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6-23 오후 02:28:23  

전체기사

사설

온천동메아리

기고문

기획기사

종합

칼럼

행복한아산

아산의 야생화

아산의 길

커뮤니티

뉴스 > 사설칼럼 > 행복한아산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김기승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1년 07월 18일(월) 13:55 [(주)온양신문사]

 

임금을 질타한 만전당 홍가신의 기개

“전하께서는 나라를 잃고 파천하시어 후세에까지 비웃음을 사게 되었으니 그 부끄러움이 말세에 나라를 망친 임금과 같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 김기승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장

ⓒ 온양신문

아산의 선비 홍가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주로 도망쳤던 선조 임금의 비겁함을 이렇게 비판했다. 1593년 53세의 홍가신은 선조 임금이 환궁한다는 소식을 듣자 1만3천700 여자에 달하는 장문의 국정쇄신책을 선조 임금에게 올렸다.

국정 쇄신에서는 무엇보다도 임금 자신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와신상담하여 원수를 갚겠다는 뜻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어 왕실이 솔선하여 사치와 향락을 버리고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통해 민심에 기반한 왕도정치를 구현함으로써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홍가신이 임금의 잘못을 직간하는 상소를 올리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의 신변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처벌을 받기는커녕 이듬 해 홍주목사로 제수되었다. 선조 임금은 자신을 망국의 군주와 같을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판한 신하를 발탁하여 홍주목사로 임명하였던 것이다.

이를 두고 당시 우의정이었던 김응남은 ‘홍가신의 상소를 보고 처음에는 소름이 끼쳤는데, 임금께서 죄를 주지 않고 중요한 지방관으로 임명하시니 그 임금에 그 신하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선조는 자신을 비판하는 홍가신의 상소문 속에서 우국충정의 마음을 읽어내었던 것이다.

↑↑ 홍가신 초상(도강영당본)

ⓒ 온양신문

홍가신은 1596년 홍주목사 재직 시에도 선조 임금이 말을 구한다는 뜻에 따라 상소문을 올렸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3년 전 국정쇄신책을 건의했는데, 하나도 실천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건의하는 대로 실천할 것을 간곡하게 호소했다. 그리고 임금의 잘못을 지적해 달라는 데 대해 거리낌 없이 장문으로 자세하게 거론했다.

우선 임금이 원수를 갚겠다는 각오를 다져 외적을 물리칠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구궁궁궐에서 호의호식하면서 궁녀와 내시들만 가까이 하고 계실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종묘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점, 왕실의 횡포가 자행되고 있는 점, 환관에게 둘러싸여 있는 점 등 왕과 왕실을 직접 거론하면서 비판하였다.

홍가신이 이렇게까지 선조 임금과 왕실의 부도덕성을 구체적으로 비판했던 것은, 민심의 이반 현상이 극에 달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민심 수습을 통한 국정의 안정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임금과 왕실의 통렬한 반성이 긴급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왕조실록의 사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홍가신의 상소를 보건대, 그 말이 모두 충군애국하는 마음에서 나와 간절하고 정직하다. 임금에게 삼가고 꺼려야 하는 법도를 거스르면서까지 당시의 병폐를 정확하게 지적했으니 반드시 실천해야 했다. 그러나 임금은 가상하다고 말만 할 뿐이었으니 말을 구한다는 것이 거의 형식만 차린 헛것이 아니겠는가?”

상소문을 올린 지 3개월 뒤, 홍가신이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충청도 지역에서 왕실의 서자인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반란군 세력은 급격하게 확대되어 급기야 북상하면서 홍주성을 점령할 기세였다. 수만 명의 반란군이 몰려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기백명의 군사밖에 없던 홍주성에서는 앞 다투어 피난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부하들도 홍주목사 홍가신에게 피난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홍가신은 피난은 커녕 오히려 아산에 있던 가족들을 홍주성으로 불러 가족들과 함께 홍주성을 사수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이미 두 차례나 자신이 불충죄로 처벌받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 안위를 위해 임금과 왕실의 잘못을 통렬하게 비판한 터였다. 그는 자신이 임금에게 직간했던 위기 수습책을 자신이 직접 실천해야만 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홍주성 사수 의지를 대외에 과시했다.

↑↑ 홍가신의 묘소

ⓒ 온양신문

이에 주변의 관군 수천 명이 홍주성에 결집하여 반란군을 무찌를 수 있었다. 홍가신은 이몽학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청난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홍가신은 천하의 지존인 임금의 잘못을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간하는 기개를 지닌 선비였다. 두려움을 모르는 그의 기개는 자신의 말을 스스로 실천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했다. 도덕적 리더십의 확립이 절실한 오늘날 아산 출신 홍가신이 보여준 도덕적 기개의 아름다움은 더욱 빛을 발한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지역정신 온양신문”
- Copyrights ⓒ(주)온양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온양신문사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온양신문사

 

 

천경석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맹주완의 [행복한아산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홍승균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맹주상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유은정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천경석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맹주상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온양신문사] 기자

이전 페이지로

 

 최근기사

 

충남방적, 문화복합단지로 탈바꿈..  

거점형 스마트도시 조성 ‘천안’..  

튼튼한 생강 재배…장마철 관리 ..  

충남소방, 화재피해 주민 등 취약..  

진로 탐색과 직업 능력 신장을 위..  

국립오페라단 '잔니 스키키'…관..  

청소년 특유의 밝은 음색과 발랄..  

“현대인을 위한 전시회로 작은 ..  

충남TP, 강소기업 육성을 위한 전..  

“지방소멸 위기, 대학과 협력 통..  

전문직업교육과정 상반기 수료식 ..  

“정부예산 확보 위한 관내 국회..  

“아산문화공원 찾는 시민 불편함..  

배방공수스포츠센터 7월부터 휴장..  

이희완 차관, 아산충무병원 방문  

충남아산FC 승격 위한 여름 첫 보..  

“박 시장 국외출장여비 직원 명..  

“산림과, 소관 위원회 소속 위원..  

아산시, ‘음식점 위생등급제’ ..  

공동주택 우기 대비 안전점검  

회사소개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구독신청 - 기사제보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배너모음

 상호: (주)온양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312-81-25669 / 대표이사 : 신홍철 / 인터넷신문사업 등록번호: 충남, 아00095 / 제호: i온양신문 / 주소: 충남 아산시 남산로8번길 6 (온천동 266-51) / 발행인,편집인: 신민철
등록일 : 2010년 9월 24일 / mail: ionyang@daum.net / Tel: (041) 532-2580 / Fax : (041) 532-458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민철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