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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1 천경석의 향도문화 기행 송악 봉곡사를 찾아서
별 생각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올수 있는 곳을 생각하면 우선 봉곡사가 떠오른다.
송악에서 유구쪽으로 첫 고개를 넘어서 송악 저수지 남쪽 상류에 있는 송남 휴게소를 가면서 마음을 편안히 하다보면 봉수산 북쪽 기슭의 숲 속 언덕길에 다다른다.
차를 가지고 간다면 이쯤에서 차를 세워두고 걸어 올라가야 제격이다. 이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우거진 아름드리 소나무 숲은 이 절집의 으뜸이 되는 첫 번째 매력이기 때문이다.
꼭 눈여겨 보지 않더라도. 얼마를 걷다보면 소나무 줄기마다의 상처가 눈에 와서 박힌다.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식민지 잔재와 친일파의 행적처럼,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총독부 건물을 부순다고 해서 식민지 잔재가 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반 세기의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각고의 노력 없이 억압과 수탈의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닌가 보다.
이 생각 저생각 하며 경내 가까이 가면 안내판이 서 있다. 여기도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고려후기에 보조국사가 크게 중창을 했으며, 그 뒤 몇 차례의 중창을 거치며 오늘에 이른 것이라 한다.
왜란때 모두 불타서 그런지 규모는 아주 작아서 차라리 아담하다. 본래 이름은 석암사(石庵寺)였는데 근래에 와서 봉곡사로 바뀌었다.
어느 절에 가나 절을 처음 짓거나 중창한 사람은 대게 정해져 있다.
자장, 원효, 의상, 도선등이 창건하고 보조 지눌들이 중창 했다고 한다. 아마 고승의 이름이 얽혀야만 남들이 알아주는 경향이 있었나 보다.
그러려니 생각하면, 그 때문에 이 절의 맛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일주문이나 사천왕문이 없어서 격식 갖춰진 엄격한 분위기가 없는 대신 부담이 없으므로 그냥 불쑥 경내에 들어서면, 산뜻하게 다듬어진 뜰을 중심으로 북서쪽에 높은 단을 만들어 대웅전과 왼쪽에 향각전이 있고, 북쪽 한단 낮게 요사채(흔히 고방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살림집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남쪽 한켠 언덕같이 높다란 곳에 삼성각이 자리잡고 있다.
가장 눈을 끄는 곳은 요사채인데, 주지 스님의 말씀은 “불교를 억압하던 조신시대에 지어져서 지붕이 낮아 답답하고 부처님도 당당하게 고개를 세우지 못하고 수그리고 계실 수밖에 없는 집” 이라고 하신다. 조신시대 건축의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ㅁ’ 자 형태인데 남쪽 부분을 현재 방안에 문수보살님을 모시고 있어서 ‘문수전’으로 손질할 예정이라 한다. 되도록이면 이 요사채 안의 문간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며 방들을 휘 둘러봐야 할 일이다.
깔끔하고 조촐한 살림살이를 살펴 보다가, 문득 근대 불교 중흥을 이루고 일제의 불교 훼손을 거부햇던 만공 큰스님을 떠올려 볼 일이다.
봉곡사는 만공스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그 뒤 그분은 경허스님의 수제자로서, 주로 수덕사에 머물면서 덕숭총림의 토대를 닦았던 것이다.
지금 이 작은 절집에서 그런 인연이 다 있었던 것이니. 지금 계신 주지스님도 눈이 산머루처럼 맑은 비구니이신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가 보다. 경내로 들어오는 공터위에 현대적 감각의 만공스님 탑이 모셔져 있다.
봉곡사에도 대웅전의 불화(영산회상도)나 문수보살상등 문화재가 있지만, 크게 구애 받지 말고 그저 눈에 보이면 보이는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부담없어 좋은 일이다.
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편안하고, 특별히 눈여겨 봐야 할 것이 없으니 차라리 나 자신을 살펴보게 된다.
유명한 문화재나 화려한 건물은 없다 해도 있을것은 다 있기 때문에 아니겠는가.
봉곡사는 오가는 즐거움이다. 늘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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