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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산만들기] 김일환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3년 09월 05일(목) 11:43 [(주)온양신문사]

 

온양행궁 복원의 당위성과 그 의미

↑↑ 김일환 교수(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 연구실장)

ⓒ 온양신문

아산은 천혜의 온천자원을 풍부히 가지고 있는 고장이다. 온양온천, 도고온천, 아산온천이 그것으로 한 지역에 3개나 온천단지를 가진 고장은 국내에서 아산이 유일하다. 따라서 아산지역민들은 아산이 우리나라 온천문화의 일번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온천의 도읍이란 의미에서 이 고장을 ‘천도(泉都)’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1980-1990년대 들어 국민적 레저 붐이 고양됨을 타고 온천을 찾는 인구가 폭증했다. 때마침 지방자치제가 실시됨에 따라 수익사업을 위해 지방마다 온천개발이 붐을 이루었다. 이 결과 전국적으로 우수죽순격으로 온천단지가 난립하게 되었다.

타 지역에서 신규로 만들어진 온천단지는 대규모의 자본이 주도하고 많은 개발비용을 들여 놀이동산식의 테마파크 형태로 개발됐다. 이 결과 많은 유흥객들이 몰려가게 되고, 이미 오래전부터 도심을 중심으로 개발되어 시설이 낙후되었고, 물량적인 면에서 자본의 힘을 이길 수 없는 온양온천은 방문객이 줄어들어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며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아산의 온천산업은 큰 난관에 봉착하였는데 그 해결책의 하나가 온궁복원이다.

온양온천의 역사는 서기 18년 백제 온조 대왕때 ‘탕정(湯井)’이란 지명이 나오면서 부터이다. 그 이후 온천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온양을 찾아왔고 통일신라 때 성덕왕(712), 고려시대에 문종(1082)이 찾아올 정도로 역사적 유래가 깊었다.
이러한 전통이 더욱 확대되는 것은 조선 시대이다. 온양은 조선초기 태조 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대원군까지 국왕을 비롯한 최고 권력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온천지였다.

특히 세종이후에는 왕실가족들 까지 찾는 최고의 온천장으로 자리 잡아 단속적이기는 해도 역대 국왕과 그 가족들이 수시로 온양에 탕치(湯治)를 목적으로 찾아 왔고 이것이 이 지역의 독특한 온천문화를 낳은 바탕이 되었다.

온천욕치료법은 그 치유과정이 일과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통상 10일이상 장기간 머물며 반복적으로 목욕을 해야 효과를 보기 때문에 국왕이 머무는 임시거처로 행궁을 건축하였다.

이것을 온궁(溫宮)이라고 하는데 국왕이 찾아가는 온천마다 행궁을 조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온양은 역대 국왕들이 가장 선호하는 최고의 왕실온천지였기에 온궁의 건립과 축조, 운영이 조선말기 까지 지속된 곳은 온양이 유일하다.

세종은 자신이 직접 도면을 보면서 온양행궁의 건축을 감독하였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국왕뿐 아니라 사대부와 병든 일반백성도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온궁을 축조하였다. 더구나 왕실의 온천행은 간헐적이어서 비워두는 시간이 많아 왕실이 사용하는 일정 공간을 제하면 나머지 공간에서는 일반백성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이러한 온궁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정유재란때 왜병이 북상하여 온양지역을 급습하자 불타고 폐허가 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온궁은 방치되었고 국왕들도 찾지 않았다.

조선후기 국왕의 온천행이 재기된 것은 현종대이다. 현종은 온양행궁을 다시 복구하여 어실 6칸, 탕실 6칸, 草舍를 비롯한 약 1백여칸으로 복원되었다. 이후 숙종, 영조, 사도세자까지 4대에 걸쳐 국왕의 온양온천행은 활발해 졌으며 신정비각이 세워지고 아산지역에 독특한 온천문화를 형성하였다.

사도세자가 방문한 이후 국왕과 왕실가족의 온행은 중단되었지만 정조가 부친인 사도세자의 추억의 장소인 온궁에 영괴대를 설치하고 영괴대비를 세우는 등 각별한 관심을 두어 관리하였다.

이후 1834년(순조34) 온양에 온 조수삼(趙秀三)의 ‘온정기(溫井記)’에 의하면 이 무렵에 행궁은 비록 낡기는 해도 욕실건물이 완전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1871년(고종8)에는 국왕이 정무를 보던 정전(正殿)은 없어졌지만 함락당, 혜파정이 신축되고 대원군이 온천행을 하는 등 여전히 잘 유지되었다. 그러나 1904년부터 일인들에 의해 온궁이 침탈되어 을사보호조약이후에 온궁은 일인들의 손에 넘어가고 온양관(溫陽館)이 지어지면서 온궁은 역사속으로 사라져 갔던 것이다.

이러한 온궁의 역사는 아산지역의 독특한 온천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만 존재하는 왕실문화의 정수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왕이 즐겼던 독특한 목욕문화의 전통이 남아 있는 곳은 아산이 국내에서 유일한 곳이다.

또한 국왕의 온행동안 이루어지는 국왕의 행차과정, 온천신에게 제사하던 온정제(溫井祭)·보사제(報謝祭), 지방산림(地方山林)을 회유하기 위한 정무활동, 지방인재 선발을 위한 문무과의 실시, 현지백성들의 실정을 살피고, 위무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치, 온천을 통한 복지정책의 현장, 아산지역에서 국왕이 행했던 사냥과 같은 레저, 온행 중에 아산지역을 대상으로 지어진 많은 시문(詩文) 등의 문학작품들이 아산지역의 문화적 자산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어 아산은 타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한국온천문화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온천관련 자료의 95%는 온양온천 관련 문헌이다. 그 내용을 보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일성록(日省錄) 등의 관찬사서와 어제(御製), 배종록(陪從錄), 각종 온행등록(溫幸謄錄), 온천일기(溫泉日記) 등이 다수 남아있다. 민간 자료로는 국왕을 수행하던 관리들이 남긴 문헌들과 사대부들이 남긴 수편의 온천여행기 등이 있다. 이렇게 풍부한 역사 문헌속에는 온양온천을 비롯한 아산지역의 온천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풍부한 이야기가 풍부하게 남아있다.

위에서 말했지만 아산지역 온천의 위상이 예전 같지 못한 것을 만회하고 온양온천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국내 수많은 온천단지가 있지만 그들이 갖지 못하고, 흉내도 낼 수 없는 아산만의 유일한 장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산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인 온천문화의 정수가 남아있는 유일한 고장이라는 점이다. 그 정점에 바로 ‘온궁’이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노는 유흥적인 온천만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제는 레저적인 면과 함께 삶의 질을 높이는 스토리텔링적인 요소가 가미되어야 의미있게 생각한다.

이 말은 온천욕을 위해 아산을 찾는 사람들도 온천욕 외에, 아산에 남아 있는 유서깊고 풍부한 온천의 역사와 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역대 국왕들이 온행왔을 때 온궁을 중심으로 생성되고 남긴 이야기가 현재 발굴을 기다리며 숨어 있는 사실이 엄청나게 많다. 민간에서 남긴 이야기도 또한 많이 남아 있다.

이 모든 문화자원은 온양을 제외한 어느 온천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아산만의 자랑스런 문화 콘텐츠이고 경쟁력이다. 온천과 함께 역사와 문화를 보고 배우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어 어린 자녀들에게 교육적 가치와 함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현장이 아산이라면 어떨까?

전통적인 목욕문화에 대한 체험학습으로 최고의 고급한 왕과 왕비의 목욕시설을 보고 왕의 목욕법을 체험해 본다던지, 왕이 즐기던 온천식과 보양식을 먹어 본다던지, 왕실가족이 즐기던 레저를 함께 체험한다 던지, 병든 노모를 치료하기 위해 효도온천행을 실천한 이야기 등을 통해 효(孝)의 가치를 배운다던지, 이 모든 콘텐츠를 찾자면 그 역사문화자원은 무궁무진하다.

결국 온천과 함께 그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를 팔아야만 아산만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온천문화의 상징이 바로 온궁이고, 오늘날 온궁복원은 단순한 역사유적을 하나 복원한다는 정도가 아니고, 아산온천의 활성화와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데 가장 시급한 문화상품인 것이다. 여기에 온궁복원의 당위성과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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