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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상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2년 06월 21일(목) 17:13 [(주)온양신문사]

 

죽산리를 지나

맹주상

죽산리를 지나
통미를 지나
감밭을 지나
농은리를 지나
납은들고개를 넘어
화산리를 지나
대술을 지나
연리를 지나
불원리를 지나
신양을 지나
칠성바위 삼거리를 지나
계변
가지리
정자나무를 돌아
개골참외가 익는
진외가를 찾아.

<계변 가던 길> 전문

↑↑ 맹주상 / 아산학연구소 운영위원, 시인, ‘아산시대’ 편집위원

ⓒ 온양신문

개골참외가 익는 진외가까지는 60리 황톳길이었다. 철길은 죽산리 마을에서 통미 쪽으로 소로와 나란히 가다가 마을 끝에서 멀어졌다. 끊어진지가 여러 해 된 철로는 시뻘건 녹물만을 내뱉고 있어서 그런지 저녁노을조차도 머물기를 꺼려했다. 철길과 점점 멀어지는 저 소로는 할머니의 친정인 계변까지 붉은 실처럼 풀려 노을 속으로 서럽게 이어진 내 할머니의 길 이었다.

ⓒ 온양신문

길도 주인이 있었다.
죽산리 마을 끝 철로 위에서 통미 쪽으로 난 그 길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냥 철길을 따라 도고 쪽으로 걸었다. 그러니까 꼭 37년 만에 다시 걸어보는 길이다.

그 해 바로 이맘 때인 6월 어느 날 하굣길에 천수와 난 이 철길을 따라 걸어왔다. 중학교에 들어간지가 얼마 되지 않아 날마다 입어야만 하는 교복도 자유스럽지가 않은 데다가 동급생들 끼리도 좀 서먹서먹한 그런 때였다. 그렇다보니 6년을 다정하게 보낸 초동친구랑 그 길을 따라 하교하는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참 오붓한 시간이었다. 그날 이 길은 나에겐 아주 멀리 돌아가는 하굣길이었지만 조금도 지루하거나 멀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오늘 이 철길에서 다시 눈을 감고 가만히 문을 밀어 보니 쇠줄로 단단히 묶어 놓았던 그 아득한 시절의 무거운 문이 조용히 열렸다……

ⓒ 온양신문

천수랑 기찻길 침목을 그렇게 하나하나 밟고 걷다보니 어느새 친구의 하굣길이 끝나는 죽산리에 도착했다. 친구도 바로 헤어지기가 좀 서운했던지 잠깐 집에 들렸다 가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기찻길 아래 작은 초가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 집은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허름한 흙벽돌집 이었는데 구석구석 정리가 잘 된 아주 단란해 보이는 집이였다.

그런데 친구 동생인 세 살배기 여자 아이가 안방에 힘없이 누워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천수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애가 타는 몸짓으로 아이 곁에서 어찌 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두 분이 잠깐 텃밭으로 일하러 나간 사이에 나환자가 먹는 독성이 강한 그 약을 서랍에서 몰래 꺼내 어느새 여러 알이나 먹은 것이었다. 그 시절엔 약이 귀해 장날에 뒷골목에 가 그 약을 구해 집집마다 상비약처럼 두고 종기나 부스럼 심지어는 심한 찰과상에 까지 치료약으로 먹고 또 가루를 내 상처에 발랐다.

아이는 참 귀엽고 예뻤다. 몸은 좀 말라 있었지만 하얀 목은 사슴마냥 길었고 눈은 이슬 먹은 아침별처럼 초롱초롱 했다. 서둘러 온양에 있는 고려병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지만 결국 아이는 싸늘한 몸으로 돌아왔다.

ⓒ 온양신문

그 일이 있고 난 후로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이 철길을 걷지 않았다. 그 친구 집에도 갈 수가 없었다. 그 부모랑 형제들은 어떻게 그 슬픔을 삭히며 살아 왔을까! 천수는 훗날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었다.

몇 해 전에 친구의 부모님은 그 모든 설움을 가슴에 뭍은 채 이 세상을 떠나 그 사랑스런 막내딸 곁으로 돌아가셨다.

그 날처럼 침목 하나하나를 밟으며 천수랑 함께 걸어오던 그 길을 뒤돌아 가 본다. 뒤돌아 간다고 해서 그런 일들이 지워지는 건 아니지만 그 가여운 아이를 생각하면 모든 것을 다 뒤돌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뒤돌릴 수 있는 건 없었다. 침목을 밟고 신승리 쪽으로 걸어갈수록 오히려 기억들이 더 선명해졌다

ⓒ 온양신문

신승리 건널목에서 통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길의 주인은 또 누구였더라? 그래 맞아 완배라는 친구의 길이다. 완배는 아주 내성적이고 참 순진한 아이였다. 완배가 여섯 살 때 보리를 타작하는 호롱기에 손이 딸려 들어가 손가락 세 개가 뭉그러졌다.

하지만 완배는 외딴집에서 살았기에 그랬던지 자기 손가락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친구들이 놀림을 주는 바람에 완배는 그 손가락이 다른 아이들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날부터 완배는 오른손을 옷 속에 늘 감추고 다녔다. 그러다가도 이 길만 들어서면 그 손을 마음껏 펼치고 신나게 집으로 달려갔다. 그래서 이 길은 완배의 길이 되었다. 훗날 완배도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었고 지금은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

완배가 주인인 이 길 끝에서 다시 내 할머니의 길과 만난다. 통미를 지나면 감밭 까지는 나무 그늘 하나 없는 논길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여기 통미에서 꼭 쉬어 가셨다. 어린 내가 걸을 수 있는 거리도 여기까지였다. 할머니 등에 업혀 초여름 낮잠에 들면 뉘엇뉘엇 해가 지는 그 60리길 끝 개골참외가 익는 계변이었다.

우리의 길은 이렇게 외로운 마음은 순하게 삭혀주고 사람은 크게 키웠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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