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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메아리] 李太白은 누구인가

2013년 07월 27일(토) 13:33 [(주)온양신문사]

 

↑↑ 리한구 온양신문 대표이사

ⓒ 온양신문

정월보름은 오곡잡곡밥을 먹고 보름달을 향하여 한 해의 풍년과 안영을 기원하는 토속 명절날 이다. “달아 달아 밝은달아, 저기저기 저 달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은(銀)도끼로 찍어내여 금(金)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지여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천년만년 살고싶네” 이시는 이태백을 지칭하여 부르던 가사로서 필자역시 어려서 부르던 노래가 지금껏 잊혀지지 않고 있다.

태백은 청련거사(靑蓮居士)라고도 한다. 시인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 최고의 고전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출생지와 혈통에 관해서는 지금의 사천성(四川省)에서 출생했다는 설이 있다. 5세때에 아버지와 함께 서역에서 이주해왔다는 말도 있다. 아버지가 상인이었다는 말도 있다. 즉 지방의 이민족이었다는 말도 있으나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또한 경제적으로 매우 풍족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25세때까지 일시적인 여행을 했으나 대체로 촉국에서 지낸것으로 알려졌다.

일찍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15세 무렵에는 시문창작에도 높은 기량을 보였다고 한다. 20세 무렵에는 임협(任俠)의 무리와 사귀었으며 칼로 사람을 베었다는 기록도 있다 한다. 또한 익주(益州)의 자사(刺史) 소정(蘇??)에게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동엄자(東嚴子)라는 은자(隱者)와 함께 민산(岷山) 남족에 은거(隱居)하는 등 세속에서 누릴 수 없는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20대 중반에 고향인 촉을 떠나 약 10년간은 안릉(安陵) 지금의 호북성(湖北省)을 중심으로 생활했다함. 27세경 지방의 명문 허어사의 손녀와 결혼하고 맹호연과의 교제도 이무렵에 시작돤 것으로 알려진다.

35세 무렵에는 산동(山東)지방을 중심으로 각지를 돌아다녔으며 40세 무렵 공소부(孔巢父) 배정(裵政) 등 지식인들과 함께 산동의 추라이산 기슭 죽계(竹係)에 모여 술에 취해 생활했다한다. 당시 이를 죽계의 육일(六逸)이라고 했다한다.

이백은 동쪽 낙양(洛陽)에서 두보(杜甫)를 만났으며 두 시인이 만남으로써 서로 그리워하는 아름다운 우정의 시가 탄생됐다고 한다. 두보가 이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으나 그 역시 깊은 관계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였고 이 백의 현존하는 천여수의 작품은 제재나 시의 형태로 보아 중국 고전시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고 한다.

그의 시의 내용을 제재에 따라 자리매김할 경우 대표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여행, 이별, 음주, 달빛, 유선(遊仙) 등 소위 그의 세계관에서 유출되는 일련의 제재라고 한다. 그는 정치가를 지망했으나 장안에서의 방만한 생활과 수군(水軍)에 참가했을 때의 상황에서 정치가로서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했다. 시인으로서의 정치적 능력을 기대하지는 않았다한다.

죽음에 이르러서는 재능을 펼칠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는 심경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62세의 이백은 현령이었던 이양빙(李陽氷)에게 병든 몸을 의탁하고 있었으며 여러해에 걸친 과도한 음주가 그 원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병세가 악화되었으며 11월쯤 이양빙의 손에 시문의 초고를 맡기고 죽었다고 한다. 이백은 지금으로부터 천년전의 사람으로 말(未)년에는 술한잔에 시한수를 지었으며 취중에 물위에 빛인 달빛따라 가다가 물에 빠져 익사했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은 과학이 발달하여 달에도 가지만 예전에는 신비의 세계로 간주했다. 그래서 달에 관한 시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사람은 말하기를 이백은 실존인물이 아니라 가상인물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백(이태백)은 역사상 실존인물 어지러운 세태에 그의 은유가 새삼 떠오른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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