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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메아리] 이색(李穡)선생이 주는 교훈

2010년 11월 26일(금) 17:06 [(주)온양신문사]

 

↑↑ 리한구 본보 대표이사

ⓒ 온양신문

목은 이색선생의 시는 당신의 자손들을 가르치기 위해 즉, 가훈과 같은 ‘뜻’이 내재됐다.

形端影豈曲(형단영기곡) 태도가 단정하면 그림자가 어찌 굽어지랴
源潔流斯淸(원결유사청) 근원이 깨끗해야만 흐르는 물이 맑으리라
修身可濟家(수신가제가) 몸을 닦으면 가정을 잘 정제할 수 있고
無物不由誠(무물불유성) 어떤 것이든 정성에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다
荒淫喪本誠(황음상본성) 거칠고 음란하면 그 본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妄動傷元精(망동상원정) 망령된 행동은 그 타고난 정기를 상하게 된다
所以戒自斷(소이계자단) 스스로 결단하는 것을 경계하는 까닭은
鑿根木不榮(착근목불영) 그 뿌리를 끊어 버리게 되면 나무도 무성치 않기 때문이다.

목은 선생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情)이며, 그는 이제현(李齊賢)의 문하생이었다.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1341년 진사가 되고, 1348년 원(元)나라에 가서 국자감(國子監)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했다고 한다.

1351년 부친상으로 귀국했고, 1352년 전제(田制)개혁·국방강화·교육진흥·불교억제 등 당면정책을 왕에게 건의했다 한다. 1353년 향시(鄕試)와 정동행성(征東行省)의 향시에 장원 급제하였고, 135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원나라에 가서 회시(會試)에 장원, 전시(殿試)에 차석으로 급제, 국사원편수관(國史院編修官) 등을 지내다가 귀국하였다. 이듬해 다시 원나라의 한림원(翰林院)에 등용되었다.

1356년 귀국해 이부시랑(吏部侍郞) 등 인사행정을 주관, 정방(政房)을 폐지했고, 이듬해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때는 3년상(三年喪)을 제도화 했다. 1361년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으로 왕의 남행(南幸)을 호종하게 되고, l등공신이 된 후 좌승선(左承宣) 등 여러 관직을 지냈다. 1367년 대사성(大司成)이 되자 성균관의 학칙을 새로 제정해 김구용·정몽주·이숭인 등과 강론,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다고 한다.

1373년 한산군(韓山君)에 책봉된 후에는 신병으로 관직을 사퇴했으나 1375년 우왕의 청으로 다시 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역임했고, 1377년 추충보절(推忠保節) 동덕찬화공신(同德贊化功臣)의 호를 받고 우왕의 사부(師傅)가 됐다.

1388년 청령위(鐵嶺衛) 사건에는 화평을 주장했고 이듬해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으로 우왕이 강화로 유배되자 조민수와 함께 창(昌)을 즉위시켜 이성계의 세력을 억제하려 했으나 이성계가 득세하자 다시 여흥 등지에 유배됐다가 풀려났다. 조선 개국후 인재를 아낀 태조가 1395년 한산백(韓山伯)에 책봉했지만 사양했고, 이듬해 여강(驪江)으로 가던 중 죽었다고 한다. 문하에 권근·김종직·변계량 등을 배출해 학문과 정치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고 한다.

목은 이색 선생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라 생각든다. 이러한 어른께서 특히 자손들에 대한 배려가 깊으셨다. 그야말로 예의범절과 처신에 대하여 선비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젊은이들이 오도된 민주주의 의식 때문에 각자위심(各自爲心)하여 제 멋대로 처신하는 꼴은 목불인견이다.

이것은 젊은 사람보다 기성세대인 즉, 늙은이들이 자손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는 것에 귀책 된다. 젊은 일부는 착실하지만 대부분은 그러하지 못해 유감이다. 공중도덕감이 결여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치인을 비롯해서 모든 분야의 거개가 그렇다. 윤리학에서 밝힌 바와 같이 지나친 이기주의 는 투쟁불면이고 지나친 이타주의는 자기 희생불면이라고 했다. 이타와 이기의 중간인 중용적 처세가 합당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금세기는 모두가 이기주의 쪽으로 치중하고 있다. 죽으면 1원하나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을 그야말로 멍텅구리 같이 말이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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