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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사 공동기획

2011년 10월 21일(금) 13:46 [(주)온양신문사]

 

3·1독립 만세시위는 왜 장터에서 벌어졌나

↑↑ 김도형(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온양신문

3·1운동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며 군중들이 질주하는 장면을 연상한다. 유관순열사도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에 붙잡혀 감옥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이처럼 3·1운동 당시 전국 대부분의 독립만세 시위운동은 장터가 그 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곳만이 아닌 생활의 중심지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후기부터 발달한 시장을 통해 생산품을 매각하고 동시에 일상의 필수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거의 전 생활은 이것에 의거하여 유지되고 있었다.

또한 시장은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오락과 여흥을 즐기는 장소로서 농촌사회에서는 유일한 문화공간이자 정치공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3·1운동 때 만세시위운동도 시장의 장날을 기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산에서도 3·1운동 당시 만세시위는 시장에서 비롯되었다. 아산지역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이 시작된 곳은 일본인들에 의해 상업도시·휴양도시로 점령되어 있던 온양에서부터였다. 1919년 3월 11일 온양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서 독립만세를 불렀고, 다음날 학생들은 동맹휴교를 하고 온양시장으로 나가 군중들과 더불어 만세시위를 재개하였다.

또한 3월 14일 온양장터에서는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가 군중들에게 뿌려지면서 공립보통학교 학생 100여명과 장터에 모인 군중들이 함께 만세를 불렀다.

한편, 영인면에서도 3월 14일 아산리의 시장에서 약 15명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자 시장 안의 사람들이 따라서 만세를 외쳤다. 이보다 늦게 선장면에서는 4월 4일 선장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가 벌어졌는데, 그 양상은 매우 격렬하였다. 선장시장에서 약 200여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부르고 면내의 헌병주재소에 몰려가 돌을 던져 창문을 파괴하였다.

그러면, 왜 3·1운동 당시 독립만세시위는 장날에 맞추어 장터에서 일어났는가? 그것은 앞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3·1운동 당시 시장은 만남의 광장이며, 정보유통의 시발점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더불어 시작된 강압적인 시장통제에 그 근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점한 이후 유통경제를 장악하기 위해 지방에 산재한 시장을 그들의 규제와 감독 아래에 둘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일제는 구래의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가하는 한편, 자신들의 의도에 맞게 재편성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는 1914년 9월 ‘시장규칙(총령 제136호)’이라는 악법을 만들어 한국의 시장을 장악하였다. ‘시장규칙’의 주요한 골자는 ‘공영제’라고 하였다. ‘공영제’란 시장을 경영할 수 있는 주체를 공공단체나 그에 준하는 기관만으로 한정하여, 기존의 시장에 대해서는 부·읍·면만이 경영할 수 있게 하였다. 그와 동시에 이들 시장의 명칭, 위치, 설비, 개시일 등을 서면으로 도지사의 허가를 받게 하였던 것이다.

일제는 ‘시장규칙’을 통해 한국의 시장을 장악하는 한편, 식민지 지배 초기에 부족한 지방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시장세’를 징수하기 시작하였다. ‘시장세’는 일제가 시장통제의 구체적이고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였으며, 조선총독부가 징수한 각종 세금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악세(惡稅)’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장세는 개시 구역 내에서 행해지는 모든 거래, 상설점포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매매가 부과대상에 포함되었으며, 판매액의 다과를 불문하고 무조건 방매가액의 100분의 1을 징수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일반농민들이 집에서 생산한 물품에 대해서도 ‘시장세’ 징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3·1운동 당시 농민들은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시장세 수수서류와 같은 시장 관계 문건들을 소각하였던 것이다.

아산의 농민들과 상인들은 ‘시장규칙’을 제정하여 ‘시장세’를 징수하는 등 지방경제를 장악하려는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였던 것이다. 아산 사람들에게 있어서 장터는 5일장이라는 전통 속에서 민족경제의 보루와 다름없었다. 그러기에 3·1운동 당시 아산의 여러 곳의 장터가 독립만세시위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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