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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석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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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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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1월 15일(화) 16:53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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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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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천경석(온양고 교사 / 아산향토연구회) | ⓒ 온양신문 | 1997년의 외환위기 이전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지간한 모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여러 행사에도 참여도가 높았고 서로 돕고 어우러져 함께 하는 일이 많았다.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마음이 열려 있었고 지갑도 어렵지 않게 열렸다.
그런데 누적된 구조적 문제 위에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외환위기가 초래되었을 때 정책 결정자들 중에서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고 애먼 시민들이 엄청난 고난을 겪었다. 그래도 마음 착한 사람들은 고이 간직했던 금반지를 꺼냈다. 그러나 그들이 낸 세금은 그들보다는 엉터리 경영을 한 기업이나 은행을 살리는 데에 대부분 쏟아 부어졌다.
그 뒤 그들을 알뜰하게 보살피는 정부나 기업은 없었다. 사람들은 갑자기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리만 작동하는 황량한 벌판에 내팽개쳐졌다. 혼자서 혹은 자기네 식구들끼리 알아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가정이 파탄 났다. 국민들이 사줘서 성장한 알토란같은 기업들이 헐값에 투기자본에게 넘어갔다. 구조조정, 해고, 실업, 비정규직, 이혼, 노숙, 자살 등 무서운 일들이 지속되었다.
이 과정을 겪거나 보면서 사람들은 마음이 닫히기 시작했다. 서로가 어려우니 남을 도와주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우리 식구만, 나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잘 살게 해주겠다는 말에 어이없이 현혹되었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적 경제위기가 지금까지 지속되어 여전히 삶이 고단하다. 언제쯤 시민들의 마음이 열리고 함께 웃어가며 살 수 있을까?
서론이 길어졌다. 송악면 동화리에 있는 어떤 분의 묘에 다시 찾아갔을 때 안타까움이 커진 탓이다. 동화1리 덕대울 마을 서쪽 새터 옆의 산에 강태건(姜泰建, 1878~1952) 묘가 있다. 원래 덕대울 동쪽 안터에 모셔졌다가 1979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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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온양신문 | | 강태건은 한말과 일제 강점기 초기에 유생계열의 항일민족운동인 항일의병투쟁과 독립의군부 활동을 하신 분이다. 을사늑약 이듬해인 1906년 5월의 홍주의병에 곽한일, 남규진 등과 함께 참여하여 분전하였으나 패한 뒤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후 1912년에 조직된 독립의군부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또 붙잡혔다. 재판을 받으며 8개월간 구류 생활을 한 뒤 풀려나 고향에서 칩거했다.
그런데 1983년에 세워진 이 분의 묘비를 읽다가 이 분의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특이한 기록이 눈에 띄었다. 아버지 강호선(姜浩善, 1841~1907)과 관련해서는 ‘갑오창의(甲午倡義)’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족보를 빌려 봐도 비문과 마찬가지로 딱 이 네 자만 기록되어 있다. 대개 동학혁명, 특히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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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온양신문 | | 그러나 아들 강태건이 유생들의 민족운동이었던 의병과 독립의군부 활동을 한 것으로 보아 농민군 쪽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관군, 일본군과 함께 농민군을 진압했던 유회군일 가능성이 높은데 구체적 사항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한편 강태건의 4남4녀 중 장남인 강인식(姜仁植, 1897~?)도 독립운동에 나섰다. 3.1운동을 목격하고 ‘나라가 무너지고 임금이 없어졌는데 이런 세상에서 남아가 초야에서 헛되이 늙을 수는 없다.’고 하며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갔다. ‘항우도강지년’이라고 했으니 24세 때이고 1920년의 일이다. 그러나 이후 돌아오지 못하고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대단한 공적을 남기지 못해서인지 공적을 증명하지 못해서인지 강태건은 독립운동유공자로 포상되지 못했다. 아들 강인식은 입던 옷으로 가묘를 만들게 되었고 계자(양자)가 생일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비록 대단한 공적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2대 또는 3대가 나라를 지키고자 싸웠고 망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다. 그런 사실이 족보와 비문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세상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자기만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시 되고 이익이 안 생기면 움직이지 않으며,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에 이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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