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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떠나는 천경석의 향토문화기행 연암산 봉수대를 차자 (1)
오늘날 우리는 다양하고 눈부신 통신 수단 발달을 실감하고 잇지만, 예산ㄹ에는 여러가지의 통신 중에서도 역전제와 봉수제, 파발제가 대표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알고있다.
역은 삼국시대 이래로 조선시대까지 가장 중요한 일상적인 교통, 통신 수단이었고, 중앙집권체제가 갖추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체제를 갖추게 된 방식이었다.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수단인 봉수는 역전제도보다도 훨씬 먼저 시작되엇으리라고 추정되며, 기록상으로는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 10년조에 관련 기록이 보인다.
고려사 권81 병지 의종3년 3월조에 의하면, 서북병마사 조진약의 주청으로 체계적인 봉수제가 정비된 것을 알수 있다.
이때 4구분법을 시행되었던 바, 평시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로 각 1거, 2에는 2거, 3에는 3거, 4에는 각 4거로 올리기로 했으며,
봉수대마다 방정 2명, 백성 20명씩 두고 이들에게 토지 1결 씩을 주었다.
봉수제는 역전제와 마찬가지로 중앙집권체제가 갖추어지면 그 필요성이 더욱 중시되는 것이니,
조선시대에 이르러 대단히 잘 정비된 체계를 갖추게 된다. 조선 세종때 이르러 4군 6진 개척과 더불어 철저히 재정비되었는데,
이때부터 5구분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해안과내지를 구분하여 시행하였다. 그러나 성종때 완성된 조선의 대표적 법적인 경국대전에는 해안과 내지의 구분없이 5구분법으로 시행하였다.
즉, 평시에는 1, 적이 나타나면 2, 적이 경계에 접근하면 3, 경계를 침범하면 4, 아군과 접전하면 5개의 봉화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전국 673개의 봉수대에서는 부사시(평상시 아무일도 없을때)에도 매일 한 차례씩 봉수를 올려야 했으며, 매일 그 지방의수령에게 보고해야 했다.
봉수대가 있는 군, 현의 수령은 매월말에 관찰사에게, 그리고 분기별로 중앙의 병조에 직접보고해야 한다. 물론 유사시에는 즉시 보고한다. 이 모든 사항은 승정원을 거쳐 왕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각 봉수대에는 오장과 봉수군이 있는데, 봉수군은 부근 주민 중에서 신량역천인 을 차출한다.
날씨 등의 이유로 인해 불이나 연기를 이용할 수 없을 때에는 화포, 각성, 깃발을 이용하거나 그도 여의치 않을 때에는 봉수군이 직접 달려가서 전해야 한다.
근무와 감독에 대한 처벌이 엄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어려움 때문에 이미 조선 중기에는 봉수제가 해이해지게 되고, 이를 보완하고자 선고 30년에 파발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5개의 주요 봉수로가 있었다, 제1로는 함경도 경흥에서 서울 목면산, 제2로는 경상도 동래에서 목면산, 제3로는 평안도 강계에서 목면산, 제4로는 평안도 의주에서 목면산에 이르도록 되어 있다.
제5로는 우리 아산을 통과하는 봉수로인데, 전라도 순천에서 시작하여 남해안을 따라 목포쪽으로가서 계속 해안을 따라 군산 옥구에 이르며 여기에서 다시내륙으로 들어와 부여, 공주를 거쳐 우리 아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바로연암산 봉수대를 거쳐 평택으로 전해진 뒤 경기도 해안을 다라 양천 개화산까지 가서 목면산에 전해지게 된다. 전국 어디에서든 서울까지 12시간 안에 전해져야 하는 시간 제한도 있었다고 한다.
음봉면 동암리 중리 마을 뒷산인 연암산에 봉수대 터가 있다. 음봉 삼거리에서 천안방면으로 4km쯤가면 '핀숲가든'이라는 음식점이있고 이곳에서 왼쪽으로 마을에 들어서면 동암1리 복지화관이 나온다. 잘 생긴 느티나무를 보고 왼쪽으로 길을 따라 300m정도 가면 원남리로 넘어가는 길을 새로 포장하는 곳의 콘크리트 옹벽사이로 산에 오르는 길이 보인다. 과히 거칠지 않은 길을 30여분간 가면 정상에 이르게 된다.
마을 분인 김영국씨(64세)에 따르면, 옛부터 전해져 오는 명칭으로 "혼 봉오똑"과 "새봉오똑"이라 했다는 것읻. 말하자면 헌 봉화터(또는 봉화대), 새봉화터라고 볼수 있다. 실제로 연암산 정상부에도 봉수대가 있었고, 동북쪽으로 400m 정도 거리까지 능선으로 이어진 약간 낮은 봉수리에도 봉수대가 있다. 628번 지방도에서 보이는 봉우리에 있는 것이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헌봉수대'이다.
이 곳에 오르면 주변이 훤히 보인다. 남쪽으로는 멀리 광덕산과 망경산에서부터 가까이에는 물망성, 꾀꼴산성가 바로 마주보고 있으며, 동쪽으로느 ㄴ탕정 일대에서 천안까지 동북으로는 직산과 성환, 북으로는 평택과 아산만, 서쪽으로는 고용산에서 영인산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은 수원꺼정 뵌다"고 하니, 참으로 요충지로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나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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