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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분열된 둘(2)이 아니고 합해진 하나(1)이며 우리나라 역시 분열된 둘(2)이 아니고 합해진 하나(1)이므로 통일운동을 하기 위하여 명사로부터 그 지도를 받고자 서울자문밖에 계신 “유영모”선생을 찾아갔다. 그때가 1975년 2월 초순이다. 「유영모」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리어 찾아간 현암 최병제와 수암 이용우 등 필자에게 질문하시기를 “하나(1)가 무엇이냐? 하나는 작은 수의 첫째단위이며 큰 것을 의미하면 우주를 자칭하는 것입니다. 둘(2)은 무엇이냐? 둘은 음양(陰陽)이치를 의미합니다. 셋(3)은 무엇이냐? 셋은 천지인(天地人) 삼재를 말합니다. 넷(4)은 무엇이냐? 넷은 춘하추동(春夏秋冬)을 지칭하는 것이며 집을 세울 때에는 네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다섯(5)은 무엇이냐? 다섯은 생수이며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오행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니까 “여섯은 무엇이냐? 여섯은 성(成)수입니다.” 하니까 아무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고개만 끄덕끄덕 하시더니.. “종교가 비대해지면 자연히 정치에 관여 하게 되고 정치인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종교인들을 이용하게 됩니다.「함석헌」은 내 제자인데 종교를 신앙하면서 글이나 쓰라고 지도 했는데 요즘 소문을 들으니 정치에 관여하고 있다고 하여 야단을 쳤지, 정치에서 손을 떼지 못하면 내 집에 오지 말라고 심하게 꾸짖었지. 찾아간 우리역시 거절을 당한 것 같았다.” 「유영모」선생은 기독교 「YMCA」를 초창기부터 지도하신 분으로 유명한 분이였다. 「함석헌」선생 댁을 방문했다. 작은 조립식 건물 남쪽 서재에서 원고를 쓰시고 계셨다. 역시 통일 문제를 말씀드렸더니 함석헌 선생이 하시는 말씀이 “통일문제 참으로 좋은 뜻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박 정권)이 말을 못하게 하고 있으니 우선 말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말을 해야 통일운동도 할 수 있는 게 아닙니까?” 할 수 없이 필자는 당시 야당 생활을 했던 친구 인산 하제홍을 통하여 필자와 수암 이용우 현암 최병제 3인이 김대중씨를 심방하고 통일선언 초안문을 제시하니까 김대중씨는 자기가 주장한 통일 삼대원칙이란 소책자를 주면서 서로 읽어보고 후일 다시 만나자고 하여 작별했다가 얼마 후 다시 찾아갔다. 필자는 말하기를 “통일은 전 인류가 하나가 돼야 하지만 우선 우리나라부터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가 통일을 하자면 먼저 국호(國號)와 국기(國旗)부터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쪽에서는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고 국기는 인민공화국기라고 하며 남쪽에서는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하고 국기는 본래의 태극기를 국기라고 하고 있으니 이것부터 통일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말을 많이 하던 김대중씨는 말을 중지하고는 “뉴스시간이 되면 꼭 뉴스를 들어야 하니까 그만하자”고 했다. 아마도 필자가 박 정권의 첩자로 오인한 것 같다. 자기 자신이 박 정권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 처지이면서 “잘해보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힘껏 도와주겠다.”고 호언장담하니 신빙성이 희박하여 의탁 관염을 버리고 춘암 박인호 선생의 제자 49인은 통일선언 장소를 천도교 별관인 우이동에서 할까 했으나 친일파 최 린의 추종자들의 반대로 별관에서 하지 못하고 1975년 3월 10일 10시에 의암 손병희 선생묘소에서 통일선언식을 거행하고 동아일보에 보도했다. (상해임시정부수립일은 1919. 4. 10 이다) 얼마 후 한국 종교협의회(천주교는 교황청 승인이 없다하여 불참함)에서 통일선언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종교통일을 선언했다. 이 사건으로 각 종단 대표들은 당시 중정으로부터 압력을 받았으나 그 내용에 대하여는 생략한다. 다만 주동한 춘암 박인호 선생 제자 49인에 대하여는 아무런 박해가 전혀 없었으며 지금은 49인 중 생존자는 불과 5인뿐이다. 이다음에는 통일선언서 사본을 게재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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