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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메아리] 하륜(河崙)선생

2013년 02월 22일(금) 15:29 [(주)온양신문사]

 

↑↑ 리한구 온양신문 대표이사

ⓒ 온양신문

하륜(河崙)은 고려말과 조선초의 문신으로 자는 대림(待臨)이요. 호는 호정(浩亭)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본관은 진주이며 부사 하윤린(河允麟)의 아들로서 정몽주, 남은, 권근 등과 함께 신진사대부를 형성했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했다.

고려말 초은(憔隱) 이인복(李仁復)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제자로 공민왕 9년 국자감시에 합격했고 공민왕 14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당시 시험관이던 이인복이 하륜의 사람됨이 큰 것을 보고 아우 이인미(李仁美)의 딸과 결혼시켰다.

공민왕 17년 감찰규정에 시보(試補) 됐으며, 이듬해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신돈(辛旽)에 의해 파직됐다가 공민왕 20년 신돈이 사형 당하자 복직돼 영주수(榮州守)가 됐으며, 이때에 김주는 그의 치적을 가장 높이 평가해 보고했다. 최영의 요동 공격 정책을 적극 반대하다가 양주(지금의 양양군)에 귀양을 갔다.

조선초 이성계가 즉위한 뒤 경기좌우도관찰사로 기용됐을 때 계룡산 신도안 건도역사(建都役事)의 부당함을 홀로 역설해 마침내 중지케 했다. 첨서중추원사로 있을 때 당시 명나라 태조가 표사(表辭)의 불근(不謹) 문제로 그 글을 지은 정도전을 소환하자 하륜은 정도전을 대신해 명나라에 들어가 명태조의 오해를 풀었다 한다.

원래 정도전은 야심을 가져 강씨 소생을 이성계의 후계자로 추대케 하고 그 후계가 왕이 되면 그를 종용해 북벌(명나라)을 감행하려는 야심 있는 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 후에도 명나라에 자주 왕래해 외교에 공이 컸다고 한다.

대조 7년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충청도 관찰사로서 군을 이끌고 서울에 이르러 이방원을 도와 난을 평정하고 공을 세웠다. 정종이 즉위하자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돼 정사(定社) 1등공신에 오르고 진산군(晉山君)에 피복됐으며, 이듬해 우정승이 됐다.

제1차 왕자란의 원인이 된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피살됐다. 태종이 즉위하자 진산부원군 좌명(佐命) 1등공신에 책봉되고 태종 2년에 좌정승이 됐고 권근, 이첨과 함께 삼국사략(三國史略)을 편찬했으며, 태종 9년에 영의정이 됐다.

태종 16년 70세에 치사(致仕)하며 왕명을 받아 선왕의 능침을 순찰하기 위해 함길도에 갔다가 돌아오던 도중에 죽었다. 문충공 하륜의 묘는 진양군(현 진주시) 미천면의 오방동에 위치하며 진주성 내 영남 포정사 왼편으로 1970년대 세운 출생지 비가 있다고 한다.

정도전과 대립한 하륜은 조선조에서 명에 보낸 외교문서에 명나라를 모욕하는 언사가 있다고 해서 문서작성자인 정도전을 압송하라는 명나라 측의 강경한 요구에 하륜은 정도전을 보낼 것을 주장했으나 1396년 계품사(計稟使)가 돼 명나라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에 정도전의 미움을 사게 되고 이방원과 급속히 가까워져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적극 지지했다. 그 공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으로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졌다. 그 후 진산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시문에 능하고 음양·의술·성경(聖經) 지리 등에 조애가 깊었다고 한다. 후손들은 주로 진주에서 크게 모여살고 있으며, 일부후손들이 전국 각지에 분포 거주하고 있다.

아산에는 인주, 영인에서 일부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당진군 우강에서도 몇 집 살고 있다고 한다. 대략 하륜선생의 후인들은 선생의 기질이 있는 듯 성품이 강경한 편이고 거짓말을 잘 못하고 상대방에게 직언을 잘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사교적면에서 신의성이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신뢰를 받는 편이라고도 한다. 단종복위를 주장하다가 세조의 미움을 받아 죽음을 당한 사육신의 한분인 하위지(河緯地) 선생 때문에 하씨가 문이 평민으로 전락했다 해서 숙주나물(변절한 신숙주를 빗댄 말)을 지금도 하씨들은 배척하고 있다고 한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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