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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환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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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주(溫州)란 지명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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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3일(일) 15:58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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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일환(전 호서대 창의교양학부 교수) | ⓒ (주)온양신문사 | 흔히 구온양(舊溫陽)이라 불리는 온양6동에 가면 옛 온양군 관아가 있고 그 정문인 2층 문루(門樓)에는 ‘온주아문(溫州衙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여기서 ‘온주(溫州)’란 지역명은 역대 아산을 가리키는 지명(地名) 중에 공식적으로 사용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어떻게 저런 이름이 관아의 현판에까지 붙어져 있을까?
오늘날 아산은 삼국시대 이래 일제 강점기 초까지도 세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백제시대에 아술현(牙述縣)이 조선시대에 아산이 되고 탕정현(湯井縣)이 온양이 되었으며 굴직현(屈直縣)이 신창이 되었다. 그중 탕정현은 문무왕 11년(671)에 주(州)로 승격되어 탕정주(湯井州)가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오면 지명이 온수현(溫水縣)으로 바뀌었다. 탕정(湯井)이나, 온수(溫水)는 모두 온양온천(溫陽溫泉)이 지역의 랜드 마크가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온수라는 지명은 세종에 의해 온양(溫陽)이란 새 이름이 하사되기 전까지 조선 초기 내내 지명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온양을 지칭하는 지명은 역사적 문헌 속에 탕정, 온수, 온양이 전부인데 온주(溫州)라는 지명은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을까, 늘 궁금한 문제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명이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이미 사멸되어 지금은 사용되지 않지만 지리지(地理志)를 발간할 때 옛 지명을 사용해 명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아산도 고려시대 사용하던 지역명인 아주(牙州)를 사용해 『아주지(牙州誌)』라는 지리지를 발간한 적이 있다. 천안도 『영성지(寧城誌)』, 목천은 『대록지(大麓誌)』라고 옛 이름을 사용해 지리지를 명명하였다. 이런 사례는 고지명을 지리지로 되살려 옛 이름을 오래 기억하도록 할 목적에서 붙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 공식적으로 사용된 적이 없는 온주(溫州)란 지명을 관아의 현판에 써서 붙여 사용하는 것은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왕조가 성립하기 전에 고을 주(州)를 붙여 명명한 고을은 많았다. 조선이 개창하면서 태종 13년(1413)에 주(州)를 붙이는 지명은 대체로 인구가 많고 관할지역이 넓어 계수관(界首官)에 해당하는 큰 고을에 한정하였다. 충청도의 경우는 청주(淸州), 충주(忠州), 공주(公州), 홍주(洪州) 등이 큰 고을이었다. 이런 지역을 제외한 작은 고을에 주(州)라는 지명이 있으면 산(山)이나 천(川)을 붙여 개명하도록 조처하였다. 고려시대 아주(牙州)였던 지명이 아산(牙山)으로 바뀐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반면에 고려시대부터 온수(溫水)였던 지명은 조선시대에도 변화없이 온수현으로 불려졌다. 세종 23년(1441) 4월 국왕은 질병 치료를 위한 온천욕을 목적으로 온수현을 두 번째로 찾아왔다. 치유 효과가 좋았다고 판단되자 세종은 기쁜 마음에 ‘온양(溫陽)’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새로 하사하고 읍격(邑格)도 현(縣)에서 군(郡)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온양은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지명의 변경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온주라는 이름이 출현해 관아의 현판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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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온양 6동에 있는 온양군 관아와 온주아문 현판 | ⓒ (주)온양신문사 | |
공식적인 지명이 아니라는 것은 온주라는 지명이 별칭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문헌을 찾아보면 온주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확인되는 사례는 현종 9년(1668) 8월 충청도 도사가 된 이옥(李沃, 1641~1698)이 그해 가을 현종의 4차 온행을 호종하고 나서 이를 기념해 동료들과 병풍을 만들어 간직하며 <온천계병후서(溫泉契屛後序)>라는 서문을 작성하는데 이 글에 온주(溫州)라는 지명을 사용하였다.
이후 19세기에 들어 이명오(李明五 1750-1836)가 영조 4년(1728)에 무신란(戊申亂)이 발생했을 때 온양 유생 강대(姜玳)가 반란군에 저항하며 기의(起義)하였다는 사실로 인해 순조 14년(1814)에 지평으로 증직되자 이를 축하하며 ‘강대가 온주인(溫州人)’이라고 그 출신을 밝히고 있다. 또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이상적(李尙迪, 1803-1865)이 철종 14년(1863) 7월에 온양군수로 부임하며 지은 시에 온주라는 지명이 나온다.
이러한 사례를 종합해 보면 온주란 지명은 온양의 별칭으로 임란이후 현종대부터 서서히 사용되다가 19세기에 이르러 더욱 빈번하게 불려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온주아문의 현판을 쓴 것도 김상학(金商學, 1838~1899, 자(字)는 정백(正伯), 호(號)는 만제(晩齊))이라는 분이 썼다는 것을 리한구 선생이 밝힌 적이 있다(온양신문 288호, 2007.6.16.). 이것은 더 조사를 해보아야 하지만 아무튼 온주라는 지명은 19세기에 와서 온양을 더 큰 고을로 높이는 별칭으로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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