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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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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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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04일(목) 09:16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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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최초로 ‘국채보상금’을 낸 아산 과부 ‘양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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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도형(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 온양신문 | 우리는 지금도 1997년 외환위기 때 암울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세계사에서 드문 성공을 거두면서, 아시아에서 한국이 일본 다음의 거인(next giant)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을 넘어 일약 세계 제11위의 경제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선전 홍보하였고, 경제 선진국들만 참여할 수 있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하였다.
또한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국민들이 모두 외국을 알아야만 한다고 야단법석을 부렸다. 그렇게 잘 나가던 한국경제가 일순간에 국가 부도사태를 맞이하자, 온 국민들이 암담한 역경의 터널을 벗어나가 위해 안간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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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907년 5월 대한자강회 회관에서 설립된 국채보상연합회의 규약 | ⓒ 온양신문 | | 우리가 IMF관리체제를 극복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전 국민들의 자발적인 ‘금모으기 운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모으기 운동’은 국민들이 가지고 있던 금을 기부하여 국채를 갚자는 운동이었다. 당시 대외 부채가 약 304억 달러에 이르렀는데, 약 350만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 참여하여 약 227톤의 금을 모아 외채를 갚았던 것이다.
이처럼 ‘금모으기 운동’은 국민 절대 다수가 나라 빚을 청산하여 경제 주권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었다. 역사가들은 이 운동을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고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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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국채보상기상회의 국채보상 모금 제1회 광고(대한매일신보 1907년 3월 16일자) | ⓒ 온양신문 | 그러나 외환위기 때의 ‘금모으기 운동’과 같은 외채 상환운동이 ‘IMF관리체제’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약 100여 년 전인 1907~1908년 사이에 일본에 부담해야 할 국채를 국민들이 모금하여 상환하고자 하는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한국민의 전폭적인 호응으로 시작된 지 3개월 만인 1907년 5월 모금액이 20만원에 달하였다. 이같이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빠른 시간에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은 언론활동에 크게 힘입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국내에서 발간되던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하여 ‘황성신문’·‘제국신문’·‘만세보’ 등은 이 운동의 확산에 진력하여 신문사 내에 모금처를 설치하고 그 참여를 촉구하였으며, 기성회 등의 취지서와 의연금 납부자의 명단을 게재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충남에서 최초로 국채보상 의연금을 낸 사람은 아산에 거주하는 ‘양소사(梁召史)’라는 주전원(主殿院) 경(卿) 양성환(梁性煥)의 딸이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2월 26일자에 ‘부인애국(夫人愛國)’이라는 제목으로 그녀의 의연 사실을 전하였고, 또 ‘제국신문’ 1907년 2월 26일자에는 ‘여성의 국채보상운동’이라고 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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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한 국내 언론 대한매일신보, 만세보, 황성신문, 제국신문, 대동보, 경향신문 | ⓒ 온양신문 | | "본인이 현재 향제(鄕第)로부터 친정에 왔다가 귀 신문을 봉독하매 나라를 걱정하시는 첨위군자(僉位君子)께옵서 국채보상 대하여 동포들에게 권유하와 의연금을 모집하시는 장거가 있다 하오니, 본인이 비록 일개 규중여자이오나 진실로 역시 대한국민의 한 사람이온즉 끓어오르는 감동에 눈물을 머금고 있사오나 집이 가난하와 힘이 정성에 미치지 못하와 겨우 한화 20원을 귀사에 앙정하오니 이 작은 정성을 용납해 주심을 복망합니다."
국채보상금으로는 20원이라는 거금을 희사한 양소사는 아산의 이씨 집안으로 시집을 와서 일찍이 과부가 되었으나, 품행이 바르고 대의에 밝을 뿐만 아니라 두 아들을 잘 교육하여 명성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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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제 통감부에서 조사한 각 도별 국채보상모집금 현황(1907년 8월 22일자) | ⓒ 온양신문 | 국채보상운동에는 정부의 고관이나 양반·부유층 뿐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 부녀자로부터 상인·군인·학생·기생·승려에 이르기까지 참여하지 않은 계층이 없었다. 특히, 부녀자들의 참여는 놀라워, 찬값을 절약하거나 비녀와 가락지 등을 의연품으로 내놓았다.
서울에서 국채보상기성회가 조직된 다음날인 1907년 2월 23일 대구에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가 결성되어 반지·팔지·목걸이 등 금은 패물을 국채보상운동에 의연하였다.
국채보상운동에는 경향 각지 여성들의 적극적 참여로 우리 역사에 보기 드문 성공적 국민운동으로 발전되었으나, 이를 두려워 한 일제의 방해로 말미암아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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