈등은 무력 충돌까지 일으키고 외세를 끌어들여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정치지도자들은 권력투쟁에 몰두한 나머지 외세의 침략에 맞서 국론을 통일시키지 못하고 국토를 전쟁터로 만들었으며 끝내 반토막으로 나뉘게 만들어버렸다.
오늘날 사회지도층들의 정치투쟁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지도자들이 자파의 이익을 앞세워 정쟁에 몰두한 나머지 언론계와 교육계 등 사회 전반이 좌우익의 이념 논쟁에 휩쓸려가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방향을 제시하는 정신적 지도자를 찾게 된다.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권력이나 돈에 욕심을 버리고 오로지 학문에만 몰두하는 학자를 ‘산림(山林)’이라고 부르면서 국가지도자로 존경하면서 자문을 받았다. 19세기 후반 산림으로 추앙받던 학자는 바로 아산 출신의 임헌회(任憲晦, 1811~1876)였다. 그는 학식과 덕망으로 당대 최고였다. 따라서 정부에서 수십 차례 벼슬을 하사하였으나 모두 거절하고 오직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였다.
그는 시골에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 8가지를 정했는데, 그 중 4가지는 “관청에 출입하지 않으며, 향교나 서원에 출입하지 않으며, 관장(官長)의 시비를 논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장단점을 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배우는 자는 사람을 사귐에 있어 화합에 힘쓰되, 패거리를 만들어 못된 짓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다.
당시 임헌회는 서학 즉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배척하고 유교적 가치를 고수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위정척사파와 의견을 같이하였다. 그러나 조선정부가 추진하는 개화정책에 대해 집단으로 상소하여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유림의 대표적 지도자가 반개화운동에 참가하지 않음으로써 조선정부는 개화를 통한 근대화의 발길을 내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임헌회가 서울 주변 유학자들의 정치적 실천 권유를 뿌리치면서 자신의 행동 방침으로 내세운 것은 네 가지였다. 첫째 벼슬하지 않으면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둘째 자신의 지위에 벗어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셋째 벼슬자리에 있지 않으면 정치를 도모하지 않는다. 넷째 처녀가 아직 시집가지 않았을 때에는 남편의 집일에 간여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이러한 원칙 아래 그는 유교적 가치를 실천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것만을 자신의 책무로 삼았다. 1857년 아산에 제자들을 모아 가르치는 작은 학교를 만들고 ‘노력재(努力齋)’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는 경건한 마음으로 근본을 세우고, 이치를 끝까지 찾아 앎을 이루고,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배움의 근본 세 가지를 지적한 것인데, 이는 부귀공명을 얻거나 다른 사람과 경쟁하여 이기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이다.
또한 그는 ‘근근(勤謹)’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부지런하고 삼가라’는 뜻이다. 항상 자신이 부족한 듯 겸손한 자세로 부지런하게 배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가르침은 제자들에게만 해당될 뿐만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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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임헌회 위패를 모신 덕성서원(德星書院·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 ⓒ 온양신문 | | 그의 삶은 평생토록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하는 삶이었다. 그는 62세에 스스로 경계하는 글을 써 “어찌 감히 게으를 수 있겠는가! 어찌 감히 게으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중국의 우임금이 73세에 훈계를 들었던 일과 위무가 92세에 경계하는 시를 지었던 일이 있다고 했다. 공자 또한 72세에 주역을 배워야 한다고 탄식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고작 62세밖에 안된 자신이 어찌 감히 게으를 수 있겠는가하고 스스로를 경계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패거리 정치로 오염되었다. 이에 교육의 현장은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여 남을 이기기 위한 실력을 기르는 곳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교육과 배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임헌회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고 가꾸어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항상 배우는 자세로 평생을 살았던 참 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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