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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도권 안과 밖에서 아산의 문화예술을 이끌어왔던 고 김동직 시조시인과 고 양준호 전 회장 | 80년대 초만 해도 아산지역의 문화예술은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가운데 ‘일요화가회’와 학생들을 대상으로한 ‘머루네문학회’, ‘미가회’ 정도가 그나마 아산 문화예술의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일요화가회’는 당시 경남제약의 창업주인 고 양준호 회장께서 순수 아마추어 미술동호인을 규합해 만든 단체로 현재까지도 그 고고한 맥이 이어져 오고 있음은 아산의 문화예술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 양준호 회장은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시와 수필을 쓰는 문인으로서, 그리고 틈만 나면 만돌린을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음악가로서도 나름의 탄탄한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1987년 이후 아산예총이 탄생하자 그 후견인을 자처하면서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을 동시대 문화예술인들은 잊지 못한다. 고 김동직 시조시인은 대전시청에서 고위 공직자로 근무하다가 말년에 온양시 부시장으로 내려와 고향을 위해 봉사했다. 대전시청 재직 당시 우리나라 중부권 유수의 시조문학단체인 ‘가람문학’의 회원으로서 현대시조문학 인구의 저변확대 차원에서 전국의 문학지망생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한밭시조백일장을 창설을 주도한 바 있으며 이 대회는 지금까지도 계속돼 한국현대시조단의 중요한 등용문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향에 내려온 고 김동직 시인은 당시 지역의 문화예술 환경이 척박한 것을 목도하고 안타까와 하다가 극소수의 예술가들을 규합해 어렵사리 태동시킨 것이 예총 아산지부이고, 초창기 여러가지로 어려웠던 예총을 직접 맡아(2대 지부장) 오늘날 여타 지부 부럽지 않은 문화예술단체로 성장시키는데 중요한 토대를 쌓았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분은 가까운 시일에 잇달아 타계해 아산의 문화예술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후 이분들이 뿌려놓은 아산문화예술의 씨앗은 작금 국악·무용·문인·미술·사진·연극·연예·음악협회 회원 500여명으로 성장해 탄탄한 입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분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이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을 기리는 상징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젊은 회원들은 이들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다. 따라서 향토예술의 토대를 쌓은 이분들의 공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이분들의 이름을 딴 예술인상의 신설이나 시비 정도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자신들의 뿌리격인 이분들의 유지를 받들 중지를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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