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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천 낀 아산만 전투 근거있어 당군이 아산만 백사장 보고 ‘백강’호칭 무한천 활용 내륙까지 접근 용이 아산만은 백제부흥 전투 벌인 ‘전쟁터’ 순천향대학교는 지난 5월 25일 아산학연구소를 개소하고 6월 1일과 8일 양일 간에 걸쳐 아산학연구소 창립기념 제1차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본지에서는 이번 학술대회에 발표된 4편의 논문(대주제 '동아시아 속의 전쟁과 아산만' - 아산의 국제적 위상 절입을 위한 모색)을 요약 게재한다. □ ‘백제 부흥전쟁과 아산만’ 장학근(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장) 역사는 중단 없이 발전하고 있다. 같은 역사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관점에서 그 사실을 보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 백제 말기 백제부흥 전사는 ‘민족흥망사’, ‘국난 극복사’, ‘민족 문화사’의 관점에서 우리에게 민족적 반성과 자각을 일깨울 수 있고, 그 인식의 기반 위에 국가발전의 지혜를 찾을 수 있는 분야이다. 백제 부흥전사는 그 기간이 짧지만 백제·신라·중국·일본 4개국이 참가한 국제전이다. 불행하게도 이 기간의 국내외 사료가 소략해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 뿐만 아니라 제시되는 지명의 위치를 분명히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 이로 인해 당시 전개되는 부흥전투지역의 위치마저 설왕설래하는 실정이다. 이 분야를 정리한 최근의 학술 논문은 김영관 박사의 ‘백강구 전투와 주류성’(군사 65호, 2007년 12월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이다. 김 박사는 선행연구로서 ‘나당연합군의 백제침공전략과 백제의 방어전략’(스트레티지21, 1999년 2월 한국해양전략연구소)을 통해 백강의 위치를 금강하구로 비정한 바 있다. 김 박사의 최근 논문 ‘백강구 전투와 주류성’의 핵심 내용도 백강은 지금의 금강 줄기 전체를 말하며, 백강 입구는 오늘날의 금강하구가 분명하고, 주류성은 변산반도의 위금암산성(우금산성)이라고 단언했다. 그간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많은 관련 사료를 종합한 논문으로 설득력 있는 연구결과이다. 그러나 김 박사의 논문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수 없는 것은 전술적 측면 때문이다. 김 박사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당시 백제의 부흥운동은 전국적인 현상이었으며, 본진(주류성)을 천해의 요새이며 금강하구(백강구)가 가까운 위금암산성이라고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임존성(예산군 대흥면)과 주류성(부안 변산반도) 간의 먼 거리관계로 백제 부흥군이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성립되기 어렵다. 또한 백제 말기 부흥전투는 인원, 군량, 무기, 군사의 정예도 등 전반적인 면에서 백제가 불리했다. 군사력이 부족할 때의 전투는 평야지대(금강 남쪽) 보다 협곡지대(금강 북쪽)에 군사기지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두 전술적 관점에서 재야사학자 박성흥ㆍ박태신 두 분의 연구결과를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된다. 백제 부흥전사는 사료가 소략한 관계로 전투지역을 정확하게 구명하기 어렵다. 최근 주류성과 백강의 지명을 고증한 논문은 김영관 박사의 ‘백강구 전투와 주류성’이다. 이 논문에 의하면 백강은 지금의 금강줄기 전체를 말하며, 백강구는 금강하구이며, 주류성은 변산반도의 위금암 산성이라 결론지었다. 그간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내린 결론임으로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 박사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전술적 견해에 부합되지 못하고 있다. 첫째. 사료에 의하면 임존성과 주류성이 긴밀한 군사협조관계를 이루었다고 한다. 두성이 긴밀한 군사협력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한다. 학계가 밝힌 임존성의 위치는 예산군 대흥면 상중와 동산리에 걸쳐 있는 곳이다. 주류성이 변산반도의 위금암 산성이라고 한다면 긴밀한 군사협조관계를 이룰 수 없다. 둘째, 사료에 의하면 주류성은 부흥전투를 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주류성을 지원하는 배후세력이 많았다. 변산반도의 위금암산성 자체는 군사적 요새지라고 할 수 있지만 금강 남쪽 지역 대부분은 평야지대라 부흥전에 부적합하다. 셋째, 당나라 선단이 백강에 도착한 것은 공주에 집결해 있는 당군과 상륙군에게 군수품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당나라 선단이 집결한 곳이 금강하구라고 하면 주류성과 거리가 멀며, 당의 상륙군이 전투편성과 전과 확대를 할 수 있게 전략기지 확보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전술적 견해의 오류를 보완할 수 있는 이론이 바로 박성흥·박태신 두분의 학설이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두 분이 추정한 주류성의 위치는 충남 홍성군 장곡면 대현리 학성산성이다. 따라서 임존성과의 거리는 12Km에 불과하다. 이 거리는 두 성간의 유기적 지원협조체제를 이룰 수 있는 적합한 거리이다. 둘째, 주류성(학성산성) 주변에 많은 산성, 중첩된 산곡이 있어 전투력이 약세인 부흥군이 게릴라전을 전개하기 쉽고, 나당군 지휘부가 있는 공주산성을 기습하기 쉬운 곳이다. 셋째, 박성흥 선생이 비정한 백강은 아산만 지역이다. 그리고 사평성은 당진군 신평면 지역이다. 박 선생의 이론에 의하면 신라의 육군이 백제 남쪽의 거물성 거열성 덕안성을 점령할 때 신라 수군은 기습적으로 백제 북쪽의 사평성을 함락했다고 했다. 이것은 당의 상륙군이 그곳에 상륙하여 안전하게 군을 재편성하여 전과를 확대할 수 있게 한 사전조치였다. 그런 후 신라는 안내선단을 덕적도로 보내 당 선단을 당진군 석문면 장고항 쪽으로 인도했다. 이 때 당군은 장고항 연안 4km 백사장을 보았고 리아스식 만인 아산만 내의 모습이 마치 강과 같아 그곳을 백촌강(白村江) 혹은 백강구(白江口)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산만은 무한천이 있어 병사를 주류성 인근까지 접근 상륙 시킬 수 있어 전술적으로 유리한 해역이다. 아산만에 상륙한 당군은 북쪽에서 남으로, 신라군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백제 부흥군을 협공했다. 이럴 때 일본의 백제 지원 선단이 도착했다. 백제 풍왕은 군선 수가 우세한 일본선단으로 아산만에 정박해 있는 당 선단을 공격하게 되면 나당연합 군의 협공을 받고 있는 내륙의 부흥군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지원 선단에게 당 선단을 공격할 것을 요청했다. 일본 지원 선단은 휴식과 전투편성도 하지 않은 채 당 선단을 선제공격했지만 당군의 화공전법에 휘말려 섬멸적 타격을 받았다는 것이 박성흥 선생의 논리다. 이와 같은 전술적 관점에서 박성흥 박태신 두 분의 학설은 상당한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학계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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