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천경석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
|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
|
2012년 06월 04일(월) 15:43 [(주)온양신문사] 
|
|
|
황산리에 가본다

| 
| | ↑↑ 천경석(온양고 교사 / 아산향토연구회) | ⓒ 온양신문 | 이제 한 마을이 통째로 사라진다. 내년이면 신창 황산리 마을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경찰대학이 들어선다. 2016년에 옮겨온다. 황산리 일대에 상전벽해의 변화가 시작되어 적어도 200여년 이상 된 마을이 고스란히 사라지게 된다. 사라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하물며 대대로 살아온 주민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으랴. 그 전에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두어 차례 다녀왔다.
지난 2008년 12월에 아산시 신창면 황산리 일원 85만6,083㎡(약25만9천평)가 경찰대학 이전 부지로 결정되었다. 그 후 예산문제로 좀 줄어 78만1,910㎡(23만6천5백여평)로 확정되었고 내년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오는 2016년에 이전 개교할 예정이다.
1981년에 부평의 경찰종합학교에서 개교한 뒤 1983년에 용인 기흥에 자리 잡았던 경찰대학이 이곳 황산리로 오게 된다. 경찰교육원에 이어 경찰대학까지 들어와 아산시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경찰교육의 중심이 된다. 그 이면에는 황산리 마을 주민들의 아픔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신창면 황산리는 현재 1리(황등)와 2리(오산말)로 구분되며 경찰대학이 들어올 곳은 황산1리이다. 황산1리는 대개 ‘황등’이라 부르며 크게 보아 ‘황등’과 ‘안골’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 행정지명으로는 ‘황동리(黃洞里)’라 하였고, 현재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공식자료는 18세기 중반 영조 때에 간행된 『여지도서』의 ‘신창현’조이다.
| 
| | ↑↑ ▲온양 순환로(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남쪽으로 본 황산리 일대의 모습. 사진 왼쪽 뒤의 산이 보갑산이고, 사진 가운데 마을이 ‘황등’, 사진 오른쪽 중간에 보이는 산줄기의 뒤에 ‘안골’이 있다. | ⓒ 온양신문 | | 족보 등 민간자료에 기록이 있을 수 있으나 그 이전 시기의 자료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지지자료’(1911 추정)에는 신창군 대동면의 ‘내황동(안골)’과 ‘외황동’으로 구분되어 있다. 신창현 관아가 있던 신창 읍내리에서는 동남쪽으로 직선거리 3.8km, 온양군 관아가 있던 구온양에서 서남서쪽 직선거리 5.5km 지점에 있다. 북서쪽 직선거리 1.5km 지점에는 창암리 역말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인근 오산리(오산말)까지 세 마을이 합쳐져 ‘황산리’가 되었다. 이후 오산말이 2구로 분구되고 황등과 안골은 황산리1구(황산1리)가 되었는데 대개 그냥 황산리 또는 황등이라고 한다. 인근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었고 주민들도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자부심이 큰 편이다. 한 때 60여 호가 거주했으나 현재는 50여 호로 줄었다.
황산1리에서는 마을 북서쪽, 들 옆의 주영환씨 가옥 1집만 제외하고 기산동의 3집을 포함하여 59호가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현재 확인되는 가장 오래 된 집안은 전주이씨 광평대군파의 서성부정 후손이다. 좀 더 확인이 필요하지만 일단 광평대군파 12세 이현형(李顯亨. 영조41년, 1765년 출생)을 입향조로 본다. 마을에 거주하는 18세 이범섭(66세)씨의 6대조이다. 대략 220여 년 전의 일이며 안골에 자리 잡았다. 안골 바로 뒤의 산자락에 집안 묘역이 있는데 이 묘역도 옮겨야 된다. 한때 집안에서 강력히 반대했지만 결국 옮기게 되었다.
| 
| | ↑↑ ▲안골 위의 전주이씨 묘역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황산리 마을 모습 | ⓒ 온양신문 | | 전주이씨 집안은 주로 안골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다. 황등은 현재 밀양박씨, 신안주씨 등 대략 3~4대 정도 된 몇 집안을 포함하여 각성바지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전주이씨보다 더 전부터 노씨 집안 등이 거주했다고 하는데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내력이 확인되지 않는다.
마을회관 남서쪽 70m쯤의 ‘국유지 공터에 기산리 거리미에 있던 것보다 더 컸던 어마어마한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6.25직후에 누군가 베어서 팔았다고 한다. 적어도 500~600년은 되었을 것이라고 하니 마을의 역사를 간접적으로나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마을 주민이 전하는 말로는 이곳 지형이 용인의 현재 경찰대학 지역과 비슷하다고 한다. 안골이 위쪽은 동향이고 황산1리 전체적으로는 북향이지만 마을에 들어가 보면 매우 안온하고 평화롭다. 오래 된 감나무 등 갖가지 나무들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흙도 참 좋고 논에는 가뭄에도 모를 심을 수 있다.
마을 남쪽에는 보갑산(318.1m)이 있으며 황산리는 대략 보갑산의 북쪽 자락에 자리 잡은 셈이다. 마을 서쪽은 덕암산(260.5m)의 동쪽 산줄기이며 이 산줄기 동북쪽에 오목하게 안골 마을이 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황산리의 남서쪽 산줄기는 봉수단맥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금북정맥에서 갈라진 봉수단맥이 봉수산에서 갈매봉과 곽씨봉을 거쳐 북으로 이어진 뒤 황산리 남서쪽에서 다시 둘로 갈라진다. 동쪽 산줄기는 보갑산, 금암산, 황산, 월라산으로 이어진 뒤 온양 남산 쪽으로 이어진다. 북북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덕암산을 거쳐 맹산, 학성산으로 이어진다.
보갑산에서 덕암산까지의 능선에 있는 작은 봉우리들은 따로 이름이 없다. 그 대신 골의 이름으로 부른다. 안골 입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보갑산 오른쪽(북서쪽)에 세모로 뾰쪽한 봉우리가 보인다. 보갑산과 그 봉우리 사이에 ‘황등 덕고개’, 그 뾰쪽 봉우리의 오른쪽이 ‘안골 덕고개’다. 너머의 송악 수곡리 사람들은 주로 황등 덕고개, 도고 오암리나 화천리, 덕암리 사람들은 수곡리를 거쳐 황등 덕고개를 이용하거나 직접 안골 덕고개로 넘어와서 황산리를 지나 온양장에 다녔다.
뾰쪽 봉우리 오른쪽의 완만한 능선이 봉수단맥 분기점이고 그 북쪽 사면으로 흘러내린 산줄기 둘이 방아다리(알파벳 Y자 모양)처럼 만나는 지점에는 일제 강점기의 ‘금정 구딩이(금점 구덩이)’가 있다. 이범섭씨가 부친에게서 듣기로는 “황등과 안골 사이의 개울에서 사금 채취로 금이 많이 나와서 돈을 많이 벌었던 일본인이 그 금구딩이 파다가 다 까먹었다.”고 한다.
골로는 ‘시엉이 많아서 셩골’이라고 하고 그 뒤의 완만한 능선은 ‘셩골산’이라고 한다.
그 오른쪽으로 고압선 철탑이 있는 오목한 곳은 ‘은골’이고 그 오른쪽 산봉우리는 ‘은골산’이다. 또 그 오른쪽 안골 마을의 뒤(서쪽)에 있는 작은 골은 ‘절골’이다. 예전에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돌부처 전설도 전해진다.
그 아래, 안골 중에서 맨 위쪽의 정중앙에 있는 두 번째 집(하얀 샌드위치 패널 집)이 전주이씨 집안의 실질적 종가였다. 몇 해 전에 온양으로 이사했다. 온양에서 상록학원을 운영하는 이운종씨의 부친 이범상씨가 거주하던 집이다. 원래 종손은 아주 오래 전에 외지로 나간 고 이범준씨인데 유명한(?) 백인엽의 매제이다.
안골 마을 바로 뒤에는 시향을 모시는 전주이씨 집안의 묘소가 있다. 오른쪽(북쪽)에는 골짜기가 둘이 있다. 마을 바로 옆(서북쪽)에 있는 골은 이름도 예쁜 ‘복사골’이고 북쪽의 짧은 골은 ‘동막골’이다. 동막골은 대부분 없어지게 된다. 그 골의 동쪽 산은 경찰대 부지 조성 때 깎아낼 예정이라고 한다. 그 산 동쪽의 ‘제비집 같이 붙어 있는 마을’인 안골 초입 ‘연석골’도 물론 없어지게 된다.
보갑산에서 황등 마을 쪽(북쪽)으로 넓게 흘러내린 산줄기들이 완만해지는 일대는 대부분 밭 등으로 개간되어 경작하고 있다. 위성지도로 보면 황등 마을 뒤(남쪽)로 생각보다 넓은 논과 밭이 있다. 그 가운데로 능선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 능선의 모양에 따라 이 일대를 학 또는 기러기(청둥오리) 형국으로 본다. 기러기는 날아가다가 먹이를 보면 잠시 내려와서 먹고 다시 날아 가버린다.
황등 지역은 마을에 들어와서 3대까지는 부자가 되지만 그 이후에는 까먹기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황등에는 오래 된 집안이 없고 대개 3~4대 정도 된 집안들이 많다고 한다. 어떤 주민은 배의 형국이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이 마을에 샘제사가 있었고 그 대동샘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황산 침례교회’는 60년이 넘은 유서 깊은 교회다. 그 외에도 민속놀이나 3.1운동 이야기, 6.25 때의 아픔 등 필자가 들었지만 이 한정된 지면에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가 아주 많다. 그러나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틈나는 대로 자주 들러서 알아보려고 한다.
| 
| | ↑↑ ▲마을회관 옆 정자에서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신 황산리 주민들 | ⓒ 온양신문 | | 이제라도 황산리 마을의 이야기들을 더 찾아내야 한다. 기록하고 기억할 일이다. 그리고 더 변하기 전에 항공사진이라도 찍어서 남겨 드리는 것이 주민들에 대한 기본 예의일 것 같다. 경찰대학이 들어서더라도 어느 한쪽에 작게라도 기념관 같은 것을 마련해드리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 같다. 그 안에 마을의 항공사진을 크게 인쇄해서 붙여 놓고, 주민들의 생활용품이나 농기구 등도 좀 보존을 해두면 어떨까. 가능하다면 돈이 들더라도 현재의 마을 모형을 만들어서 두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아산시든 경찰대학이든 행정자치부든 누군가가 마을 이야기를 정리해서 주민들에게 드리는 것이 정든 고향을 두고 떠나는 분들에 대한 마땅한 도리라 생각된다. 일부는 이미 마을을 떠나기도 했지만 아직 집단 이주 대상지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분들도 행복한 아산시민으로 지내실 수 있게 되길 빈다.
|
|
|
|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지역정신 온양신문” - Copyrights ⓒ(주)온양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주)온양신문사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온양신문사
|
|
|
|
|
|
|
|
|
|
|
|

|
|
|
|
최근기사
|
|
|
|
|
삼성전자 온양캠퍼스, 친환경 차..
|
|
하이트진로 천안지점, 성금 600만..
|
|
아산시립합창단, 헝가리와 문화예..
|
|
모종중학교, 체험으로 배우는 건..
|
|
충남동부·서부보훈지청, 월남전..
|
|
국방기관 유치 힘쓰고 산업·교통..
|
|
충남도, 재선충병 피해목 제거 ‘..
|
|
“인형극으로 배우는 효, 함께 만..
|
|
충남도, 잇따른 산재 사망사고에 ..
|
|
‘안면도 소나무림’ 산림유전자..
|
|
충남도의회, ‘전기차·산업현장..
|
|
㈜광진기계 방문 화재안전 현장지..
|
|
한올고, 일상 속 사물에서 지식의..
|
|
충남다우리학교, 전통문화 체험으..
|
|
온양고, 2026학년도 신입생 입학..
|
|
쌍룡초 남현우 학생 전국과학전람..
|
|
신창중, 책장을 넘어 작가와 마음..
|
|
숲체험교육원, 가을 곤충과 함께 ..
|
|
호서대, 대학 경영의 중심에 ESG
|
|
기후살인 막는다…도·시군 머리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