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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상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1년 08월 16일(화) 17:25 [(주)온양신문사]

 

강청리를 지나 유월 보리 익는 풍경 속에는…….

↑↑ 맹주상 아산학연구소 운영위원 / 시인 / ‘아산시대’ 편집위원

ⓒ 온양신문

보리꺼럭 타는 냄새가 좋은 유월 강청리 나룻터에 나룻배가 끊어져도 나그네 서럽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보리를 타작하는 그 집에 찾아가 보릿단을 좀 날라 주고 꺼럭만 모아 태우는 일을 좀 도와주어도 뜨거운 보리밥에 막걸리가 나왔으니 말이다.

보리타작 꾼들 돌아가고 달빛에 청매가 익는, 샛바람에 그림자 문살을 치는 그런 밤이 오면 사랑방에서는 어느 해인가 지독했던 보릿고개 얘기를 나누며 잠시 시름을 잊고 편안한 잠도 잘 수가 있었다.

그 때는 집집마다 돌아가며 보리타작 무대가 설치되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무대처럼 보였다. 여름밤 학교 운동장에 가설극장이 생기고 수시로 필름이 끊어지는 장화홍련전 그 영화를 보던 즐거움 만 큼이나 보리타작 하는 날은 아이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아침 일찍이 큰 시커먼 발동기가 마차에 실려 마당에 도착했다. 그 발동기가 바깥마당 사랑채 마루 아래쪽에 자리를 잡으면 공연은 시작되었다. 발동기 위쪽엔 조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장정 3명이 발동기의 돌림손잡이를 잡고 젖 먹던 힘까지 합쳐 용을 써야지 시동이 걸렸다. 그리고 탈곡기에 피대를 걸어 돌리면 도깨비 이빨같이 생긴 탈곡기는 식식대며 저녁 늦게까지 돌았다.

마당가엔 곡식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보릿단으로 높이 쌓고 천막으로 나머지 틈새들을 막았다. 물론 하늘도 천막으로 치고 장대로 높이 받쳐 올렸다. 그렇다보니 보리 타작꾼들은 꼭 복면을 해야만 했다. 그 까실까실한 보리꺼럭들이 사방으로 날려 목이 껄끄럽고 앞을 잘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건으로 복면을 한 보리타작꾼 셋이 동시에 보릿단을 탈곡기에 털고 옆으로 빠지면 뒤에 세 사람이 같은 동작을 연속으로 이어서 했다. 그 움직임은 요즘 k-pop 가수들 만 큼이나 딱딱 잘도 맞았다. 물론 인기도 대단했다. 아이들도 그 꺼럭을 다 뒤집어쓰고 온종일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에겐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다. 발동기 근처는 물론이고 그 피대가 돌아가는 곳과 탈곡기 근처엔 절대로 가면 안 되었다. 그래서 보릿단을 쌓아놓은 마당 끝이나 천막 틈새로 쪼로로 얼굴을 내밀고 온종일 대포처럼 생긴 발동기와 큰 호롱기를 쳐다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큰 발동기와 호롱기에서 내뿜는 굉음은 자주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타작꾼들의 기계 춤을 추는 것 같은 특이한 움직임 역시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탈곡기가 돌아가고 보리 알곡이 쏟아지면 엄마는 보리미숫가루를 금세 만들어 찬물에 달게 타 내 오셨다.

점심에도 특별한 음식이 나왔다. 뱅어포에 고추장을 바른 반찬이며 오이를 넣은 미나리김치 그리고 오이소박이와 잡곡밥에 마른 새우가 들어간 아욱국이 나왔다. 막걸리는 말로 받아와 우물물에 담가놓고 어른들은 참에 마셨다.

저녁 무렵 그 타작 무대에 가담한 나그네는 주연급 배우는 못 되어도 짧은 시간에 성실한 태도를 보여 역마살을 청산하고 드물게는 그 동네 어느 집 머슴으로 눌러앉는 경우도 있었다.
그 시절엔 나그네가 참 많았다. 지나는 길손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았다. 교통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둠이 오면 호롱불빛이 새는 집을 찾아 사정을 말하면 하룻밤 정도는 흔쾌히 재워주었다.

지금은 나룻 터가 사라진지 오래고 다리가 놓이고 시절도 인심도 변해 그런 낭만은 좀처럼 볼 수는 없지만 마을은 옛 모습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그 강청교를 건너 세심사 가는 길을 따라 가면 누렇게 보리 익는 마을이 나온다.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어디선가 보리꺼럭 타는 냄새 날것만 같은데, 이 저녁 그 무대의 조연 역할이라도 좀 맡아 이 나그네 또한 역마살을 청산하고 이 마을에서 눌러 앉고 싶은 생각이!

강청리를 지나 유월 보리 익는 풍경 속에는……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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