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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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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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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 09일(월) 14:56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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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원, 악질 도고면장을 처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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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도형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 온양신문 | 일제강점기 아산지역에서 일어났던 가장 커다란 사건은 1919년의 3·1운동과 1932년의 ‘현충사 중건 낙성식’ 행사였다.
아산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 온양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독립만세시위로부터 시작되어, 4월 초순에는 아산의 모든 곳에서 봉화, 만세, 파출소 습격 등 격렬한 독립운동으로 퍼져갔다.
그러나 순국 1명, 부상 7명, 옥고 20명, 태형 185명 등 일제의 폭압적 탄압으로 큰 희생을 치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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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현충사 영정 봉안식 | ⓒ 온양신문 | 1932년 6월 5일에 거행된 아산 현충사의 낙성식과 영정 봉안식은 전국 각지에서 약 3만 여명이 참석하였다. 수많은 인파가 모였기 때문에 천안-온양 간에 임시열차가 운행되었으며, 온양-백암 간에 자동차가 별도로 운행되었다. 당시 ‘동아일보’의 한쪽 지면은 이 날의 행사 사진으로만 장식되었고, 온양온천에서 뱀밭(白岩)까지 통하는 십리길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으며, 뱀밭 좌우편 산에까지 사람들로 뒤덮였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냉면집·국밥집·탁주집 등 음식점은 모두 만원이었고, 잡화상, 비녀장사, 생선장사들은 대목을 보았다고 보도되었다.
위의 두 사건에 못지않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아산 도고면장 박용하(朴容夏) 피살 사건이었다. 당시 도고면장 박용하는 면민들을 가혹하게 다루었으며, 면서기의 사택을 몰수하여 자기의 사택으로 만들었고, 전 면장의 공금 낭비를 고발하여 옥사케 하는 등 많은 악행을 저질러 지역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던 인물이었다.
조용한 시골인 도고면에서 면장이 살해당한 사건이니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보통의 살인 사건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범인들은 ‘사형선고문’을 잘 보이도록 박용하의 집 처마에 매달아 두었다. 범인들은 자신들이 누구이며 왜 살인을 하였는지에 대해 사건의 전모를 낱낱이 ‘사형선고문’에 기재하였다. 이 사건은 단순 강도가 아니라 특수 목적을 가진 계획된 행위였다.
범인들은 자신들이 ‘광복회’라는 독립운동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임을 밝히면서 박용하 ‘처단’ 이유 세 가지를 밝혔다. 즉 첫째 독립운동 단체인 ‘광복회’의 취지에 반대하였다는 점, 둘째 ‘광복회’에서 보낸 ‘통고문’을 헌병에게 건네주었다는 점, 셋째 지역사회에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는 점 때문이라고 하였다. 광복회는 독립을 위한 군자금을 원활히 하고, 친일세력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친일파처단을 하였던 것이다.
‘광복회’는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 단체 가운데 해외 독립운동 기지건설과 연계된 대표적인 비밀결사였다. 전국적으로 군자금과 독립군을 모집하여 국외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의협투쟁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광복회의 취지와 조국의 독립에 비협조적인 자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방법도 불사하였다. ‘광복회’의 군자금 모집은 부호들을 사전에 조사해서 그들에게 배당금 ‘통고문’을 보내고 일정 기간 후에 찾아가 의연금을 거두는 형식이 일반적이었다.
‘광복회’에는 충청도 출신 인사들이 다수 참여하여 충청도지부를 결성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아산지역 광복회원으로는 강석주·성달영·성문영·정우풍 등이 있었다.
친일 면장 박용하에 대한 처단계획은 ‘광복회’ 충청도 지부장 김한종과 천안의 장두환의 지휘아래 광복회원 김경태와 임세규가 실행에 옮겼다. 실행을 맡은 두 사람은 1918년 1월 24일 저녁 7시경 박용하의 집이 있는 도고면 신통리로 찾아갔다.
김경태는 우선 박용하에서 ‘광복회’에서 보낸 ‘통고문’을 받아 보았는가를 물었다. 이에 박용하가 보고난 뒤 헌병에게 넘겼다고 하자, 김경태는 권총으로 박용하의 오른쪽 가슴을 겨누어 발사하였고, 임세규가 다시 박용하의 오른쪽 복부를 향해 쏘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형선고문’을 잘 보이는 처마 끝에 매달고 달아났다. 총에 맞은 박용하는 많은 피를 흘리고 곧 사망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비밀 결사 ‘광복회’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천안의 장두환을 비롯한 독립지사들이 일제에 체포되자 ‘광복회’는 해체의 비운을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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