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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 메아리 안성준(온양출신) 잊을수 없는 선생님
"이 시대에 '참된 스승'이 있을까?"를 운운하면서 '스승과 제자'가 아닌 '선생과 학생'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함부로, 아주 함부로 해대는 사람들이나 일부 지역 일부 계층에서나 있을 법한 과외나 촌지 문제를 대대적으로 기사화하여 전 교단 풍토를 매도하기 일쑤인 언론 매체의 떠들썩함을 접할 때마다 분노를 금할 수 없는 심정이 되곤 한다.
그것이 내가 교사이기 때문이 아니다. 진정 제자들을 사랑하는 우리 동료들의 숨은 노고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도 아니다.
다만 나와 내 친구들을 바로 서게 해 주셨고, 오늘의 나로 만들어 주신 존경하는 우리 선생님, 잊을 수 없는 은사님을 생각하면서 스승과 교단을 함부로 평가절하하려는 세상에 대해서는 분로를, 선생님께 대해서는 송구스런 마음을 가눌수가 없다. 고
등학교 2학년이 끝날 무렵, 선배님들의 졸업식 축하를 위해 몰래 만들어진 술자리에서, 용서받기 어려웠던 실수를 저지른적이 있었다. 나는 두려움과 암담함으로 몸 둘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경찰과 학생과로부터 퇴학처분을 내리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지라, 그 충격과 좌절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그때, 우리 선생님의 평소 말씀과 엄격하신 듯 하면서도 너그러운 포용력에 의지하여, 희망과 목숨을 걸고 구원을 청할 수 밖에는 없었다. 선생님댁 대문 앞에서 용기를 내어 '선생님!'을 부를 때의 간절함 한참이 지난 후의 부드러운 목소리 "들어오너라!"가슴 깊이 느껴지던, 짧지만 간곡하셨던 훈계의 말씀..나는 그 순간들의 느낌과 그때의 말T,a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고, 감사의 마음으로 평생을 간직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나는 교사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선생님은 내가 닮아 가야 할 '큰 바위 얼굴'이셨다.
지켜보는 선생님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한시도 헛되이, 함부로 살게 되지 않으셨다.
성실한 모범생이 된 나의 눈에 비치는 선생님은, '직접 가정방문을 하면서 생활지도를 하실 적에, 한끼의 점시도 신세지지 않으시려고 자전거에 도시락을 싣고 다니시던 근검하고 청렴하시던 모습, 뒷산에서 식사를 하시고는 학생의 집에 들러 학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학생과 학부형을 설득하시느라 열심을 다하시던 애절하기까지 보이던 깊으신 사랑, 가난하던 시절에 박봉을 헐어 제자의 학비를 도와주시던 관대하신 배려, 사춘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들, 결손 가정에서 우울한 날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끊임없는 대화와 관심으로 희망을 잃지 않게 붙들어 주시던 영원한 우리의 우상...'우리의 한결같은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선생님을 닮고 따르기에는 아직도 넘나 먼데, 우리들은 벌써 그 시절 선생님보다 훨씬 많은 나이가 되었다. 1년에 한번쯤 자리를 마련하여 모셔보는 우리의 영원한 선생님도, 머리숱은 줄어가고 흰머리는 늘어만 가시어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드시더니, 어언 정년을 바로 앞에 두고 계시다.
"이제 모교에 가서 근무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더 늦기 전에 후배들을 위해서도 힘껏 뛰어 봐야지!"하시면서 뿌리를 가다듬어 주시던 우리 선생님! 욕심도 없으시고 영달도 모르시고 그저 겸손하신 우리 선생님! 감히 함자를 입에 올리기도 송구스런, 우리의 영원한 은사님, 손성래 선생님!
'스승의 날'이 돌아오고, 훌륭하신 스승님을 마음속에 고스란히 간직한 행복한 제자는 다시금 옛날을 그리워하면서, 감사하는 마음 속 깊은 그분 닮은 스승 될 것을 꿈꾸어 본다.
어린 제자들의 가슴에, 곧고 바른 평생의 씨앗을 뿌려줄 수 있는 영원한 스승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신 우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만수무강하시고 여전히 우리의 등촉되시어 주소서! <서산시 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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