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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석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2년 11월 07일(수) 14:23 [(주)온양신문사]

 

외암리 골말의 석각 유서 이야기

↑↑ 천경석(온양고 교사 / 아산향토연구회)

ⓒ 온양신문

올해는 좀 늦어졌지만 이제 곧 음력 10월이 되니 시제를 지낼 때가 다가온다. 시사(時祀) 또는 시향(時享)이라고도 한다. 우리 고장에서는 ‘시제 지낸다’, ‘시제(시향) 올린다’, ‘시제 모신다’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그 대상이 되는 묘소를 시제묘, 시제총이라고도 하고 ‘시제 잡숫는 묘’라고도 한다. 5대조 이상의 조상님 묘소를 찾아 제를 올리는 시제는 범위나 규모에 있어서 명절 차례와는 차원이 다른 묘제(墓祭)가 된다. 한식 때 지내는 집안도 아직 좀 있다고 하지만 요즘은 대개 음력 10월에 지낸다.

내력이 오랜 집안은 곳곳에 시제묘소가 있어서 여러 날에 걸쳐 이곳저곳을 다녀야 하는 큰 행사다. 교통이 불편했던 예전에는 거의 한 달 정도가 걸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요즘은 납골묘도 많이 생기고 종중 묘소에 모으는 경향이 있어서 예전보다는 아주 편해진 것이 사실이다.

시제 자체의 의미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제에 참여하는 것은 가문 내부에서의 위상과도 관련되기 때문에 때론 예민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실 그런 문제는 조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조상을 통해 자신의 위상과 영향력을 확인하거나 과시하고자 하는 측면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벌초(금초)도 어려워지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조상의 묘소를 극진히 여기고 관리하는 분들이 더러 계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을을 다니다 보면 묘소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알게 되기도 하는데 가슴이 찡한 경우도 있다.

외암민속마을 남쪽, 강당골 가는 방향으로 직선거리 400m 쯤의 지점에 내 건너에 ‘골말’이라는 곳이 있다. 작은 골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후기에는 ‘열승정리’로 기록되었던 곳이고 요즘도 ‘열승젱이’라는 지명으로도 남아 있다.

외암마을의 예안이씨 입향조인 이사종이 평택진씨 진한평의 맏딸과 혼인한 뒤 들어와 한동안 살았던 마을이다. 그는 이후 현재의 외암마을 건재고택 자리에 새로 집을 마련하고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어쨌든 이 골말에는 아들이 없어서 지금까지도 외손봉사를 받는 진한평 내외의 묘소가 있다.

↑↑ 골말의 석각 유서

ⓒ 온양신문

그런데 그 골말의 서쪽 산줄기 끝자락 숲 속에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바위 한쪽 옆을 세로로 약간 길게 네모꼴로 다듬고 글씨를 새겨 놓았다.

先祖三代塋域替主他姓故(선조삼대영역체주타성고)
吾常時念願中五五五0坪(오상시염원중5550평)
竭力購買傳之子孫(갈력구매전지자손)
檀紀四三0二년三月(단기4302년3월)
進士公五代孫用友遺書(진사공5대손용우유서)

[선조 3대의 묘역이 타성으로 주인이 바뀐 고로 내가 (그곳을 되찾기를) 항상 염원하던 중에, 있는 힘을 다해 5,550평을 구매하여 자손에게 그것을 전한다. 단기4302년(서기 1969년) 3월 진사공 5대손 이용우 유서]

↑↑ 골말의 석각 유서

ⓒ 온양신문

이 석각 유서를 남긴 이용우(1904~1982)는 지방행정사무관을 지냈다고 한다. 그의 5대조 ‘진사공’은 예안이씨 외암리 입향조 이사종의 셋째아들이자 수원온양파의 주류인 장악원공파 파조 이단의 6대손 이하주(李夏胄, 1714~1756)를 말한다.

그는 영조 20년(1744)에 생원시에 급제한 인물이다. ‘선조 3대’는 이단의 4대 종손 이배(李培), 5대 종손 이운병(李運炳), 그리고 6대 종손 이하주를 가리킨다. ‘5,550평’은 이 석각 바위가 있는 산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용우는 이하주의 직계 종손은 아니다. 그러나 조상의 묘가 있는 산이 언젠가 어떤 연유에서 다른 집안으로 넘어간 것을 부끄럽고 죄스럽게 여기며 절절히 마음에 새겼다가 어렵사리 사들인 뒤 앞으로 절대 남에게 팔지 말도록 자손들이 명심하게 하기 위해 1969년에 이 바위에 그런 내용을 새겨 놓았다.

자신의 뜻을 강조하기 위해 글씨에 붉은 색을 칠했던 흔적이 윗부분에 일부 남아 있기도 하다. 아주 간절하였기에 끝부분을 그냥 ‘서’라 하지 않고 ‘유서’라 하였을 것이다.

세상살이가 힘들어서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묘소에 관심을 갖기도 쉽지 않은 요즘 기준으로 여러 대 위의 조상 묘까지 신경 쓰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바위에 새겨 전할 정도의 절실한 마음으로 조상 묘가 있는 땅을 되찾았던 43년 전의 일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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