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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승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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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사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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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7일(목) 12:40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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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의 12대손 이세영, 조상의 충의 정신을 계승하여 항일독립운동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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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기승(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장) | ⓒ 온양신문 |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을 때, 한국 사람들은 제2의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임진왜란 초기 한국은 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나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지켜냄으로써 침략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한국인에게 임진왜란은 일본을 물리친 승리의 전쟁이었고, 일본의 야만성에 대한 유교적 도덕 문명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역사적 경험이었다. 이로 인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통치를 받았던 민족적 비극의 시대에 임진왜란은 항일 독립전쟁의 승리를 기약해 주는 역사적 원동력으로 상징화되었다.
특히 이순신은 박은식과 신채호 등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민족적 구국의 영웅으로 신성화되었다. 신채호는 이순신을 단군이 보낸 민족의 구원자이며, 세계의 수군 역사 상 최고의 위인이라고 하면서 수많은 제2의 이순신이 출현할 것을 기대했다.
민족사와 독립운동 교육에서 이순신의 승전 기록은 핵심적인 요소였다. 1930년대 현충사 복원을 중심으로 한 이충무공현창사업은 국내에서 있었던 가장 크게 전개된 문화적 민족운동이었다. 이순신의 구국정신은 300여년이 지난 후에도 한국인의 마음속에 면면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이충무공의 구국정신은 후손들에게 직접적으로 계승되었다. 충무공의 후손들 중에는 무과에 급제한 인물들과 무관의 요직을 차지한 인물들이 많았다. 특히 임진왜란 시 이순신이 역임한 삼도수군통제사가 후손들에게서 연이어 배출되기도 했다. 이로써 충무공 후예는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는 국가적 책무를 짊어지고 있다는 의식이 형성되었다.
충무공의 구국정신이 후손에게 직접적으로 계승되어 항일독립운동으로 표현되었던 대표적 사례는 충무공의 12대손 이세영을 들 수 있다.
이세영(1869~1941)은 음봉의 신휴동에서 태어났다. 본래 충무공의 중형 이요신의 12대손이었으나 출계하여 충무공의 적통을 계승하게 되었다. 25세에 청양으로 이사했고, 이 때 호를 고광(古狂)이라고 지었다. 광(狂) 자를 쓴 이유는 왕에게 견마지로(犬馬之勞)의 충성을 다하겠다는 뜻이었으니, 여기서도 그의 충신으로서의 정신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어려서는 유학을 공부했고, 20세부터 육영공원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웠다. 1896년 을미사변이 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실시되자 홍주, 공주, 원주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된 이후에는 군인의 길을 걸어 친위대 부관, 헌병대장 서리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제국의 군인 신분으로 국권을 일본에 팔아넘기는 친일파들의 비행을 비판하다가 정직을 당하였다.
1905년 대한제국의 국권이 실추되자 민종식 의병 부대에 가담하여 참모장, 중군장 등으로 활약하였다. 그가 참여한 의병부대가 홍산, 서천, 보령, 청양 등을 장악하고 홍주성에 진입하였다. 그러나 홍주성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해 체포되고 말았다.
감옥에서 그는 자신의 선조이신 이충무공이 원수의 탄환에 맞아 순국했으니 일본은 나라와 집안의 원수라고 했다. 자신이 의병을 일으킨 것은 ‘원수인 오랑캐를 성토하여 한번 큰 의리를 천하 만국에 알리려 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항일 의병투쟁은 이충무공의 충의정신의 계승임을 뚜렷하게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세영은 1907년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난 이후에도 항일 독립운동을 계속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멀리 유배되었다. 1908년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는 공주에서 성명학교를 세우고 교장이 되었으며, 부여에서는 대한협회 은산지부를 조직하는 등 구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국치를 당한 뒤에는 비밀리에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노동부 차장, 1922년 대한통군부 군사부장, 1923년 통의부 참모부장 등을 역임하고 1930년대에 한중 항일의용군을 조직하는 등 만주지역의 유력한 독립군 지도자로 활약했다. 1941년 중국 사천성 성도에서 사망했고, 묘소도 그곳에 있다. 1963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이세영은 충무공의 12대손으로서 조상의 구국정신을 이어받아 항일 구국투쟁으로 일생을 헌신한 대표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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