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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존경하는 듯 하나 내심으로는 꺼리고 멀리한다는 뜻이다. 사실(史實)에 의하면 공자는 양친(兩親)이 야합(野合)하여 태어난 요즘에 말하는 혼인 외 출생자다. 그의 부모는 하늘에 제사를 올리지도 않았었으며 조상의 신령에 고하지도 않고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 이 점이 늘 공자의 마음을 괴롭혀서 항상 우울의 잔재가 있다고 했다. 만약 공자가 도덕적으로 완벽을 기하고자 했다면 부모의 행위를 부정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부모의 행위를 용납하면 덕(德)을 해치는 행위를 긍정하게 될것이다. 어느날 ‘번지’라고 하는 제자가 지(知)라는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지(知)라는 것은 스스로가 해야할 일에만 노력을 하고 사람의 영혼인 귀(鬼)와 초월자인 하느님을 공경하면서 멀리하는 것이 지(知)라고 할 수 있다. 공경은 하되 멀리 둔다. 공경을 하지만 친밀하게 여기지 않는다. 또는 신(神)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경원(敬遠)이라는 말이 곧 경이원지(敬而遠之)와 같으며 ‘꺼려서 피한다’는 의미가 짙다. ‘채근담’에 있는 말이다. 도덕을 닦아 나감에는 염두(念頭)를 목석(木石)같이 가져야 한다. 만약 한번 부러워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내 욕경(欲境)으로 달려갈 것이다. 나라를 경영함에는 구름과 물같은 취미를 가져야 한다. 만약 한번 집착하는 마음을 두면 곧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런가 하면 중용(中庸)에서는 “도덕의 마음은 한순간도 이것을 떠나서는 안된다.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은 도덕이 못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남이 보지 않는곳에 근신하고 남이 듣지 않는데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것이다.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소인들은 이와 반대다. 사람들의 단점이 아니면 화(話)제가 없고 남을 조금씩 도우면 공치사를 한다.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한다 하더라도 공치사를 하면 그 순간부터 선행의 업적이 소멸한다. 나는 얼마 전에 친지에게 의도적으로 몇 차례 가벼운 신세를 진적이 있다. 그 친구는 어느 때에 이르러 반드시 공치사를 할것라고 살펴봤다. 그 친지는 평상시 인정과 동정심이 있어 좋은 일을 하는 편이 많다. 그러나 공치사도 한다. 인간이라는 것은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된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은 착한 사람일지라도 내일은 악한 사람이 된다. 그렇지만 바른 도덕의식을 가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더욱 확실히 말하면 도덕을 장려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위대하고 편견 없는 듯한 사람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공경해서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라 하겠다. 이로우면 좋아하고 좀 해로우면 삐죽대는 사람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이라고 선배들은 말하고 있다. 즉 가깝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멀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을 대해보면 상중하가 있듯이 심리와 행동이 다르다.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게 세상 인심이다. 솔직히 표현하면 득보다 손해가 많으니까 자연히 표리있는 언행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지식이 있다는 사람들의 말이다. 세상인심은 요지경 같은 인심이다. 그래서 경이원시(敬而遠視)하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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