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6-11-03 오후 05:56:05  

전체기사

사설

온천동메아리

기고문

기획기사

종합

칼럼

행복한아산

아산의 야생화

아산의 길

커뮤니티

뉴스 > 기고/칼럼 > 기획기사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151호(1997. 10.15.수) <천경석의 향토문화> 기행 세교리, 자은 홍필주 선생 묘소를 찾아

2007년 05월 16일(수) 14:22 [(주)온양신문사]

 

천경석의 향토문화 기행

세교리, 자은 홍필주 선생 묘소를 찾아


우리나라 국민들의우리 민속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주로 학교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TV사극과 다큐멘터리, 다행이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문화유적 답사등으로 보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여러가지 과정에서 이루어진 역사 이해에 아쉬움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근,현대사에 대한 비중이 너무 적다는 점이 그러하다. 특히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제작해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역사교사서도 역사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평가되는 나라들에 비해 근,현대사의 비중이 적다.


이런 나라들은 고대 중세사와 근,현대사의 분량이 비슷한데 비해 우리나라는 그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10대조, 20대조 조상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바로지금의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더중요하듯,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수탈을 극복하고 분단과 동족상잔의 아픔 속에서도 자유와 번영의 선진국을 향해 발전하며 오늘에 이르는 근,현대사 야말로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던 것은 근,현대에 치열하게 전대되었던 미족운동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부족을 늘 실감하며 아쉬움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오늘은 지역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우국지사 자은 홍필주 선생 (洪弼周, 1857~1917)의 묘소를 찾아 배방면 세교리 안골에 가보기로 한다.


자은 선생은 본관이 풍산이며 조선 숙종조의 문신 학자로 유명한 만퇴당 홍만조의 6대손이다.


천안 풍세에서 홍재모의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주 어릴때 숙부 홍가모(일찌 작고함)의 양자가 되어 대를 잇게 되었다.


양가가 가까운 아산배방의 세교리 안골로 이사를 하게 되어 바로이것에서 서장하게 된다.


온양에서 천안을 가다보면 고속전철역 건설이 한창인 장재리에 이르러 천안과의 경계지점에 있는 세교 쉼터를 지나면서 오른쪽으로 들어간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가서 정신병원을 지나 다시 1Km정도가면 세교리 안골마을이다.


이곳에서 풍산 홍씨가 여러가구 사는데, 홍만조 선생의 후예들이다.


마을 뒷산기슭에 홍만조 선생의 묘소가 있다.


이곳은 나중에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마을로 들어가는 나즈 막한 고개길 못미쳐에 있는 커다란 우사에서 동쪽(왼쪽)으로 비포장 농로를 따라 약 300m쯤에 폐가 뒤 야산 숲속에 지은 홍필주 선생의 묘소가 있다.


최근에 세워진 비석을 제외하면 흔히 볼 수 있는 묘소들보다 후러씬 초라하고 작은 묘소이다.


그나마 산(옥녀봉)도 고속전철노선으로 허리가 잘려있다.


이것이 세월이고 역사인 모양이다.


자은은 36세이던 1892년에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을 만나 동학에 대해 듣고 동학에 들었으며 손병희 등과 함께 교조신원운동(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정부에 의해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된 일에 대하여 그 누명을 벗기고자 한 운동으로 동학이 본격적인 반봉건 반외세에 대중투쟁을 전개한 시초가 된일)에 동참하고 보은집회등에 참여 하였다는 정부의 체포령이 내리자 강화도로 피신하였다.


명문가 출신으로는 특이한 일이었다.


그위 우리고장 출신의 우당 이남규 선생의 추천으로 1896년 관직에 임용되어 안동군수, 대구군수 등을 역임하다가 1901년에 이르로 부패한 관직을 혐오하고 기우는 국운을 바로세우기 위해 관직을 사퇴한다.


그후 윤치호, 장지연등이 주도한 대한자강회, 그리고 뒤에다시 조직된 대한협회에 들어가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오기호 등과 함께 '오적암살단'을 만들어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섰던 매국노들의 처단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기게 되자 민중계몽과 교육에 힘쓰다가 회갑을 맞은 1971년에 세상을 뜨게된다.


오늘날, 일제의 침략에 대한 민족운동으로 가장 직접적인 투쟁방식이었던 의병이나 독립군등의무장투쟁에 비해 애국계몽운동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된다.


자은 선생은 무장투쟁에 참여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족운동의 방식이야 여러가지가  있는것이 아닌가.


매우 온건한 방식이라해도 그것은 매우 소중한 민족운동이다.


혹자는 군운이 기울고 외세에 입김이 세던 시기에 관직을 갖거나, 일본에 가서 고위 대신을 만나 침략행위를 통박하는방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옳은 관점이다.


그러나 그 자체도 얼마나 어렵고 나름대로 울분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원죄처럼 늘 고통스러운 과제로 남아 있는 문제가 있다.


일제 잔재와 친일파의 문제, 애국자로 알려져 있지만 직,간접으로 친일 행위를 한것으로 밝혀지기도 하는 인물에 대한 재평가, 독립운동가의 후예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 현실, 그리고 좌우 갈등으로 인한 이데올로기와 대립으로 먼훗날에 가서야 평가와 정리가 가능한 일 등, 참으로 많다.


돌아오는 발길에 힘이 빠진다.


어떻게 봐야 하나. 오늘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산향토문화연구회장>

온양신문 기자  
“지역정신 온양신문”
- Copyrights ⓒ(주)온양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온양신문사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온양신문사

 

 

시민들의 가까운 이웃, 신우새마을금고 [온양신문사] 기자

김예진 화가, 첫 개인전을 열다 [온양신문사] 기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이현상 [온양신문사] 기자

“아산이 참 좋고 자랑스러워요” [온양신문사] 기자

농부가 된 교수, 김동진 별빛생태농원 대표 [온양신문사] 기자

“놀이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든다” [온양신문사] 기자

정쟁에 휘둘리지 않고 건전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다 [온양신문사] 기자

이전 페이지로

 

 최근기사

 

220만 삶 ‘AI 대혁명’ 불지핀 ..  

‘충남 일자리 정책 이끈다’ 제4..  

충무교육원, 이순신 나라사랑 교..  

“글로벌 기업 투자, 3력·광속으..  

지역 국회의원과 ‘13.5조 확보’..  

민선9기 공약실천계획 도민과 함..  

아산시, 지역사회보장계획 평가 8..  

아산시, 도고면 기곡리 침수 대응..  

어르신 목욕·이용 편의 높인다…..  

도고면 행복키움추진단·파라다이..  

[시대진단] 다수결이면 다 정의로..  

충남교육청, 다문화 교육 연구학..  

충남교육청, 2026년 성과관리지원..  

“11월은 ‘정리정돈의 달’, 현..  

충청광역연합의회 제12회 정례회 ..  

아산시시설관리공단, 자원순환의 ..  

충남교육청 학생건강교육센터, 김..  

선문대 치위생학과, 한국치위생과..  

수피아사회적협동조합, 베이커리..  

‘그대! 80개의 나래를 펴라’  

회사소개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구독신청 - 기사제보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배너모음

 상호: (주)온양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312-81-25669 / 인터넷신문사업 등록번호: 충남, 아00095 / 제호: i온양신문 / 주소: 충남 아산시 남산로8번길 6 (온천동 266-51) / 발행인,편집인: 신민철
등록일 : 2010년 9월 24일 / mail: ionyang@daum.net / Tel: (041) 532-2580 / Fax : (041) 532-458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민철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