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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정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비극의 서사에서 화해의 서사로

2026년 05월 08일(금) 09:56 [(주)온양신문사]

 

↑↑ 유은정 순천향대학교 강사

ⓒ (주)온양신문사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에리식톤은 농경지를 넓히기 위해 데메테르에게 바쳐진 숲을 파괴하고 여신의 신목으로 숭배되던 참나무를 베어 버렸다. 이 나무는 님프인 하마드라이어드가 깃든 나무였다. 님프의 영혼은 ‘이 원한은 데메테르 여신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라고 저주하였다. 분노한 데메테르는 기아의 여신인 리모스에게 부탁하여 에리식톤에게 끝없는 굶주림의 형벌을 내리게 하였다. 에리식톤은 끔찍한 배고픔에 시달리며 재산을 모두 탕진하였고, 딸인 메스트라까지 팔아서 식량을 마련하였다. 결국에는 자신의 몸까지 뜯어 먹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에리식톤은 자연과 신성한 공간을 함부로 훼손하고,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파멸에 이른다. 신의 경고나 금기를 무시한 오만의 대가는 끝없는 고통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누군가에게 원한을 사는 행위를 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구조는 비극 서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며,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복수의 이야기는 우리의 전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배방읍 회룡리의 ‘황새바위 전설’은 연약한 존재의 원한이 얼마나 두려운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옛날 한 마을에 사냥을 즐겨 하는 사냥꾼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자신을 닮은 아들만 셋이 있었다. 아내를 닮은 예쁜 딸을 낳고 싶었지만 몇 년이 지나도 아이 소식이 없었다. 화가 난 사냥꾼은 사냥을 나가 소나무 밑에서 알을 낳고 있는 황새를 활로 쏘아 죽여 버렸다.

이후 그의 아내는 황새 한 마리가 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 후에 딸을 낳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건강하던 사냥꾼이 갑자기 사망하였다. 이상한 것은 사냥꾼 목에 난 알 수 없는 자국이었다. 그리고 이어 아내와 셋째 아들까지 목에 상처를 입고 목숨을 잃게 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첫째 아들이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은 원한을 품은 황새가 딸로 태어나 복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동생을 구하려면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밤에 파란 병을 여동생에게 던지라고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첫째는 여동생을 찾아가 스님의 말대로 파란 병을 던졌다. 그러자 파란 병에서 독수리가 나와 황새로 변한 여동생과 격렬하게 싸움을 벌였다. 결국 황새와 독수리는 치열한 싸움 끝에 모두 죽고 말았다. 첫째는 여동생이었던 황새를 해가 잘 드는 곳에 묻어주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황새 모양의 바위가 생겼다고 전해진다.

사냥꾼은 화풀이로 황새를 죽였기 때문에 그 원한으로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아내, 셋째 아들까지 잃게 된다. 이 이야기는 힘없는 존재라 하더라도 함부로 해치면 그 대가가 비극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으며 끝없이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비극은 스님의 개입으로 비로소 멈출 수 있었다. 첫째 아들은 복수가 이어지지 않도록 황새가 죽었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황새를 묻어주었다. 원한으로 계속된 복수를 만들어내어서는 안 된다.

옛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욕망으로 타인이나 자연을 해치는 행동을 하면 결국 자신에게 비극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한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혹 원한이 생기더라도 복수가 아닌 원한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노력이 더 큰 비극을 막아준다.

이러한 복수의 악순환은 결코 옛이야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최근 복수를 대신해 준다는 ‘보복 대행’ 조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기사가 이슈로 떠올랐다. 돈만 지급하면 어떤 보복이든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것이 과연 원한을 풀어 주는 통쾌함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을 뿐이다.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갈등은 피할 수 없고, 그것이 원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갈등이 생길 때마다 앙심을 품고 되갚으려는 선택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 복수에 앞서 원한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돌아보고, 보복이 아닌 이해와 절제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때로는 다소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감정을 절제할 줄도 알아야 더 큰 비극을 막는 길이다. 원한을 쌓지 않는 것, 그리고 이미 생긴 원한의 고리를 끊어내려는 노력, 그것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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