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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집] 물앙․꾀꼴성에 가다

백제·고구려 각축장…복원되지 않은 유적의 ‘매혹’ 간직

2011년 05월 26일(목) 15:59 [(주)온양신문사]

 

이런 아산을 생각한다
천 경 석 / 온양고 교사 / 아산향토연구회

좀 덜 알려지고 인위적이지 않아 편하다

요즘은 가벼운 등산이나 걷기가 대세다. 각 지자체들이 앞 다퉈 올레길이니 둘레길이니 하며 걷는 길을 정비하고 길 이름을 멋지게 붙이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길들이 큰 호응을 받고 있어서 새로운 관광자원의 하나로 주목되고 있다.

아산시도 설화산과 광덕산, 봉수산, 도고산을 연결하는 산길을 ‘설광봉도 둘레길’이라 지정(?)해서 홍보하고 있다. 거의 등산로와 비슷하고 마을이나 기타 이런 저런 곳에 중간 중간 들러 쉬거나 먹거나 뭔가를 체험할 수 있는 일들과 연계가 되지 않은 것이 참 아쉽다. 특히 이야기가 없는 점이 큰 아쉬움이다. 인근의 주민들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아마 몇몇 사람들이 주도해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생긴 문제점이리라. 앞으로 좀 더 보완을 해야 할 것이다.

전에 곡교천 둘레길을 제안한 바 있다. 배방에서부터 곡교천을 따라가다가 선장과 도고 쪽, 또 한 쪽은 인주와 영인을 거쳐 둔포까지 이어지는 길을 정비해서 하천과 호수, 바닷가를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을 만들면 좋은 길이 될 것이다. 물은 사람을 편하게 해주면서 생각을 하게 한다. 걷기 좋은 곳은 또 있다. 산성을 찾아가는 길이다.

아산시에는 산성이 많다. 자연환경을 기준으로 하면 아산시는 물의 도시라 할 수 있는 것처럼, 문화유적을 기준으로 하면 아산시는 산성의 고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여 개나 되는 산성이 곳곳에 있다. 그 중 배방산성, 학성, 영인산성 등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고 실제로 가보신 분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오늘 함께 살펴볼 꾀꼴성이나 물앙성은 그 정겨운 이름을 아는 분은 어느 정도 계실 테지만 일부러 이 산성들을 찾아가본 분들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좀 덜 알려져 있지만 참 좋은 이곳을 함께 가보고자 한다.

↑↑ ▲혹시 이곳이 옛 백제 초기의 도성을 지키는 중요기지는 아니었을까? 이 무거운 돌을 일일히 어디서 어떻게 들고와 어떻게 쌓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산성에 오르면 옛 선조들의 ‘고난했던 삶’이 눈에 선하다.

ⓒ 온양신문

<물앙성>

물앙성은 탕정면 용두3리와 음봉면 동천리, 송촌리가 접하는 지점에 있다. 조금 아래에는 염치읍 대동리의 북쪽 경계 지점이다. 정상부가 해발 약 284m인 물한산 정상과 서쪽의 계곡을 포함하는 동고서저 형태의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포곡식 산성이란 산의 꼭대기 외에도 계곡을 포함하여 쌓은 방식의 산성을 말한다.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계곡을 끼고 쌓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방어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포곡식은 성을 특히 더 높고 튼튼하게 쌓아야 한다.

물앙성의 평면은 대략 원형이며 서북쪽으로 약간 치우친 삼태기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은 안팎으로 돌을 쌓은 협축식이고 일부는 바깥쪽만 돌을 쌓은 내탁식이다.

↑↑ ▲ 윤보선 대통령 묘소는 구경의 덤 : 음봉면 동천리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의 윤보선 전 대통령 묘소. 대통령을 배출한 아산인데도 불구하고 잘 알려져 있지가 않다.

ⓒ 온양신문

처음 쌓은 시기는 불확실하며 흔히 백제 때부터 있던 성이라고 구전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한자식 이름으로 ‘수한산성(水漢山城)’이라 하고 ‘둘레 1,420척(尺)에 높이 10척이며 폐성(廢城)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요즘 식으로 보자면 둘레가 약 690m이고, 높이는 외벽이 3~4m, 내벽은 1m 내외 정도이며 성벽 상부의 폭은 2.5m가량 된다. 이미 조선시대에도 쓰이지 않았으니, 현재는 성벽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무너진 상태이다. 성문터와 정상부는 물론 여러 곳에서 건물터가 확인되며, 무너진 돌 틈이나 곳곳에서 기와 조각 등을 볼 수 있다. 쌍둥이처럼 보기 좋게 쌓은 돌탑은 10여 년 전에 쌓은 것이다.

성의 이름은 산의 이름에서 유래했을 것인데 정확한 의미와 유래는 알 수 없다. 산의 경우 물한산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고 성은 대개 물앙성이나 물왕성으로 발음한다. 우리말 이름을 한자식으로 적다보니 수한산(水漢山), 수한산성이라 기록하게 되었고 그것이 거꾸로 우리말 이름에도 영향을 주어 물한산이나 물한산성으로 말하기도 한다.

산성 북쪽에 음봉면 송촌리 물너목 마을도 있어서 물과 관련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때의 ‘물’이 지금의 물에 해당하는지도 알 수 없다. ‘물+안+산’이라 생각되는데 고어 연구 전문가의 해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조선 말기인 순조 19년(서기 1819)에 편찬된 신정아주지 산천(山川)조 기록은 참고할 만하다.

‘성 아래에 폭포가 있는데 여러 길 되는 벼랑에서 내려온다. 물이 매우 차서 냉정(冷井)이라 하였다. 질병을 고칠 수 있다 하여 원근에서 사람들이 다투어 와서 목욕하였다.’

이를 보면 말 그대로 물과 관련된 지명일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그렇다고 본다면 물(폭포, 냉정)의 안(산에 가까운 쪽을 안으로 보았을 것이다.)에 있는 산이라는 의미가 되며, ‘물+안+산’이 물앙산으로 음이 변했다고 본다. 물앙산에 있는 성이니 물앙성이 되었음을 물론이다.

↑↑ ▲ 고즈넉한 오솔길 걷기에 안성맞춤. 물앙성에서 꾀꼴성까지는 정말 기분좋게 걸을 수 있는 부드러운 능선 길이다.

ⓒ 온양신문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대두산성과의 관계이다. 백제 건국 시기인 온조왕 27년(서기 9년)에 쌓았다고 하는 대두산성은 아산시 지역 혹은 인근 지역에 있었던 산성으로 보이며 삼국사기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공주 공산성으로 보는 설까지 너무 설이 많아서 현재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설에 가깝다고 할 만한 설도 없는 형편이다.

어쨌든 우리 지역과 관련해서는 영인산성을 대두산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이기백은 물앙성을 대두산성으로 보기도 하였다.

온조백제 초기 도읍지인 위례성을 직산으로 보는 설과 관련해서 비류백제의 미추홀을 인주면 밀두리로 보는 견해가 있기 때문에 대두산성의 위치 비정은 우리 아산시의 입장에서는 사실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온조왕 36년(서기 18년)에 탕정성을 쌓고 대두산성의 백성들을 나누어 살게 하였다는 기록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백제가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밀려 웅진으로 천도한 지 4년 째 되는 삼근왕 2년(서기478)에 대두성에서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꾀꼴성>

꾀꼴성은 물앙성에서 동쪽으로 산능성을 따라 약 1.2km 정도 되는 지점에 있다. 해발 271.4m인 산봉우리를 둘러서 쌓은 전형적인 테뫼식(산정식) 석축 산성이다. 물앙성에 비해 규모는 작으나 산세가 험하고 물앙성에서 취약했던 동쪽과 남쪽의 전망이 좋다.

둘레는 약 340m이고 평면은 동남쪽으로 살짝 치우친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다. 역시 지형에 따라 협축으로 쌓거나 편축으로 쌓았다. 현재 남아 있는 곳 중 가장 높은 성벽은 외벽이 6.5m에 달하여 상당히 높은 편이다. 정상 근처에는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 물이 고이도록 했던 웅덩이의 흔적이 있으며 건물이나 성문의 흔적도 확인할 수 있다. 성의 북쪽 바깥에는 평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용샘이라는 샘이 있어서 지금도 맑은 물이 고인다.

꾀꼴성은 물앙성과 같은 시기에 쌓았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역시 축조 연대는 아직 불확실하며 백제시대로 전해지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앵리산성(鶯里山城)’이라 하고 ‘둘레 655척(尺), 높이 7척이며 폐성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꾀꼴성도 그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꾀꼬리라는 새와 연결시키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대개 성 이름의 경우 앞에 지명이 붙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일단 ‘괴골[꼴]에 있는 성’이어서 ‘괴꼴성’이라 했는데 자연스럽게 음이 변해서 꾀꼴성으로 부르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다만 ‘괴’는 느티나무가 많아 ‘괴(槐)골’이라 했을 수 있지만 고양이의 고어인 ‘괴’인지 또 다른 어떤 말이 음이 변해서 괴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 ▲ 산성의 돌탑(;) 무지인가, 정성인가!
산성 정상에 흩어진 돌들을 모아 누군가가 탑을 쌓았다. 더 이상의 훼손 없이 그대로 있어야 하겠다.

ⓒ 온양신문

- 백제 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
꾀꼴성은 능선으로 연결된 서쪽을 제외하고는 주변 전망이 좋다. 1970년대까지도 인근 학교의 학생들이 소풍을 오기도 했고 주변 여러 마을의 주민들이 봄철에 이 성에 놀러 와서 ‘화류(가무)’를 하며 즐겼다.

성 안 바위 아래에 굴이 있어서 불을 때면 백석포 강(바다) 한 가운데에서 연기가 난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이 굴을 ‘호랭이 굴’이라고도 한다. 최근에는 꾀꼴성 200m 동쪽으로 굴이 뚫린다. 배방-음봉간 4차선 도로를 개설하면서 이 산줄기 아래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 오누이 전설 전해져
전국 각지의 인접한 산성에 많이 전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오누이 전설이 전해진다. 성 아래 마을에 살던 오누이가 성을 쌓는 시합을 하는데 아들(또는 오라비)이 물앙성을 쌓고 딸이 꾀꼴성을 쌓았다. 아들이 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어머니가 딸에게 콩을 볶아 주어 설사가 나도록 했기 때문에 결국 아들이 물앙성을 먼저 완성해서 이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약간 다른 이야기는 아들에게는 밥을 지어주고 딸에게는 콩을 볶아줘서 빨리 먹지 못한 딸이 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결과는 같은데, 시합에 진 딸이 분해서 치마에 담아 옮기던 돌들을 쏟아 붓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때 쏟아놓았다는 돌들이 지금도 그대로 흩어져 있으니, 성 아래 돌이 많은 곳을 ‘광대너덜’이라고 한다.

- 꾀꼴성은 전방지휘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물앙성과 꾀꼴성은 같은 시기에 축조했을 것으로 본다. 모두 인근 산자락에서 옮겨온 자연석을 이용해 쌓았다. 꾀꼴성은 물앙성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축조했을 것으로 본다.

전망이 좀 더 좋기 때문에 지휘부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도 가능하지만, 아마 보조적 역할이었을 것으로 본다. 꾀꼴성에서는 물앙성이 잘 보이지 않지만 물앙성에서는 꾀꼴성이 뚜렷하게 보인다.

- 무명산성과 연결
물앙성은 서쪽으로 직선거리 약 4km 정도의 위치에 있는 무명산성(음봉 신수리, 염치 동정리), 그곳에서 다시 서북서로 직선거리 약 4.2km 지점에 있는 영인산성과 연결된다. 남쪽으로는 직선거리 약 2.5km 위치에 있는, 현충사 뒤 방화산 정상에 위치한 백암리 산성과 연결된다. 꾀꼴성은 서쪽의 물앙성, 그리고 북북동으로 직선거리 약 3.2km 지점에 있는 연암산 봉수대 및 연암산성, 동남쪽으로 직선거리 약 5km 위치에 있는 호산리 산성과 연계된다.

- 삼국시대 백제가 축조
아산시 지역의 많은 산성들 중에서 백제초기의 대두산성과 탕정성 축조 기록 외에는 전하는 자료가 거의 없어서 정확한 위치나 축조 시기를 알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몇 개의 성은 백제 초기부터 축조되었을 것이고, 상당수는 삼국간의 항쟁이 치열했던 삼국시대에 백제 사람들이 처음 쌓았을 것으로 본다.

고구려의 남하로 인한 5세기 웅진 천도 이래로 아산시 지역은 국경 지역으로 고구려를 막는 최전방에 해당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6세기 신라와의 세력 다툼 시기에도 마찬가지였고, 통일전쟁 시기 신라와 당의 대립 지점으로 군사적 전략 요충지로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었다.

- 위기 때 산성에서 거주
예전의 전쟁 때에는 ‘청야입성(淸野入城)’이라는 것이 있었다. 평상시에는 마을에서 살다가 전쟁으로 긴박한 상황이 되면 마을과 들(식량을 주지 않기 위해 들판의 곡식을 없앤다는 의미)을 비우고 산성에 들어가서 장기전을 펼치거나 적이 지칠 때를 기다려 나가 싸우는 것이다.

공격보다는 방어가 유리했기 때문에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화포가 발달하기 전 시기에 전쟁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많은 산성들이 만들어지고 계속 수축을 하면서 유지 관리를 했던 것이며, 우리 지역의 산성들도 대개 그러하였다. 물론 성을 쌓을 때의 노역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고단한 것이었다.

↑↑ ▲ 꾀꼴산성에 설치된 운동기구. 관심과 정성에 감사하기는 하나 산에 오르는 고단함에 또 운동을 하라는 것인가, 꾀꼴산성과 영 안 어울린다.

ⓒ 온양신문

<가는 길> 가는 길… 동천리 윤대통령 묘소서 출발
폐허가 된 산성을 가만히 바라보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도 되니 철학이 나오고 문학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잘 복원된 유적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매력이다. 이곳도 굳이 큰 돈 들여 복원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현재 상태라도 잘 유지되도록 적절한 선에서 정비만 하면 좋을 것이다.

물앙성과 꾀꼴성으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짧은 시간에 가고자 하면 음봉면 송촌리에서 올라가 꾀꼴성을 먼저 보는 것이 좋다. 송촌리와 맞은편(북쪽)의 동암리는 흔히 ‘대동(이때 대는 대나무이다.)’이라 하고 김해김씨의 세거지로 유명하다. 송촌리 길가 느티나무 정자 옆에는 효자 김현(金鉉)의 정려가 있고 올라오는 길에 청계사라는 아담한 절을 구경할 수도 있다. 꾀꼴성의 동남쪽인 탕정면 용두3리 산골에서 오르면 사실 더 짧기는 하다.

일반적으로는 음봉면 동천리에서 오르는 것이 의미가 있다. 45번 국도에서 동쪽으로 1km 남짓 들어가면 윤보선 전 대통령의 묘소를 중심으로 해평윤씨 몇 분의 묘소가 있다. 이곳에서 묘소를 보고 묘역 뒤의 산길로 올라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시골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 산에 오를 수도 있다. 산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걷다보면 물앙성에 도달한다. 물앙성에서 꾀꼴성까지는 정말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부드러운 능선 길이다.

굳이 한 곳을 더 보자면 염치읍 대동리(황골)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도 좋다. 이 황골은 아산시 지역 남양홍씨의 뿌리가 되는 곳이다. 만전당 홍가신 선생의 묘소 등이 있고 작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홍가신 기념관도 들러볼 만하다.

물앙성과 꾀꼴성을 살펴본 뒤, 좀 떨어진 곳이지만, 연암산 봉수대나 이충무공 묘소 등을 더 들를 수도 있다. 아산온천에 들러 마무리를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 고장은 가볼 만한 좋은 곳이 참 많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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