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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석의 향토 문화기행 둔포 신항리 윤씨가옥-1
등잔밑이 어둡다고나 할까.
원래는 해평 윤(海平 尹)씨인데 이 지역에서는 새말 윤씨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고, 그 새말은 바로 둔포면의 신항1리 ‘새말’이라는 마을이었다.
음봉 동천리에 있는 윤보선 전대통령등 윤씨 일가의 묘소는 전에 다녀왔고 이번에는 둔포면 신항리에 있는 ‘새말 윤씨’의 근거지를 찾아가 보자.
이곳은 약 100년전에 세워진 전통목조건축물들이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여러채 있으니 그 또한 중요한 볼거리가 될 것이다.
온양에서 음봉을 거쳐 둔포 경계에 이르면 오른쪽에 봉재 저수지가 길을 따르고, 저수지에서 약 1km 지점 청맥주유소 못미쳐에 있는 작은 사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두메산골이라는 음식점의 입간판이 거창한 곳. 그곳에서 왼쪽(서쪽)으로 접어들어서 1.5km 쯤에 새말이 있다.
둔포면 소재지에서 오는 쪽은 안내판이 잘되어 있으나 온양쪽에서는 안내판이 없어서 자칫하면 지나치게 된다.
중간의 갈림길에는 향각골이라는 표지석과 어딘가에서 가져다가 마치 돌장승처럼 좌우에 문인석을 세워둔 곳이 있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나타나는 ‘새말’ 어구의 느티나무 바로 앞에서 왼쪽으로 간다.
새말에는 현재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 196호인 윤 전 대통령 생가, 도지정 민속자료 제12호인 윤일선 가옥, 제13호 윤제형 가옥, 제15호 윤승구 가옥등 윤씨일가의 고가 4채가 있다.
공동으로 사용했다는 소슬대문과 함께 ‘윤일선 가옥’의 뒤편에 ‘윤승구 가옥’이 있고 이와 나란히 ‘윤제형 가옥’이 있으며 밭을 건너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윤보선 전대통령 생가’가 자리잡고 있다.
우선 접하게 되는 것이 윤씨일가가 공동으로 사용했다고 하는 소슬대문이다.
대문을 공동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모든 가옥이 하나의 울타리로 둘러싸인 것이 아니고 각 가옥마다 대문이 따로 있고, 대문은 ‘윤일선 가옥’의 남쪽 담장과 붙어있다.
대한 광무9년(1905)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으며 문간 왼쪽 행랑채를 이용한 영세한 살림집이 있지만, 처음부터 크게 화려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세울 당시의 당당했을 모습을 미루어 생각해보면 현재는 전체적으로 쇠락한 형편이다.
윤일선 가옥은 소슬대문 안쪽으로 난 대문이 잠겨 있어서 담장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함석문이 있고 그 안에 함석지붕으로 되어 있는 살림집이 있어서 그곳을 통해 들어가 보게 된다.
다니면서 보게 되는 토담은 흙돌로 쌓고 겉을 흙으로 덧바른 뒤 기와지붕을 얹은 방식이 기본이고 그 이외에 구운벽돌을 이용하여 쌓은 부분도 보인다.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처진 □자 형태로 배치되고 그 사이에 안뜰이 있다.
안채는 나무광과 다락이 함께 설치된 부엌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고 대청이 시원스레 깔렸으며 사랑채는 문간채처럼 대문간에 붙어 있고 큰 사랑방 바깥으로 대청 마루를 둘렀고 판문으로 처리했다.
사랑채 바깥의 장대석(직육면체로 길게 다듬은 돌)기단이 볼 만한데, 이는 윤승구 가옥의 기단 장대석이 지나치게 큰데 비해 적절한 크기로 조화를 이루어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곳을 둘러보노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람에게 독이 있나보다.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금방 표가 난다.
집은 빛과 색을 잃고 뜨락은 또 그만큼 어수선하다. 일일이 풀을 뽑지 못해 가끔씩 제초제를 뿌리는 듯, 누렇게 말라 죽은 풀들이 차라리 애처롭다.
아무리 잘 지었던 집이고 도 지정 문화재라고 하지만 사람이 실제로 살고 있지 않은 집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아산향토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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