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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 메아리 이덕일(역사평론가) 온양에 이순신은 없다.
1904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전쟁이 발생하자 러시아는 당시 세계 최강의 전력을 꼽히고 있던 발틱함대를 발진시켰다. 당시 그 어느 군사전문가도 일본함대가 발탁함대를 꺾으리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그러난 1905년 5월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던 발틱함대는 한국의 진해만에 대기하고 있던 일본함대의 일격에 전멸당해 버렸다.
이를 독 일본에서는 '일본해 해전'이라고 자랑스러워 한다.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인도양을 돌아오는 긴 여행에 피로했던 탓도 있지만 어쨋든 큰 승리였음은 분명하다.
이때 일본함대의 사령관이 도오고 헤이하찌로 제독이었다.
발틱함대의 전멸소식에 세계는 놀랬고 일본은 대대적인 전승축하연을 열어 이전승을 자축했다.
이자리에서 한 인물이 도오고 제독을 '영국의 넬슨 제독 같고 조선의 이순신 제독같은 위대한 인물'이라고 치켜 세웠다.
이말을 들은 도오고는 답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영구의 넬슨제독에 비유하는 것은 받아들이겠지만 조선의 이순신제독에 비유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나는 이순신제독의 발끝에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이순신은 세계해군사에서 경이적인 존재이다. 도오고를 일본 해군사의 영웅으로 존경하는 일본인들은 그가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한 이순시에게 경이의 눈길을 보낸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순신은 안중근과 함께 일본인들인 존경하는 단 두명의 한국인으로 분류되기고 하고 가끔 일본인들에게현충사를 찾아 어떤 인물인가를 직접 확인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순신 열기는 정작 이 나라에서는 그이 고향인 온양이 아닌 진해에서 시작한다. 발틱함대를 격침하기 위해 일본함대가 대기했던 진해만에서 열리는 '진해군항제'가 일본의 국화인 벗꽃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진해의 군항제 기간동안 진해로 가는 모든 국도와 지방소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차량으로 상습적으로 정체된다.
그러나 그 한달도 안되어 열리는 온양문화제는 집안잔치로 끝나기 일쑤이다.
교통편으로 따져도 경남 끝자락의 진해와는 비교도 안될 전도의 요지에서 열리는 온양문화제는 외명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잇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온양=이순신, 온양문화제=이순신문화제라는 간단한 등신이 성립되어 잇지 않기 때문이다.
온양은 어느 사이엔가 이순시의 도시, 문화의 도시가 아니라 온천과 술, 그리고 향락등으로 점철된 하류 놀이터로 전락해 버렸다.
게다가 경위도 불분명한 몇몇 관료들의 파워게임적 행태 때문에 이름마저 전국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아산으로 바뀌고 말았다.
막말로 온양문화제에 가려는 관광객들은 고속터미널에서 그리고 온양인지 아산인지 불분명한 중복된 각종 이정표 속에서 헤메야 한다. 그야말로 온양에 오겠다는 관광객을 내쫓지 못해 발버둥 치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웬만한 도시에는 그 도시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이 있다.
도시 입구에서부터 온통 그 인물에 대한 기념품 일색이라서 외지인이 보기에 그 인물 하나 때문에 도시 전체가 먹고산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그러나 그 인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인물이기 일쑤이다. 만약 이순신만한 인물이 있ㅇ면 도시전체가 이순신으로 덮였을 것이 분명하다.
온양에는 이순신 뿐만 아니라 너무나 많은 유적이 있다. 이 유적들은 모두 관광 상품이다. 더 이상 술과 향락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는 문화의 시대이다. 문화의 시대에는 문화 유적 자체가 그 무엇보다도 좋은 상품이다. 온양이 지난 많은 문화유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 특히 일본인들에겐 찾고 싶은 문화유적이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의 70%이상은 일본인 관광객들이다.
제 37회 온양문화제를 계기로 관광 온양, 문화도시 온양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기를 기대해본다. 올해로 서거 400주년을 맞는 이순신 장군도 일본의 국화인 벚꽃 향기에 취해 자신을 추모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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