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6-11-03 오후 05:56:05  

전체기사

사설

온천동메아리

기고문

기획기사

종합

칼럼

행복한아산

아산의 야생화

아산의 길

커뮤니티

뉴스 > 기고/칼럼 > 기획기사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113호 1996년 11월 1일 천경석의 향토문화 기행

2007년 05월 15일(화) 09:44 [(주)온양신문사]

 

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체'; TEXT-ALIGN: justify">천경석의 향토문화 기행

온양의 본터 - 온주동(上 )


어떤 문화유적이나 유물은 그 자체가 갖는 아름다움이나 의미 못지 않게 그것을 만들었거나 당시에 관련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보는것이 중요하다.


역사적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복원해보는것이 오히려 더 필요한 일이 라고 할수 있다. 옛일을 전해주는 기록들을 불충분한 상황에서 그런 노력들을 통해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많은 사실들을 유추하는 묘미가 있는 것이다.


구온양(온주동을 그 동안 지역에서 부르던대로 “구온양”으로 함)삼국시대 이래로 매우 오랜기간동안 역사가 이어져 온 이지역의 중심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사실들을 말해주는 유물이나 유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도 주택이나 아파트 등으로 인해 금방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래서 구온양에 가면 별로 볼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지역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는 형편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를 세운 온조왕 36년(서기 18년)에 탕정성을 쌓고 대두성의 주민들을 옮겨 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탕정성은 지금 탕정면이 아니고 온양의 백제때 이름이다.


비록 조신시대에 여러 왕들의 행온(온천 나들이)으로 ‘온궁’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온천동 일대가 온양의 중심지가 된것은 일제 강점기에 장항선 철도가 개통된 이후의 일이다.


구온양은 적어도 백제 이후부터 구한말인 20세기 초까지 이지역의 중심지로서 발전해왔던 것이다.


이곳에서 찾아볼수 있는 백제때의 유적으로는 산성(뒷산에 산성이 있는데, 산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살펴보기로 함)이 있다.


고려시대의 당간지주를 통해 절이 있었음을 알수 있고 , 산기슭에 있는 온양향교와 온주아문을 보며 조선시대의 모습을 생각해볼수 있다. 비록 화려하거나 많은 유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생각해 볼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은 남아있는 곳이다.


온주 아문은 2층누각 형태로 관아의 남쪽에 세워진 출입문이다. 훼손을 막기 위해 요즘은 계단위 통로를 막아버렸다.


긴 사다리꼴의 돌기둥 위에 아름드리 나무기둥을 세워 그 위 2층을 정자처럼 아름답게 만들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왕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나가는 과정에서 전국 각 군현의 관아 건물을 대대적으로 보수 ․ 증건했는데 온주아문도 약 130년전인 1871년에 지어진 것이다.


‘온주’는 신라 문무왕때 탕정군을 온주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 앞쪽의 당당한 남산(설화산)을 바라보며, 이문으로 드나들었을 관리나 백성들의 모습을 떠올릴수 있다.


하기야 일반 백성이 이문으로 들어올때는 좋은 일인 경우는 거의 없었으리라.


병졸들이 버티고 지켜 선 문 앞에서 기가 죽은 백성이 서성이는 모습. 그들이 머뭇거리며 서 있었을 자리에는 고덕비 따위가 즐비하다. 그것만 놓고 보면 세상은 당연히 태평성대가 되었으리라.


지금도 역사속에 공덕비를 세워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인해 참으로 많은 모순과 졸속이 자행되기는 하지만 사람이 모든면에서 만족하며 살수는 없는 일이고 그래도 현대에 태어나 사는것이 새삼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문안으로 들어가면 최근에 복원된 관아 건물이 한동 있을뿐 정리가 안되고  산만한 상태로 남아있다.


지방자치 시대에 지역의 문화제에 대한 복원, 정비 사업이 여러 가지 목적에 의해 관심있게 추진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재정적 뒷받침이 부족한 탓에 어려움이 많음을 알수 있다.


우리 아산시도 전통문화를 관광자원화 하는데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할것같다.


온주 관아 지역에서 서쪽, 파출소 맞은편 갈림길 근처에 당간 지주 1기 서 있다.


당(당)은 깃발, 간(간)은 깃대이니, 당간지주란 깃대를 세우기 위해 만든 돌기둥을 말한다.


불교는 여러 종파가 있었고 사찰도 그 종파가 각각 다를수밖에 없으니 아마 절 앞에 종파를 표시하는 깃발 등을 내걸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깃대는 대개 나무로 만들어서 전해지지 않고, 지주만 남아있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슷하게 생긴 것이 절 안의 본전 앞에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대규모 행사 때 괘불(‘탱화’라고도 하며, 천에 부처님 등을 그린걸개 그림)을 걸기 위한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온주동 당간지주는 보물 537호로써 3m 가량의 높이에 기교를 부리지 않고 간결하게 다듬어져 있다.


그 남쪽에 연못이 있었고 북쪽에 사찰이 있었으리라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는 없으되 조신시대의 억불 정책과 관련이 깊을 것으로 주정해 볼 수 있겠다. 계속

(아산향토 연구회장)

온양신문 기자  
“지역정신 온양신문”
- Copyrights ⓒ(주)온양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온양신문사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온양신문사

 

 

시민들의 가까운 이웃, 신우새마을금고 [온양신문사] 기자

김예진 화가, 첫 개인전을 열다 [온양신문사] 기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이현상 [온양신문사] 기자

“아산이 참 좋고 자랑스러워요” [온양신문사] 기자

농부가 된 교수, 김동진 별빛생태농원 대표 [온양신문사] 기자

“놀이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든다” [온양신문사] 기자

정쟁에 휘둘리지 않고 건전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다 [온양신문사] 기자

이전 페이지로

 

 최근기사

 

220만 삶 ‘AI 대혁명’ 불지핀 ..  

‘충남 일자리 정책 이끈다’ 제4..  

충무교육원, 이순신 나라사랑 교..  

“글로벌 기업 투자, 3력·광속으..  

지역 국회의원과 ‘13.5조 확보’..  

민선9기 공약실천계획 도민과 함..  

아산시, 지역사회보장계획 평가 8..  

아산시, 도고면 기곡리 침수 대응..  

어르신 목욕·이용 편의 높인다…..  

도고면 행복키움추진단·파라다이..  

[시대진단] 다수결이면 다 정의로..  

충남교육청, 다문화 교육 연구학..  

충남교육청, 2026년 성과관리지원..  

“11월은 ‘정리정돈의 달’, 현..  

충청광역연합의회 제12회 정례회 ..  

아산시시설관리공단, 자원순환의 ..  

충남교육청 학생건강교육센터, 김..  

선문대 치위생학과, 한국치위생과..  

수피아사회적협동조합, 베이커리..  

‘그대! 80개의 나래를 펴라’  

회사소개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구독신청 - 기사제보 - PDF 지면보기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배너모음

 상호: (주)온양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312-81-25669 / 인터넷신문사업 등록번호: 충남, 아00095 / 제호: i온양신문 / 주소: 충남 아산시 남산로8번길 6 (온천동 266-51) / 발행인,편집인: 신민철
등록일 : 2010년 9월 24일 / mail: ionyang@daum.net / Tel: (041) 532-2580 / Fax : (041) 532-458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민철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