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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온양신문 공동기획

2011년 06월 22일(수) 14:11 [(주)온양신문사]

 

도고 청년 한명식 일본 ‘천황’을 조롱하다

↑↑ 김도형/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온양신문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독립운동을 탄압한 일제의 기록은 유용한 자료로 활용된다. 일견 모순되는듯 하지만, 일제 사법당국의 ‘판결문’은 그들이 우리의 민족의식과 독립운동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자료이기도 한다.

일제가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법률로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보안법과 제령 제7호, 출판법, 소요죄, 치안유지법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아산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이른바 ‘1935년 치안유지법 위반’, ‘보안법 및 불경죄’로 형을 받은 사람 가운데 이선준(李銑濬, 25세)과 한명식(韓明植, 19세)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이들에 대한 ‘판결문’은 현재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된 ‘독립운동사자료집’(제14권)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을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사회주의 경향 운동에 가담
이 ‘판결문’의 내용을 보면, 이선준은 일찍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징역 1년을 받고 형을 살았고, 출옥 후 아산군 도고면 경산리에 거주하면서 그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한약상을 돕고 있었다.

이선준은 당시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적색농민조합사건에 동참하는 등 사회주의적 경향의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한편, 그는 같은 마을에 사는 ‘한명식’이라는 젊은이에게 접근하여 그에게 독립정신을 일깨우면서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한명식은 1931년 홍성공립보통학교 고등과를 중퇴하고, 1934년 아산에 있는 신창공립농업실습학교에 몇 개월 동안 다니다가 이 또한 그만 두었다. 그 후 그는 이선준의 열렬한 민족의식에 감화를 받아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하였다.

피폐해 가는 조선동포를 위해
그 또한 주위의 친구들을 독립운동에 참여시키기 위해 반일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는 만주 봉천에 사는 친구 배기동에게 “조선을 독립시킬 용사가 되어달라”라는 내용의 편지를 두 차례에 걸쳐 보냈다. 그리고 그는 서울 휘문고보에 재학 중인 정헌갑에게 “나날이 피폐해 가는 조선과 기아에 우는 동포를 위하여 우리들의 손으로 조선의 독립을 기도하자”라는 서한을 보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지역인 아산군 신창면 궁화리에 사는 조재선에게도 “자력갱생 농촌진흥운동은 전부 가면정책에 불과하다. 이 감언에 속지 말고 조선독립을 위하여 크게 분기하자”라고 쓴 편지를 보냈다.

이와 같이 한명식은 일제 식민정책에 반대하고 민족독립을 일깨우는 서한을 친우들에게 보내다가 일제에 피체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한명식의 ‘판결문’ 속에는 19세의 청소년답게 조금 치기가 넘치기는 하지만, 그가 일제의 식민통치를 얼마나 미워했는가를 알 수 있는 재미있는 행위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일본 천황폐하는 조선민족의 원수이므로 존경할 것 없다”라고 하고, 연하장 용지 두 장을 가지고 한 장에는 위쪽에 ‘충남 아산군 경산리’라고 쓰고, 중앙에는 ‘한명식군’, 좌측 하단에는 ‘동경궁성(東京宮城) 히로히토(裕仁) 배(拜)’라고 썼다. 그리고 나머지 한 장에는 좌측에 ‘충남 아산군 도고면 경산리’ 중앙 상단에는 ‘한명식 각하’ 좌측 하단에는 ‘동경궁성 히로히토 천황 배’라고 하였다.

일본 궁궐에 사는 히로히토라는 평범한 사람이 한명식이라는 왕에게 절하면서 새해를 축원하는 연하장이었다. 그는 ‘일왕’ 히로히토를 자신 앞에 무릎을 꿇리고 배례하게 하는 상상을 통해 ‘일왕’을 조롱하였던 것이다.

온갖 불의의 책임과 ‘천황’에 항거
이러한 행위는 일제 관헌에게는 ‘천황의 존엄을 모독하는 불경죄(不敬罪)를 저지른 행위’로 판단되었다. 군국주의 국가 일본에서 ‘천황’은 국가를 초월한 존재였다. 모든 침략전쟁은 ‘천황’의 명으로 자행되었다.

한국에 대한 일제의 비인간적인 만행과 침략전쟁 등 온갖 불의를 저지른 모든 책임자는 ‘천황’이었다. 19세의 도고 청년 한명식은 ‘천황’이 식민지 침략과 약탈의 원흉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자신 앞에 ‘일왕’을 굴복시키는 젊은이다운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민족적 자존심과 독립에 대한 희망을 확인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한명식은 ‘보안법 위반 및 불경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일제의 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36년 9월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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