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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락당·혜파정이 온궁중심 돼

⑤ 함락당과 혜파정의 신축

2013년 03월 28일(목) 09:10 [(주)온양신문사]

 

- 정조 이후 방문 뜸해지며 온궁도 쇠락 징후
- 시설 비록 낡았어도 온천 사용에는 문제 없어
- 온천수 용출량 풍부…기후·계절 영향도 없어
- 고종 초에 함락당과 혜파정 등장
- 대원군 즐겨 사용에 일본인들 ‘운현궁기지’로 인식

<편집자註> 이 논문은 지난 2010년 10월 5일에 ‘한국 온천문화 전통의 발견과 창조적 계승―온천학(溫泉學) 정립을 위한 역사학적 모색’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 제2차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수정한 것이다. 이 논문은 아산지역 온천문화의 역사적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조선 말기까지 온양에만 유일하게 남아있던 온양행궁의 건립과 그 변천과정을 고찰한 것이다.


↑↑ 김일환(아산학연구소 수석연구원)

ⓒ 온양신문

정조대에 비록 영괴대를 축조하고 온궁을 관리했지만, 점차 국왕이 온행을 중단한지가 오래되자 온궁은 다시 쇠락했다.

이 무렵 온궁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순조 34년(1834)에 온양온천을 방문했던 추재 조수삼의 온정기(溫井記)가 그 자료이다.

그는 순조 34년 8월 옴이 걸려 치료할 목적으로 온양온천을 찾았다. 그의 온정기는 19세기 전반기 온양온천의 형편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조수삼이 온양을 찾았을 때 비록 온궁이 낡기는 해도 그런대로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역대 국왕이 사용하던 기물(器物)마저도 온전하게 보전되고 있었다.

- 온궁 쇠락했어도 사용에는 문제없었다
당시 온궁의 구조를 살펴보면 온천 곁에 행궁이 있으며 온천 위쪽에 욕실 전각이 있었다. 행궁 동쪽에는 쓰지 않던 온정 두개가 있었다. 이것이 소위 북탕(北湯)을 가리키는데 예전에 신하들에게 개방했던 목욕간이다. 이 목욕탕이 폐쇄된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담장을 두르고 궐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안쪽으로는 시중드는 궁녀와 내시들의 처소, 바깥쪽으로는 호종한 신하들의 숙소가 두루 잘 갖추어져 총총히 늘어서 있다. 비록 대부분 기울어지고 무너졌지만, 휘장이나 발, 병풍, 서안 등 여러 가지 임금께 올리던 기물들은 먼지 속에 버려진 채 쌓여 있어도 사용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탕실의 경우는 욕실 전각이 온전해 남북으로 기둥이 다섯이고 동서 방향으로 기둥이 넷이었다. 바로 12칸짜리 건물이다. 그 속에 있는 온정(溫井)의 구조나 수질의 상태와 시설도 완전해 온정의 깊이는 6자 정도인데 세로는 16자가 되고 가로는 8자가 되었다. 옥돌로 함 가운데를 빙둘러 붙여서 두개의 온정을 만들었다.

- 온정의 구조나 수질 상태도 양호
탕실도 가운데를 막아 두개로 만들었다. 그 곁에 세 개의 구멍이 나 있어 그곳에서 고인물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전각의 벽 밑으로 나오기 때문에 안쪽의 두 온정을 상당(上湯), 중탕(中湯)이라 하고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하탕(下湯)이라 했다. 상탕과 하탕의 거리는 10보 정도였다. 온천수가 상탕 서북쪽에서 분출되어 동쪽으로 꺾여 중탕으로 들어가 분출되고 다시 남쪽으로 꺾어지면 바깥으로 나와 하탕이 된다면서 온천의 구조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온천수는 그다지 뜨겁지 않아 처음에는 뜨겁지만 한참 앉아 있으면 따뜻하여 좋아할 만 했다 한다. 용출량도 많아 만약 분출되는 구멍을 막아 물을 고이 게 해놓으면 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시간에 두 온정에 몇 자 높이로 찼다고 한다. 기후나 계절에도 영향을 받지 않아 가물다거나 아니면 겨울이나 여름이라 해도 수량이 줄어들거나 수온이 변화하지 않았다 한다.

- 왕실여성들이 사용하던 공간까지 정조가 개방
한 가지 특기할 것은 왕실의 온행이 중단된 이후 왕과 왕대비 등 왕실 여성들이 사용하던 상탕마저 정조가 개방토록 해 백성들이 자유롭게 목욕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귀가 먹은 자, 말을 못하는 자, 다리를 저는자, 종기나 부스럼이 난 병자들이 지팡이를 짚고 들 것에 실리고 등에 업히고 수레에 실려 줄줄이 길을 메우며 찾아왔고 사시사철 빈 날이 없게 됐다 한다.

정조 이후 온양온천은 병든 백성들이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성황을 이루는 서민들의 온천이 됐던 것이다. 온천욕의 효험도 좋아 비록 병이 심한 자라 하더라도 열흘이 되지 않아 누워서 왔다가 걸어서 돌아가게 됐고, 신음하면서 들어왔다가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갔다한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고종 초에 이르면 온양행궁에 큰 변화가 확인된다. 고종 초반에 간행된 온양군지에는 이전에 보이지 않던 함락당(涵樂堂)과 혜파정(惠波亭)이라는 이름의 새로 지은 건물이 온궁에 나타난다.

함락당은 12칸이고, 혜파정은 10칸이라고 하였다. 나아가 1871년에 발간된 온양군읍지에는 내정전, 외정전은 이미 폐전(廢殿) 됐음과 함께 함락당은 16칸, 혜파정은 14칸으로 더 확장 됐음을 밝히고 있다. 단 탕실은 12칸으로 남아있었다.

- 함락당·혜파정은 대권군 관련 추정
이 사실은 당시 내, 외정전이 사용이 불가할 정도로 퇴락해 건물이 사라졌음을 보여주고, 대신에 위 함락당과 혜파정이 온궁의 중심 건물이 됐음을 말해준다.

이 두 개의 새로운 건물은 대원군과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국왕 고종의 생부로 정치적 실권자였던 대원군은 덕산에 있는 부친 남연군의 묘소에 성묘를 가면서 온양에 자주 왔던 것이다. 고종실록에는 대원군이 온양에 행차한 기록이 있으며 부인인 부대부인(府大夫人)이 온양과 덕산에 행차했다는 사실도 나온다. 이들이 온양에 머물 때 숙소로 사용키 위해 지어진 것이 함락당, 혜파정이었던 것이다.

당시 대원군은 최고의 정치 실력자이기는 해도 명분상 국왕이 아니므로 온궁을 수리 복원해 사용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대원군 부부가 실제로 온양에서 온천을 즐겼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온궁 안에 숙소를 지은 것으로 보아 온천을 즐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때문에 1904년 이후 일본인들이 온궁 탈취를 기도할 때 이곳을 대원군의 ‘운현궁기지(雲峴宮基地)’라고 인식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 따라 파생된 것이다.

이후 1926년에 일본인이 경영하던 경남철도주식회사가 이곳을 인수해 온천여관인 신정관(神井館)을 짓고 발간한 안내책자에서도 이곳이 대원군이 온궁에 남은 전각의 일부를 보수해 별장으로 사용한 곳이었다고 했다.
그 중 혜파정은 신정관을 지을 때까지 문과 객실이 남아 한식 여관으로 개조됐다고 한다.

<정리 임재룡 기자>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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