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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상조(肝膽相照)’란 자기 뜻을 알아주는 절친한 친구를 뜻한다. 이백이 “두보의 몽”에서 읊조렸던 낙월옥량(落月屋梁)이나 “관포지교”처럼 자신의 속내를 보여줄 수 있는 친구를 말한다. 중당(中唐)의 문인 한유는 당송 팔대가로 이름이 높았기 때문에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그 중의 얘기다. 유종원(柳宗元)이라는 사람이 유주자사(柳州刺史)로 임명되었을 때 마침 유몽득(柳夢得)도 파주자사(播州刺史)에 임명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말을 들은 유종원은 울먹였다. ‘파주란 매우 멀고 좋지 않은 곳인데 어찌 몽득 같은 사람이 살 수 있겠는가? 더구나 양친에게 어떻게 말씀을 올려야 할지를 몰라 망설이는 것은 차마 두고 볼 수 없다. 나이든 어머니와 함께 부임을 할 수 없을터이니 내가 몽득을 대신하여 파주로 나갈 것을 지원해야겠다’ 한유는 둘의 우정에 깊이 감복했다 한다. 훗날 유자후 묘비명(柳子厚 墓碑銘)에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은 역경에 처했을 때 비로서 참다운 절의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에 서로 그리워하고 즐거워하며 사양을 하면서 손을 마주잡고 간(肝)이나 쓸개(膽)를 들어내 보이고 하늘을 가리키며 배반치 않을 것을 맹세하지만 일단 이해관계가 생기다보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거들떠 보지않는다. 함정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기 보다는 오히려 밀어넣어 돌을 던지기까지 한다’ 간과 쓸개를 내어놓고 서로에게 보일 수 있는 친구는 아무래도 상대의 아픔과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다. 두보의 ‘빈교행(貧交行)’에 나오는 ‘관포지교(管鮑之交)’가 그런 것이다. 또한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말(근묵자묵·近墨者黑)이 있는가 하면 굴뚝에 들어가면 아무리 조심해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더러운 것이 묻는다. 또한 삼손우(三損友)란 말이 있다. 즉 사귀어서 손해가 되는 사람, 편벽한 사람, 선유한 사람이다. 필자가 10세 때의 일이다. 선친(先親)께서 말씀 하시기를 “누가 아버지 함자를 물으면 ‘쫛자쫛자요’라고 해야지 그냥 이름만 불러 ‘쫛쫛’이라고 하면 배움 없는 막된 사람이라고 하며 남의 집 어른이나 선대조는 반드시 존칭어(尊稱語)로 존경해야 한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친구끼리 잡담을 할 때도 상대방의 선대나 선대조는 꼭 존칭어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에게 자기 아버지 이름을 물으면 함부로 ‘쫛쫛쫛’이라고 성명만 대답하는 학생이 간혹있는가 하면 ‘쫛자 쫛자요’라고 대답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신의성실(信義誠實) 하지 못하거나 예의가 없으면 ‘간담상조’가 존재하지 못한다. 친할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 그러하지 못한 사람은 차라리 경이원지(敬而遠之) 즉 공경하여 멀리 하는 쪽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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