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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석의 향토문화기행 도고 금산리 전통 옹기마을
살아 숨 쉬는 금산리 전통 옹기 물론 아직도 여러가지 문제점과 아쉬움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요즘에 와서 자연 환경 보존이나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바람직하게 잘되고 있는'일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도고 금산리의 전통 옹기도 그렇다.
가격과 편의성 때문에 플라스틱 그릇에게 자리를 내주며 외면 당해왔던 전통옹기를 최근에 와서 다소나마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정확히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아산과 예산 일대에 남한에서 옹기굽는 곳이 가장 많다고 한다.
옛부터 중국과의주요 교통로였던 태안반도와 아산만을 포함하고 있는 내포지방에 일찍부터 천주교가 전파되었고, 천주교 신자들은 정부의 박해를 피해 외진 곳으로 숨어들었는데 이들이 생계와 포교를 위해 옹기를 구워 팔러다녔다는 것은 어느정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지역도 마찬가지이고, 지금도 오랫동안 옹기를 구워 온 사람들의 80%는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
온양에서 예산쪽으로 가다가 도고레전타운 진입로를 지나 얼마를 가면 10번 지방도와 만나는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도고면소재지를 향해 300m쯤 올라서면 길 양쪽 여기저기 항아리가 쌓여있다.
길이 휘어지는 지점 길건너에 있는 이지수씨의 옹기 공장이 아산에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통옹기 공장으로 오늘 가볼곳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서면 후끈거리는 항아리를 만드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주인은 자리에 없고 옹기작업을 50여년간 하셨고, 지금은 가마의 불을 관리하시는 윤관봉(67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수 있었다. 만약, 발로 흙을 갠뒤 가래떡처럼 길게 늘여서 쌓아올라가며 안팎을 두드려 만든뒤 이것을 토굴가마에 넣고 나무를 때서 굽는 전통적인 제작법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하게 된다.
나는 편하게 아파트에 살고 승용차, 가스레인지에 냉장고를 기본으로 생각하면서 그분들에게만 옛방식을 기대하는 것은 실례가 된다.
이곳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토굴 가마에 나무를 때서 구웠지만 지금은 시간과 효율성 때문에 어쩔수 없이 금속제실내 가마에 석유를 때고 있다.
석고를 만든 틀을 전동 모터로 돌리는 물레위에서 돌려가며 질흙(원료가 되는 흙. 서너가기 엄선된 흑을 섰어서 개어 만든다)을 넣어 항아리의 '밑짝''위짝'을 따로 만들어서 그늘에 하루정도 말리뒤 이어 붙이게 된다.
젋은 청년이 '찍어내는 일'을 하고 이어붙이는 작업은 경험이 많아아보이는 50대 연배의이광석씨가 노련하게 손을 놀려가며 해내고 있었다. 그의 작업은 여전히 발로 돌리는 나무 물레 위에서 돌려가며 이을 부분에 안쪽에서 질 흑을 덧대고 손잡이를 익숙한 솜씨로 붙인 뒤에 '안긍개'와 '바깟긍개'로 안팎을 다시 매끈하게 다듬는 일이다.
더러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살짝 내보여주는 베레모 비슷한 모자가 인상적이다.
나중에 대개 예술가(?)들이 쓰는 모자를 벗어들고 정중히 작별인사를 마주하시던 모습도.
이분은 주인 이지수씨의 손아래 동서가 된다고 한다. 하긴 주인은 윤관봉씨의 처조카라고 하니. 이집의 전문기술자들은 인척이 된다.
다 만들어진 항아리는 하루 이틀즘 더 말린뒤 물칠(진흙탕처럼 유약을 풀어놓은 웅덩이(?)에 말린 항아리를 넣고 휙 돌려서 묻히는 과정)을 해서 다시 2~3일 정도 바짝 말리면 굽는 일만 남게된다.
지금의 석유 가마에서 9~10시간 정도 불을 때게 된다고 하는데 시중에서 흔히 볼수 있는 흑갈색의 반짝거리는 항아리는 광명단이라는 화학약품을 유약에 섰었기 때문에 1000℃에서 굽게 되지만 재와 흙('약토'라고 해서 물에 곱게 잘 풀어지는 특별한 흙)만으로 만든 무공해 유약을 바른 것은 1250℃정도의 고온이 필요하고, 1000℃까지는 어느정도 쉽게 올라가지만 아무리 석유불이라고 해도 250℃를 더 올리기는 무척 어렵고 서너시간 정도 불을 더 때야 된다고 한다.
지금도 특별히 주문받는 커다란 독이나 굴뚝 등을 물레에서 순전히 손작업을 한다고 말씀하시는 윤관봉씨는 천연덕스러운(아마도 오랜 경험과 연륜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애써 겸솜하려다보니 짓게 되는)미소를 띄며 전통옹기에 엃힌 자랑거리를 소개하신다.
예전 소들광문(합덕에서 선장쪽까지 이어진 넓은 들녘)에서는 웅덩이 간은 우물에 고인 물을 마시는데, 오래 고여있어서 냄새까지 나는 그물을 옹기에 담아 열흘 정도 두면 생수가 되어 물맛이 그만이었다고 한다.
또 집에서 한두마리의 닭을 키울때 알을 모아서 옹기에 두었다가 어느정도 모아지면 품게 해서 병아리를 깰수 있었지만 플라스틱 그릇이나 도자 따위에 넣어 두었다면 며칠 못가서 다곯아 버렸을 것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도 이곳에서 만들고 있는 전통의 무공해 옹기는 살아숨쉬는 그릇임에 증명된다는 것이다.
그분 말씀에 충남 일대에서는 예산 오가면의 오천리가 가장 오래된 곳이고,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지만 아산에서는 금산리 1구 노래골의 점(店, 예전에 여러가지 수공업적 생산이 이루어진덕곳)이 아마 가장 오래된곳일 것이라 한다.
실옥동, 모종동, 그리고 새우젖 단지를 주로 만들었던 인주 바닷가의 점 등 참 많았는데, 해방다음해에 오하영씨가 개발해서 늦게 생겨난 이 곳만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문을 닫은 공장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언덕에 비스듬히 만들어져 있던 굴가마의 흔적도 눈에 띈다.
한동안 맥반석 제품과 갖가지 돌침대가 유행하더니 요즘은 황도방, 황토침대, 황토바닥 등등 황토가 유행이다.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그렇지만 전통 옹기는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생활속의 용품으로 애용되리라고 기대하며 발길을 돌린다. <아산향토문화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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