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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산만들기] 김일환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3년 09월 23일(월) 17:01 [(주)온양신문사]

 

추재 조수삼의 온양온천 탐방기

↑↑ 김일환 교수(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 연구실장)

ⓒ 온양신문

온양온천은 조선왕조시대에 온천수를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국내 최고의 왕실온천장이었다. 위로는 국왕과 왕실가족들이, 밑으로는 양반사대부에서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탕치(湯治)를 목적으로 찾아왔다. 국왕과 그 가족들의 온천행은 다수의 역사문헌이 남아 있지만 사대부들과 일반 백성들이 어떻게 목욕하였는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중에 사대부들이 남긴 몇몇의 여행기가 남아 있는데, 19세기 조수삼(趙秀三)이 남긴 ‘온정기(溫井記)’는 그 의미가 특별하다. 그 것은 첫째, 영조 36년(1760) 7월에 사도세자가 온궁을 다녀간 후 사실상 국왕과 왕실가족들의 온행은 중단되었다. 이 때문에 온궁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사료가 거의 없는데, 19세기 온양행궁의 변화된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증언하는 자료이다.

둘째, 조수삼은 어려서부터 병이 많아 온천욕을 좋아하였다. 그는 29세(1789)부터 중국으로 가는 연행사(燕行使)를 수차례 수행하는 가운데 북경으로 가는 중도에 지금의 천진(天津)에 있는 계주 행궁이나 봉성(鳳城)의 탕점(湯站)에서 온천욕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천과 희천, 평산, 명천 등의 온천을 한두 번 가보았다. 따라서 당대 최고의 온천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그가 온양온천을 경험하고 기록한 ‘온정기’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조수삼은 그는 나이 73세이던 순조 34년(1834) 8월로 옴(癬疥病)에 걸려 이를 치료할 목적으로 온양온천을 찾았다. 며칠 온천욕을 한 후에 그는 온양온천유람기라고 할 수 있는 ‘온정기’를 남겼는데, 이것은 19세기 전반기 온궁을 비롯환 온양온천의 형편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조수삼이 온양을 찾았을 때 온양온천은 비록 온궁 시설이 낡고 대부분 기울어지고 무너졌지만 그런대로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한다. 역대 국왕이 사용하던 휘장이나 발, 병풍, 서안(書案) 등 기물(器物)마저도 먼지 속에 버려진 채 쌓여 있었지만 사용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조수삼은 당시 온궁의 실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온천 곁에 행궁이 있으며 온천 위쪽에 욕실 전각이 있었다. 행궁 동쪽에는 쓰지 않던 온정(溫井) 두개가 있었다. 이것이 소위 북탕(北湯)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예전 현종 때 신하들에게 개방했던 목욕간이다.

이 목욕탕이 폐쇄된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담장을 두르고 궐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내궁장(內宮墻) 안쪽으로는 시중드는 궁녀와 내시들의 처소, 바깥쪽으로는 호종하던 신하들의 숙소가 두루 잘 갖추어져 총총히 늘어서 있었다.

목욕시설인 탕실(湯室)의 경우는 욕실 전각이 온전하여 남북으로 기둥이 다섯이고 동서 방향으로 기둥이 넷이었다. 바로 12칸짜리 건물이었다. 그 속에 있는 온정의 구조나 수질의 상태와 시설도 완전하여 온정의 깊이는 6자 정도인데 세로는 16자가 되고 가로는 8자가 되었다. 옥돌로 함 가운데를 빙둘러 붙여서 두 개의 온정을 만들었고 욕실도 가운데를 막아 두개로 만들었다. 돌의 재질이 뛰어나고 제작이 완벽하고 치밀하여 조종(祖宗)의 태평성세에 공업이 위대하고 화려하며 규모가 굉장하면서도 질박하였다.

온정의 곁에는 세 개의 구멍이 나 있어 그곳에서 고인물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전각 안쪽의 두 온정을 상탕(上湯), 중탕(中湯)이라 하고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하탕(下湯)이라 하였다. 상탕에서 하탕까지 거리는 10보 정도였다. 온천수는 상탕 서북쪽에서 분출되어 동쪽으로 꺾여 중탕으로 들어가 분출되고 다시 남쪽으로 꺾어져 전각 바깥으로 나오면 하탕이 된다면서 온천의 구조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온천수는 온도가 적당했는데, 처음에는 뜨겁지만 한참 앉아 있으면 따뜻하여 좋아할 만하였다한다. 용출량도 많아 만약 분출되는 구멍을 막아 물을 고이게 해놓으면 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시간에 두 온정에 몇 자 높이로 빠르게 물이 찼다고 한다.

기후나 계절에도 영향을 받지 않아 가물다거나 아니면 겨울이나 여름이라 하여도 수량이 줄어들거나 수온이 변화하지 않았다한다. 온천의 효험도 좋아 조수삼은 머문 지 며칠 만에 병이 나았다한다. 그는 온천의 물을 마셔보았더니 달콤하고 또 약간 유황 냄새가 났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19세기 전반에만 해도 온양온천이 유황성분이 녹아있는 유황온천이었음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하겠다.

한 가지 특기할 것은 사도세자 이래로 왕실의 온행이 중단된 이후 왕과 왕대비 등 왕실 여성들이 사용하던 상탕은 사대부들이나 서민들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정조 대왕이 “나에게 온정에 가라고들 하는데, 백성들도 병을 치유해야 한다. 내가 목욕을 하지 않을 때는 백성에게 주어라. 게다가 매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예비용으로 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제부터 영원히 두 온정의 출입을 금지하는 규정을 풀어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하늘의 은혜로운 물에 함께 목욕을 하여 모두 태평성대에서 천수를 누리게 하라.”고 하였다고 조수삼은 전하고 있다.

조수삼은 이것이 위대한 정조대왕의 성덕(聖德)이라고 칭찬하였는데,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를 위하여 영괴대(靈槐臺)를 축조한 후 온양온천을 백성들의 온천으로 개방하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실이다.

그 결과 귀가 먹은 자, 말을 못하는 자, 다리를 저는 자, 종기나 부스럼이 난 자 등이 지팡이를 짚고 들 것에 실리고 등에 업히고 수레에 실려서 줄줄이 길을 메우며 찾아와 사시사철 빈 날이 없게 되었다 한다.

비록 병이 심한 자라 하더라도 열흘이 되지 않아 누워서 왔다가 걸어서 돌아가게 되었고 신음하면서 들어왔다가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정조대왕의 명 이후에 온양온천은 병든 백성들이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성황을 이루는 서민들의 온천이 되었던 것이다.

위에서 보듯이 조수삼의 ‘온정기’는 온양온천이 왕실온천에서 점차 변모하던 19세기에 그 현황을 잘 알려주는 역사자료이다. 그중 온궁 시설의 모습, 특히 탕실 안에 있는 온정의 구조를 아주 상세히 알려주는 자료로는 역사적 가치가 커서 온궁을 복원한다면 크게 참고할 만하다.

더구나 정조대왕이 영괴대를 축조한 이후 일반백성들에게 온천을 완전하게 개방하여 병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백성의 온천으로 바뀌었다는 사실 등은 온양온천이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신을 실천한 역사적 현장임도 알게 한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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