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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환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사 공동기획

2011년 12월 20일(화) 08:43 [(주)온양신문사]

 


강양공의 연암산 동심사 망명사건


↑↑ 김일환 /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 대우교수

ⓒ 온양신문

음봉면 연암산에는 고려시대부터 동심사, 연암사, 개현사, 용화사 등 유명 사찰이 많았다. 그 중 동심사(桐深寺)는 ‘고려사’에 東深寺로 표기되어 나오는 오래된 명찰(名刹)이었다. 그런데 동심사는 고려 충렬왕 5년(1279)년, 충렬왕의 맏아들인 강양공(江陽公) 왕자(王滋· ?~1308년·충렬왕 34)가 정치적 문제로 망명 와서 머물던 장소여서 역사 속에 더욱 유명한 사찰이 되었다.

충렬왕은 고려 원종의 아들이다. 당시 40여년에 걸친 대몽항쟁이 끝나고 고려조정이 강화도에서 개성으로 환도한 후 본격적으로 몽골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면서 충렬왕은 세자의 몸으로 원나라 조정에 볼모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원 세조(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와 결혼을 하였고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다. 하지만 고려에 있을 때 이미 신종(神宗)의 손자인 시안공(始安公) 왕인(王絪)의 딸이면서 서원후(西原侯) 왕영(王瑛;충선왕의 제3비인 靜妃의 부친)의 누이인 정신부주(貞信府主) 왕씨와 결혼을 하였고 슬하에 장자인 강양공 왕자와 두 딸인 정녕(靜寧), 명순(明順) 두 원비(院妃)를 두고 있었다.

원종의 사망으로 원에서 돌아온 충렬왕이 국왕으로 즉위하자 그의 몽골부인인 제국대장공주도 남편을 따라 고려로 들어왔다. 충렬왕의 즉위로 첫부인인 정신부주 왕씨는 정화궁주(貞和宮主)로 책봉되었지만, 몽골 출신의 제국대장공주 때문에 왕비가 되지 못하고 후비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정화궁주와 제국대장공주간에는 미묘한 갈등이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 사건은 충렬왕 1년(1275) 9월, 제국대장공주가 원자를 낳았을 때 일어났다. 정화궁주가 공주의 생남(生男)을 축하를 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었는데, 소니(小尼)라는 궁녀가 좌석을 궁전 동편사랑(廂)에 차려 놓았다. 충렬왕이 이것을 보고 공주가 쉬는 침전만 못하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소니가 공주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침전으로 가서 공주가 앉을 평상을 다시 설치하였다.

이 사실을 몽골인 측근이 공주에게 고하면서 평상을 침전에 자리하게 한 것은 정화궁주와 공주를 함께 앉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주는 자신을 정화궁주와 동급으로 대접한다고 격렬하게 분노를 표출하면서 갑자기 자리를 서쪽 사랑으로 옮기라고 명하였다. 서쪽 사랑에는 원래 이전부터 높은 평상(榻)이 있어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자리문제로 기분이 상한 제국대장공주의 시기심은 연회자리에서 폭발하였다. 마침 정화궁주가 술을 부을 때에 왕이 공주를 돌아보았더니 공주가 “왜 눈을 흘겨 나를 봅니까? 궁주가 내 앞에 꿇어앉았다 해서 그러나요?”라고 하면서 연회를 파할 것을 명령하고 궁전에서 내려가며 통곡을 하였다. 그러면서 공주는 “나는 내 아들 있는 데로 가겠다”하고 공주의 가마인 연(輦)을 대령하라고 재촉하였다.

그러자 공주의 몸종이 연을 대령하려 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난 충렬왕이 몽둥이로 때려 쫓아냈다. 이때 공주의 유모도 나서 “공주께서 만약 나가시면 나는 반드시 여기서 죽고 말겠습니다.”고 하면서 제 손으로 목을 잡아 누르며 자살하는 척하자 마침내 공주도 나가지 않고 진정을 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 갈등은 다음해 1276년(충렬왕 2)에 일어났다. 어떤 사람이 몽골의 고위 관리로 고려 내정을 간섭하기 위해 파견된 다루가치에게 무명 편지를 보내 정화궁주를 무고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튿날 다루가치가 이 사실을 왕과 공주에게 보고하였는데, 그 편지는 정화궁주가 왕의 총애를 잃게 되자 무당을 시켜 공주를 저주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분노한 제국대장공주는 심복을 시켜 궁주를 잡아들여 나장(螺匠)의 집에 가두고 궁주의 부고(府庫)를 봉쇄하게 하였다. 사태가 심각하게 전개되자 당시 정치실력자이던 류경(柳璥)이 극력 변호하여 궁주만은 석방되었다.

이 당시 정화궁주는 제국대장공주가 시집 온 후로부터 그녀의 질시를 피하기 위해 항상 별궁에 거처하며 왕과 관계를 끊고 서로 왕래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공주의 투기와 무고사건이 연거푸 터짐에 의해 두 여인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던 것이다.

당시 제국대장공주가 그와 같이 험한 태도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충렬왕 1년에 후일 충선왕이 되는 원자를 낳았다. 그런데 정화궁주의 소생인 강양공 왕자는 원나라의 왕실과 국혼이 시작되기 이전의 전통적인 고려사회에서라면, 당연히 태자로 책봉되어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존재였다.

비록 원간섭기 하에 몽골조정의 위세가 등등하던 시절이지만 몽골 공주가 낳은 아들과 왕위 계승을 경쟁할 수 있는 강양공은 공주에게 늘 껄끄러운 존재였던 것이다. 따라서 공주의 질시가 커짐에 따라 강양공은 심각할 정도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1279년(충렬왕 5) 여름 4월 을미일에 강양공은 세자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부친인 충렬왕의 명으로 충청도 아주(牙州) 연암산에 있는 동심사(東深寺)에 보내졌다. 강양공은 동심사에서 4년을 머물렀는데, 사실상의 유폐와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아산의 동심사를 망명처로 선택한 이유는 어머니 정화궁주의 오빠가 동화사(桐華寺)의 유력한 승려였다는 사실로 보아 외삼촌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동화사는 현재 어느 곳에 위치한 사찰인지 알 수 없다.

유배와 비슷한 긴 망명생활 끝에 강양공은 충렬왕 9년(1283)에 다시 개경으로 소환되었다. ‘고려사’에서는 이때 제국대장공주는 왕자에게 의물(衣物)을 하사하고 그를 강양공에 봉하며 그를 보필하기 위한 관부(官府)를 설치하고 속관을 배치해 주는 등 융숭한 예우를 보여 주었다한다. 이렇게 상황이 반전된 이유가 무엇인지는 기록이 없어 분명치 않지만 제국대장공주와 일정한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져진 결과, 양자 간에 갈등이 해소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아들 강양공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정화궁주의 궁중생활은 불우하였다. 충렬왕 23년(1297)에 이르러 제국대장공주가 병으로 사망하고 공주의 아들이 내선(內禪)을 받아 충선왕이 되었다. 충선왕은 정화궁주의 불행한 삶을 동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부왕 충렬왕과 정화궁주를 봉영하고 수(壽)를 올려 주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늦게나마 충렬왕과 정화궁주는 불우했던 부부관계를 다시 정상으로 돌릴 수 있었다.

고려시대 아산은 수 차례나 몽골의 침략을 받았지만 아산민들의 질기고도 강한 저항으로 몽골군을 물리친 저력을 갖춘 역사의 고장이었다. 마침내 몽골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을 때에는 불우한 망명객을 보듬어 줄 정도로 넉넉한 포용의 공간이기도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강양공이 망명지로 아산을 선택한 것도 반몽의식이 강했던 아산민들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고 짐작된다. 지금 연암산에 있던 동심사의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아직도 그 넉넉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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