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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균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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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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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17일(목) 11:11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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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홍승균(홍가신기념관 관장) | ⓒ (주)온양신문사 | 그동안 운동이라 하면 새마을운동, 금 모으기운동,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을 떠올릴 뿐 꾸준한 목운동(?)에 치중하였어도 그다지 절박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지만, 어느덧 억지로라도 땀을 내야 한다고 충고를 듣는 시기를 맞이하였다. 누군가가 자리에 끼워주지 않는 날만큼은 저녁에 꼭 걷기로 작심하고는 저녁 운동이라는 나름 대견한 저녁 어스름 시간을 만들고 있다. 같은 길을 매번 걷는 것보다는 변화를 주면서 고향 아산의 내음을 만끽하는 시간은 쏠쏠한 즐거움이 그만이다.
매일 오후 3시 반에 정확하게 산책을 하였다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산책을 통해 주변 사람이 시계를 맞추었다고 전한다. 엄격한 규칙적 생활패턴을 하였다지만 그는 장가도 못 간 사람이고 해가 왕성히 떠 있어 한참 활동할 시간에 참 한가롭다고 비꼬면서, 나의 산책길에 그럴싸한 명분을 부여하고 자찬하였다. 생각건대 칸트의 산책길의 주안점은 변하지 않음에 있는 것 같다. 변하지 않은 모습에 변하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늘 같은 풍광과 낯익은 길을 걸으면서 편안함과 익숙함을 만끽하였고, 그 시간을 통해 차분한 성찰과 지적 구상이 가능했을 것이다. 무려 칸트까지 소환한 나의 산책길을 칸트처럼 흉내 내 보았다.
달려온 오늘 하루를 잔잔하게 복기하고 내일을 살피는 침묵 속의 발걸음은 요란한 간판과 음악이 있는 거리나, 사람들 대화 소리 복닥이는 길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더욱이 개를 앞세운 애견인이 어르는 소리가 섬찟 경계를 주는 길보다 한적한 산책길은 매번 선물처럼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칸트를 흉내 내는 저녁의 산책길은 석양 노을의 아름다움이 복에 겨우면서도 반면 하루살이의 끝없는 공격을 대거리해야 했다. 규칙적인 일상을 만들어가려는 스스로가 꽤 건전한 모습인 양 위안 삼으면서, 건강과 노화 방지 그리고 강퍅해지는 성질머리를 조금이나마 다스리는 방안이라 생각하였다. 다채롭게 걷던 길 중에 최애 산책로였던 모종동의 초록빛 들녘길은 이제 본격 건물군이 올라가기 직전까지 진행되어 토목공사로 흙빛에 덮여 있다. 한바탕 영화가 상영될 듯, 붓의 휘갈김이 진행되어 빛나는 명화 한 점이 그려질 듯 공백 도화지같은 상황이다. 밥그릇을 빼앗긴 듯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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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에 새로 찾아내어 달달한 포만감을 불러낸 나의 산책길에서는 어느 날부터인가 시굴 조사가 듬성듬성 진행되어 또 위기감을 준다. 풍기지구라 불리는 온양천변! 이곳은 신도시 개발을 하기 전 약 2% 정도의 부지를 할애하여, 지층에 문화유산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단다. 시굴 조사 현장은 한바탕 굉음과 먼지 자욱한 대규모 개발을 치르기 위한 예고편이요, 사전경고처럼 경고음을 올린다. 수년 전 탕정면의 공단 조성 시에도 선사유적이 다량 출토되었던 사례를 비추어, 저녁에 어렵사리 산책길로 개발한 풍기지역의 온양천 물가 주변에서도 유적이 나올 확률이 없잖아 있을 듯하다. 개발업자는 공사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으니 혹시나 그 어떤 옛 유구가 나올까 걱정스러울 게다.
지금은 사라진 모습이지만 마치 여름 수박을 구입하기 전에 세모지게 따서, 잘 영글었는지 살펴보는 모습과 비슷하다. 아무 소득이 없어서 원대한 계획대로 공사를 강행하고픈 이에게는 곤욕스러운 일이겠지만 온양천변의 오랜 인류 조상의 흔적이 나와주어서 아산의 옛 삶의 현장에 대한 꿰맞춤이 가능해졌으면 하는 한구석 희망을 가져본다. 탁 트인 허공에 건물 올리는 것에서 창조와 미래 그리고 발전이 보이지만 땅속을 들여다보는 것에서는 나의 뿌리, 근본 그리고 정체성이 제시된다. 꼭 우리 지역의 옛 흔적으로부터 아산의 정체성을 찾기에는 경계구분도 없던 시절의 깊이가 너무나 멀다. 지층의 유적이 드러나는 일은 도시화되어 가꾸어지기 전에, 지금의 지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옛 현장에서 먼 인류의 삶을 추상하는데 의미가 있다
앞서간 이야기이겠지만 땅속에서 무언가 나와준다면, 훗날 전시장의 구성에는 최근의 박물관 전시의 트랜드처럼 지금의 지세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사진 자료와 영상이 가미되었으면 좋겠다. 오랜 옛날 그들 삶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되면 본격 개발 이전의 지형과 모습은 자료 가치로 중요할 수 있다. 머지않아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어버리고 물길을 반듯하게 하며 언덕을 깎을 것이기에, 변형되지 않은 고유의 형세에 따른 오랜 옛사람들의 생활상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세상의 넓고 넓은 터전 중에서 유독 옛사람의 흔적이 잔존하고, 그들의 유구가 남아있는 집터나 삶의 흔적을 만나게 되노라면 무언가 에너지가 다른 짙은 기운이 느껴진다. 삶이 있었기에 그만한 온기가 남아있는 탓이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선사유적관에서 가장 빛나는 청동기 유물 중의 하나는 바로 우리 아산 신창면 남성리에서 나온 청동검 및 선사 유물이다. 당시 과수원이었던 남성리의 발굴 장소는 아산의 우리도 생소한 만큼 하물며 그 어떤 외부인은 상상할 수 없게 바뀌었다. 귀하디 귀한 청동기 유물은 서울의 중앙박물관에서 알뜰히 챙겨갔고, 석조 유구조차 그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대형 아파트의 정문에 위치한 발굴지 그 장소로서는 청동기 시기에 군림한 족장의 위상을 가름할 수 없을뿐더러 삶을 영위했던 옛사람들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유물만 빛날 뿐 위치성, 역사성에 치명적 하자를 안은 채 상징적이고 중요한 정보는 망실하였다.풍기지구에서 만일 돌칼이 나온 들, 구리거울이 나온 들 남성리의 전철을 밟는다면, 그 터에 육중히 올라설 수십 층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줄 리 만무하고 심드렁한 사건 정도로 매듭지어질 것이다. 실제로 의외의 결과가 드러난다면 아산시의 문화 자산을 축적하는 이상의 의미로 가치 있게 매듭지어지기를 빈다. 악착같이 자연과 사투를 벌이며 가족을 지켜내고 또 다음날과 다가올 계절을 대비한 삶의 자국들. 훗날 후손들이 발굴하여 추적하라고 남긴 흔적은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의 우리에게 드러낸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땀과 소망이 간절했던 기운이 여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도 아주 오래전부터 누군가 살았다’라는 외침이다!
그래서 풀이 무성한 저 들판의 땅속을 발굴하는 그 현장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천정부지 내딛는 수도 서울과 수도권 인근의 부동산에 모아진 관심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이질감으로 무겁게 불편함을 주는 현 세태에서, 그들의 땅과 이곳의 땅에 가치 차등이 없었을 옛 시기가 많은 생각을 가져온다.
곧 유물의 출토와 무관하게 개발이 본격화된다면 수년 내 이 모습은 더 이상 흔적을 남기지 않고 새롭게 변신할 것이다. 그러면 이런 여유로운 밤 산책도 먼 추억이 될 것이니 벌써 조급해진다. 이미 나의 정답던 산책길 중 모종동 논두렁을 잃었는데 결국은 여느 도시민의 일상처럼 보도블럭길을 강요받게 될 듯 싶다. 당장 새 휴대폰의 기능에도 쩔쩔 매는 입장이다 보니, 시대 흐름이 너무도 급격한 즈음 과거 수천 년 동안 진행된 변화보다 최근 수년간의 변화가 헤아리기 어렵도록 여실한 현실 앞에서 숨이 벅차오른다. 근시일 내에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풍광을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긴다. 그렇게 아산의 한 단면은 또 마감을 지으며 전혀 다른 색채와 분위기로 덧칠될 것이다. 그 들판에 딱히 개인적인 어릴 적 추억은 따로 없다. 다만 먼 옛이야기까지는 달리 방법이 없다손쳐도, 사진으로나마 간직하고자 아쉬운 산책길을 담게 된다.
전국의 박물관에 가면 예외 없이 많은 선사유적을 만날 수 있다. 그 속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이 까마득한 시절의 인류 흔적이 고스란하다. 남자들은 사냥을 하고 집을 지으며, 여자들은 곡식을 찧고 음식을 조리하고 아이를 보듬었던 삶의 흔적. 그들은 대한민국과 무관하였으며 더더군다나 충청도, 아산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그저 우리네 조상들이다. 우리가 오늘날 그어놓고 구분 지어서 ‘아산의 조상님’으로 규정지었을 뿐.
요식행위일 뿐이라 여기고 일사천리로 불도저를 투입하고픈 개발업자와 동상이몽이겠으되 여기저기 네모지게 묏자리 파듯 구멍을 내고 속을 들여다보는 현장을 매의 눈으로 관심을 갖는 필자 같은 이도 간혹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개발이 왕성하고 변화무쌍함이 어느덧 주변의 일상이 된 아산에서는 의외의 역사적 발굴이라는 부산물이 함께 주어진다.
떡본 김에 고사를 지내는 건가? 손 안 대고 코를 풀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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