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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열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2년 12월 13일(목) 16:31 [(주)온양신문사]

 

백범 김구가 아산을 찾은 까닭은?

역사적 위인의 경우 그가 들렀던 곳은 모두 명소가 되곤 한다. 표지석이 서고, 많은 사람이 그곳을 찾아 위인의 정신을 되새긴다. 백범 김구라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민족독립과 민족통일의 상징이 아닌가.

백범이 아산을 찾은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된 1898년으로 그가 스물셋 되던 해였다. 당시 백범은 치하포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인천감옥을 탈옥해 삼남(三南)지방 기행을 하고 있었다.

황해도 해주 텃골의 넉넉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난 백범은, 열심히 글공부를 해 과거에 급제하는 꿈을 키우면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부정부패가 만연한 조선왕조 말기의 과거시험은 백범의 합격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는 고향에서 풍수와 관상책을 보며 소일하다가 동학(東學)에 깊이 빠져 들었다. 1894년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 당시 산포수들을 이끌고 ‘아기 접주’로 활약했으나, 일본군의 화력 앞에 동학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백범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 유학자 고능선과 친교를 맺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나라를 찾기 위해 떠났고, 청나라로 가 의병이 되었다. 그러나 봉기 계획이 사전에 발각돼 거사는 실패했고, 백범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치하포 사건이 일어난 것이 바로 이 때다. 그는 주막에서 조선옷으로 변복한 일본인을 발견했다. 백범은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은 보통 장사꾼이 아니다. 이렇게 수상한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모(國母)를 살해한 일본 군인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새벽에 백범은 복수를 위해 일본인 쓰치다를 죽였다.

↑↑ ▲아산 음봉의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묘소에 있는 신도비

ⓒ 온양신문

백범은 이 사건으로 결국 인천감옥에 수감됐다. 그러나 2년이 채 못 지나, 그는 근대 최초의 탈옥수가 됐다. 그리고 또다시 도망자 신세로 유랑의 길을 떠났고, 공주 마곡사를 거쳐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아산 배암밭 동네에 들어가 충무공 이순신의 기념비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둘러보았다’(‘백범일지’ 중에서)

그가 아산에 들른 것은 바로 배암밭 동네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기념비 때문이었다. 배암밭은 지금의 염치면 백암리의 옛 지명으로, 이곳에는 현충사(顯忠祠)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백범의 기억도 약간 부정확해 보인다. 백범의 삼남기행 일정을 자전거로 순례한 이규봉 교수도 지적한 것처럼, 현충사 내에는 기념비가 없다. 백범이 본 것은 현충사로부터 약 9km 떨어진 음봉면 삼거리의 이충무공 묘소에 있는 신도비(神道碑)일 것이다.

백범의 충무공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그는 삼남기행 길에 아산 이충무공 묘소 외에도 전남 해남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고금도의 충무공 비각(碑閣)에도 참배했다. 그 뿐만 아니라 기나긴 망명 시절을 겪고 환국한 이후 삼남지방 순회에서도 충무공 유적지를 찾는 걸 잊지 않았다.

↑↑ ▲고금도에 있는 충무사(忠武祠)

ⓒ 온양신문

한산도 제승당을 방문했을 때는 떨어져 있는 현판을 보고 다시 달게 하기도 했다. 또한 그가 붓글씨로 쓴 글씨 중에 이순신의 <진중음(陳中吟)>이 많다고 하니, 이 역시 충무공에 대한 그의 깊은 존경을 보여주는 증거다.

충무공과 백범 둘 다,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민족의 앞날을 걱정한 위인이었다. 백의종군의 결의와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자청했던 희생정신은 서로 맞닿아 있다. 그 두 사람이 시간을 초월해 1898년, 아산이라는 공간에서 영혼으로나마 만났던 것이다.

충무공의 고향으로서 자부심을 갖는 아산이니만큼 애국애족 정신의 계승자로서 백범의 발자취를 기억해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더불어 충무공의 숭고한 나라사랑이 백범을 비롯한 일제강점기 민족 독립운동가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다각도로 조명해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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