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경석의 향토 문화기행
어금니 바위가 고대부터 고을이름에 활용되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침체되었던 영인 일대가 이제는 아산만권, 특히 아산온천, 영인산 개발과 더불어 활기를 띠게 되었고 머지않아 크게 변모할 것이다.
앞으로야 그런 일은 신중히 진행되리라 믿지만 그 개발이라는 것이 되고나면 남겨야 할 것들 중에서도 없어지는 것들이 수두룩 하곤 했으니 변하기 전의 모습을 미리 담아두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옛 아산현은 지금의 영인산을 중심으로 인주,음봉,둔포,염치등 지를 아우르는 곳이었으며 영인면 소재지인 아산리 일대가 그 중심지였었다.
영인산을 남으로 두고 아담하게 둥지를 튼 면소재지의 시가 입구에서 왼쪽으로 난 좁은 길로 접어들면 어엿하게 서 있는 누문이 눈에 들어온다.
여민루,위민지려 말그대로 하면 윗층 누각에 올라 앉아 백성들의 안위를 심려하는 곳이다.
현실은 상당히 거리가 먼 얘기지만 유교정치에서는 위민정치를 표어처럼 내걸곤 했으니 이름은 참좋은 이름이다. 군수나 현령,현감등 수령을 목민관이라 했다.
가축을 돌보는 목부처럼 백성들을 돌본다는 사람들이다.
백성은 그들에 의해 돌보아져야 할 대상 객체가 되는 것이니 민이 주인인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지만 위민 이라도 제대로 되었어야 했다는 생각을 해보며 천천히 둘러본다. 여민루는 구온양의 온주아문과 성격이 같다.
아산현 관아의 정문인 셈이다.
현재의 건물은 18세기 후반의 것이라 하는데 여민루라는 이름은 그전에 지은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정면 3칸 옆면2칸의 2층 문루로서 아래층은 문을 달고 옆면에는 판벽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날렵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영인초등학교가 관아지리인데 학교가 세워질 당시에 객사 건물이 교실로 쓰였다고 하며 운동장 강 있는 은행나무가 그간의 내력을 우리보다 속속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여민루 앞공터 맞은 편 길옆에 있는 낡은 기와집 한 채가 관아의 부속 건물로 알려져 있으나 주인이 조만간 헐어내고 새 집을 지으려 한다는데 어찌 되어 가는지 알 수 없다.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이 아산 현감으로 1578년 약1년동안 와 있었다는 것도 들어 둘 만한 일이다.
유명한 아무개가 와 있었다더라하는 그 자체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향교를 현재의 위치로 옮기도록 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더욱 의미 있는 일은 걸인청을 설치하여 걸인과 빈민의 구제 활동을 펼치다가 재직중에 사망했다는 점이다.
지금도 이 지역분들은 걸인청에 대한 사실을 알고 계시다. 그의 토정비결이 원래 나 혼자의복이나 구하려고 점을 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 진대,수령중에는 참답게 목민하는 사람들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산리 일대는 차를 타고 다닐 수도 있지만 넓은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걸어 다녀 보는 것이 제 맛이다.
걸어다니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해보고 곳곳에 남아 있는 돌담이며 기타 여러 자취들을 통해 마음으로 느껴보는 것이야말로 답사요, 기행의 참맛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