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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승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2년 08월 16일(목) 13:53 [(주)온양신문사]

 

아산의 문장가 정두경, 제왕의 리더십을 논하다

↑↑ 김기승(순천향대 스마터아카데미원장)

ⓒ 온양신문

19세기에 이호빈(李浩彬)이 편찬한 <<신정아주지(新定牙州誌)>>에는 ‘문장(文章)’이라는 편목에 용암(勇菴) 윤지복(尹之復), 민사성(閔師聖), 공희성(孔希聖),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서봉(西峰) 이진행(李震行), 정운붕(鄭雲鵬), 강취무(姜就武) 등 8명의 문장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중에서 정두경, 차천로, 정운붕 세 사람은 타향에서 아산으로 와서 살았고 나머지 다섯 사람은 대대로 아산에 거주했다고 했다.

아산의 읍지를 편찬한 이호빈은 아산을 ‘문물(文物)의 고장’이라 하여 문화적 자긍심을 가졌는데, 그 구체적 증거로 8명의 문장가를 소개했던 것이다. 이 중에서 차천로와 정두경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평가받았다. 송도 출신의 차천로는 시로 유명하여 그의 시는 ‘송도삼절’의 하나로 손꼽혔다. 그가 어떻게 아산의 문장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차천로가 선조 대에 활동하였다면, 그에 뒤이어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활약했던 인물은 정두경이었다. 송시열과 안정복은 정두경을 인조와 효종 대 최고의 문장가였다고 평가했다.

정두경은 병자호란 후 몇 년간 아산에 은거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아산 사람들은 16세기와 17세기 문단을 대표했던 차천로와 정두경 두 사람을 ‘아산의 8문장’으로 존경하면서 아산의 자랑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졍두경(1597~1673)은 본관이 온양이며 시인과 문장가를 다수 배출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백사 이항복의 제자가 되어 학문을 배웠는데, 유가서과 도가서를 비롯하여 병법서 등 제자백가서를 두루 섭렵하여 사상과 학문의 폭이 매우 넓었다. 지독한 독서광으로 알려졌다.

순암 안정복은 정두경을 평하기를 ‘성품이 진솔하고 구애됨이 없었다’고 하면서 사마천의 <<사기>>를 거의 1만번이나 읽었다고 하였다.

권유(權愈)라는 학자가 정두경이 <<사기>>에 밝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였다. 정두경이 글을 읽으라고 해서 읽다가 의심나는 바를 질문하니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라고 반문하였다. 이에 권유가 이러한 말 같다고 대답하였더니 정두경은 ‘좋다’고 하였다. 매번 질문할 때마다 ‘좋다’는 말로만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머리를 숙이고 글을 읽고 있다가 마지막 편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정두경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정두경이 윗목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가 권유와 눈이 마주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고도 좋구나 글 뜻은 굳이 알 필요가 없고, 그저 많이 읽기만 하면 된다.” 권유는 정두경의 이 말을 듣고 글이란 다독(多讀)을 통해 문장에 능숙해지는 법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두경은 뜻을 생각하지 않고 읽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아 다독을 습관화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가 되었던 정두경은 글로 인조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실패했다.

그는 문과에 급제한 후 북방 변경 지역의 무관으로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면서 국방의 위기가 직면해 있음을 깨달았다. 이에 그는 39세인 1634년 <완급론(緩急論)>을 올려 인조의 생부 정원군(定遠君)의 추숭 문제를 둘러싼 예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북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무비(武備)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기 직전에는 <병자소(丙子疏)>를 지어 ‘무비(武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의 상소는 인조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병자호란이 발발하였다. 이에 그는 아산에 은거하면서 인조 대에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아산에서 정두경은 올바른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 끝에 이를 중국 역사 속에서 선정(善政)을 베푼 성공한 제왕과 실정(失政)을 한 실패한 제왕을 선정하여 감계(鑑戒)로 삼고자 했다.

그는 중국 역대 임금의 생애를 기록하고 성공과 실패한 이유를 썼으며, 마지막에는 그와 관련 시를 시경에 발췌하여 수록하였다. <<시경>>의 시를 활용하여 임금에게 완곡한 말로 권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름을 <시풍(詩諷)>이라고 했던 것이다.

정두경이 <시풍>을 바치자 효종은 감동하여 정두경에게 선물을 하사하였다. 이후 정두경은 효종에 의해 중용되었고, 효종에게 여러 차례 충간을 하였다. 그리고 <시풍>은 허목과 최석정을 비롯한 많은 학자로부터 명문장으로 평가받았다.

17세기 최고의 문장가 정두경에게 있어 아산은 그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대표적인 작품 <시풍>을 만들어 나라의 문풍을 새롭게 했던 장소였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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