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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임시정부 요인중 생존하셨던 ‘조경한’선생께서 필자와 김석원(유교대표) 씨 등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말씀을 더듬어 본다면, 일제시대 때에 일시적 애국의지로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일경에게 발각되여 형무소 생활을 하던 중 형무소에서 일경에게 회유와 설복 당하여 일본쪽으로 전향한 후 그들이 일본인 보다 더욱 악독하고 악랄하게 행세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도리어 독립운동자들의 활동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8·15해방이 되자 일제시 한때 형무소 생활한 것과 재판기록만을 내세워 자기들이 조선독립운동에 참여했다고 과시하면서 애국선열 대열에 슬그머니 가담한자가 다수였으니 독립기념관에 애국인사로 기록된 인사들을 재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인사들이 알고있지만 일제시 일경 고등계 형사로 근무하면서 독립운동자는 물론 애국자를 혹독하게 취조했던 사람들이 8·15해방 후 다시 대한민국 경찰에 들어가 애국자 일부인사를 좌익분자로 몰아부처 악행을 자행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불행한 역사라 하겠다. 예산지방에서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윤병구 의원의 증언이다. 8·15해방 후 초대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다. 그 당시 그 지방 여론이 지암 정환석 선생이 출마한다면 다른 출마 희망자들은 모두 출마를 포기하고 정환석 선생을 무투표 당선을 시키자고 합의하고 그 추진과 주선을 윤병구씨가 하라고 하여 윤병구는 지암 정환석 선생을 찾아가 그 뜻을 말했으나 지암 선생은 일언지하로 거절했다. 거절이유는 첫째가 자기는 정치꾼이 아니고 둘째는 조국이 남북으로 양단된 상태에서 반쪽자리 국회의원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지암장의 부인을 찾아가 같은 뜻으로 간청했으나 그 부인 역시 말하기를 지암은 반쪽자리 국회의원은 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거절했다. 할 수 없이 초대 국회의원은 성원경 선생이 했으며 제2대 국회의원은 윤병구 자신이 했노라고 했다. 지암 정환석 선생이 필자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를 황석공소서(黃石公小書)의 글에서 첫째가 명성쇠지원(命盛衰之原) 즉 성쇠불상(盛衰不常)하고 둘째가 통성패지단(通成敗之端)즉 성패유수(成敗有數)하고 셋째가 심치란지기(審治亂之機) 즉 다스리고 어지럽히는 것은 성쇠불상과 성패유수가 있기때문에 앞서 말을 못하고 넷째가 지거취지절(知去就之節) 즉 나가고 물러가는 것은 반드시 의(義)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다시 새겨서 알기 쉽게 말하면 첫째가 세상만사는 반드시 성하고 쇠하는 기복이 있어 떳떳하지 못하고 둘째는 모든 일에는 성이고 쇠하는 운수가 있으며 셋째는 정치는 잘하고 잘못하는 것은 앞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며 넷째는 벼슬길에 나가는 일이나 그 자리를 물러나는 경우에도 반드시 의(義)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직 어진자는 구차스럽게 옳지 않는때에 나가서 제몸을 팔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가난하고 가난하더라도 비록 산전을 일구어 조밥을 먹을 지언정 자기 지조를 지키다 죽는것이 뜻 있는 선비가 가는길이라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1975년 4월 10일 의암 손병희 선생 묘소앞에서 춘암선생 제자 49인이 타의에 의해 분열된 조국통일과 세계평화통일을 시천주(侍天主) 즉 인내천(人乃天)주의와 사인여천(事人如天)사상으로 하자고 동아일보를 통하여 만천하에 통일 선언한 사상의 원류(源流)라 하겠다. 현실 인심상태로 보아 바보중 상바보 같은 주장이지만 현실인심으로는 조국통일과 세계 평화를 염두에서 외면한채 자기들 욕구충달에만 광분하고 있는 듯한 세태가 잘못된 서세쪽으로만 자꾸 기울어지는 듯 하여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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