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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승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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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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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6월 25일(월) 15:26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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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암 조상우의 여섯 아들 태교법
태몽으로 이름 지어 멋진 꿈을 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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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기승 / 순천향대 스마터아카데미원장 | ⓒ 온양신문 | 임진왜란 후 17세기의 국가재건 시기에 온양에 거주하면서 아산의 학술문화를 진작시켰던 인물로는 시암 조상우(趙相禹, 1582~1657)가 대표적이다.
그는 “인애의 실천이 요 임금과 같지 않고, 효의 실천이 순 임금과 같지 않고, 배움이 공자님과 같지 않다면, 이는 자포자기하는 것이다.”라는 신념의 소유자였다.
그는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오봉산(설화산)에 자신의 사재를 털어 정퇴서원을 건립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정퇴서원에는 정암 조광조와 퇴계 이황은 물론 만전당 홍가신도 모셨다. 홍가신이 아산현 출신이지만, 온양과 아산은 별개가 아니라면서 온양의 정퇴서원에 배향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가뭄이 들었을 때 사
방 100리 안에 있는 굶주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는 선행을 베풀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안동으로 피난했는데, 그곳에서도 옛날의 은혜를 갚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그의 선행은 널리 퍼졌다. 말하자면 그는 17세기 아산 지역의 학자와 교육자로 선행을 베푸는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그러기에 온양군민들의 요청에 따라 나라에서 그의 충효를 표창했던 것이다.
조상우는 문집 『시암집(時庵集)』을 남겼는데, 여기에 수록된 「명육남설(名六男說)」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는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여섯 아들에 대한 태몽을 꾸고 그 꿈에 따라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장남 이후(爾後)에 대해서는 낳기 4일전에 꿈을 꾸었다. 한 그루의 푸른 소나무가 부인의 가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백발노인이 말하기를, 이 소나무를 반드시 제거한 이후에 이 아이를 낳으라고 했다. 해산한 후에 문 밖을 내다보니 활이 있었다고 한다. 꿈에 소나무를 없앤 이후(以後)에 아이를 낳으라 했기에 이름을 ‘이후(爾後)’라고 했고, 자(字, 15세의 관례 때 지어주는 이름)는 소나무 ‘송(松)’ 자를 써서 ‘경송(景松)’이라 했다.
3년 뒤 차남 이중(爾重)을 낳기 3일전 꿈에는 서쪽에서 온 손님을 보았다. 머리에 커다란 모자를 쓴 손님이 말을 타고 초가집 밖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선친께서 황망하게 집으로 맞아들여 공경히 접대하고 보내는 꿈을 꾼 뒤 아이를 낳았다. 꿈에 큰 모자를 쓴 귀중한 손님을 맞이하였기에 이름에 무거울 ‘중(重)’ 자를 써서 ‘이중(爾重)’이라 이름 짓고, 자는 모자를 뜻하는 ‘관(冠)’ 자를 써서 ‘경관(景冠)’이라 지었다.
4년 뒤 삼남 이숙(爾?)을 낳기 이틀 전 꿈에는 뒷산으로 놀러갔다가 아주 아름답고 화려한 나비 한 마리가 품속으로 날아왔다. 양쪽 소매를 잡으니 다섯 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광채가 옷 밖으로 환하게 비추는 것이었다. 이에 이름을 날 ‘숙(?)’ 자를 써서 ‘이숙(爾?)’이라고 짓고, 자는 훨훨 날아다닌다는 뜻의 ‘휘(?)’ 자를 써서 ‘경휘(景?)’라 하였다.
6년 뒤에는 사남 이소(爾昭)를 낳는 날 꿈을 꾸었다. 낚싯대를 잡고 마을 뒤의 계곡을 걷고 있는데 푸른 벽돌이 모래 위에 쌓여 있었다. 다가가서 기와를 옮기자 그 속에서 잉어가 뛰어오르는데 입과 수염이 새빨갛다는 것이다. 이에 이름을 ‘이소(爾昭)’라 짓고, 자는 잉어를 보았다 하여 잉어 ‘리(鯉)’ 자를 써서 ‘경리(景鯉)’라 하였다.
7년 후 오남 이한(爾翰)을 낳을 때도 당일 꿈을 꾸었다. 커다란 매가 횃대 위에 앉았다가 높고 낮게 날았다. 선친께서 내게 이 새는 기이한 매라고 하셨다. 이 꿈을 꾼 뒤 마음속으로 기쁘게 생각했었다. 아들을 낳자 이름에 날개 ‘한(翰)’ 자를 넣어 ‘이한(爾翰)’이라 하고, 자에는 날개 ‘익(翼)’ 자를 써서 ‘경익(景翼)’이라 하였다.
8년 뒤에는 육남 이병(爾炳)을 낳았는데, 호남 장흥으로 가서 고모를 뵈었을 때였다. 꿈에 커다란 검은 호랑이가 이불 속으로 들어와서 놀라 이불로 싸서 창밖으로 던졌다. 그랬더니 책을 등에 태운 용마(龍馬)로 변하는 것이었다. 아무도 제어하지 못했는데 자신만이 안장을 얹을 수 있었다. 매화나무에 매어 놓았는데 힘 있게 뛰는 것이 대적할 자 없었다. 이 꿈을 고모에게 말하자 고모께서 오늘 아내가 반드시 뛰어난 아들을 낳을 것이라 했다. 그래서 아이 이름에 잡을 ‘병(炳)’ 자를 써서 ‘이병(爾炳)’이라 했고, 자는 용마가 책을 가져왔기에 문장이 아름답다는 뜻의 ‘장(章)’ 자를 써서 ‘경장(景章)’이라 하였다.
조상우는 75세까지 살면서 부인이 여섯 아들을 낳을 때마다 태몽을 꾸었다. 아들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애정이 있기에 태몽이 꾸어졌을 것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의 자애로운 사랑을 받았던 여섯 아들들은 모두 충과 효를 실천하는 훌륭한 인재로 성장했다.
종2품 동지중추부사 장남은 효행이 뛰어난 선비로 영의정의 추천을 받아 관직에 진출한 후 선정을 베푼 목민관으로 표창을 받았다. 차남은 좌랑 벼슬을 지냈고, 삼남은 정랑을 지냈는데 효행으로 의금부도사에 증직되었다. 오남은 정언을 지낸 것이 확인되며, 육남은 현종 때 급제하여 종4품인 장령에 오른 기록이 확인된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아버지들이 공적 영역의 노동자로 전락하면서 자녀 교육에서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시암 조상우는 평생을 성현처럼 살겠다고 결심하여 지역사회의 젊은이를 교육하고 지역의 학술문화를 진흥시키고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하여 자식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이 되고자 했다.
아버지로서의 태교를 실천하고 평생의 삶을 자식들의 모범이 되고자 했던 그야말로 우리 시대에 다시금 되살려야 할 참다운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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