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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환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토정 이지함(李之菡)의 예언과 조태만(趙泰萬)의 응조당(應潮堂)

2026년 07월 01일(수) 17:31 [(주)온양신문사]

 

↑↑ 김일환(전 호서대교수)

ⓒ (주)온양신문사

아산의 지리지인 『신정아주지(新定牙州誌)』의 「고금총록(古今總錄)」을 보면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아산 현감으로 부임해 백성들을 위해 헌신적이고, 모범적인 목민관으로 복무하다가 순직한 토정 이지함(李之菡)이 남긴 흥미로운 예언이 하나 실려 있다.

그 내용은 토정이 아산향교를 옮겨 지으면서 “백년 후에 미륵천(현 곡교천)에 조수(潮水)가 밀려오면 인재(人才)가 발흥(勃興)하리라”는 것이었다. 곡교천은 늘상 밀물과 썰물이 교차해서 들고 나는 곳이라 조수(潮水)가 밀려올 때라거나, 백년 후라는 예언 시기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지는 않다. 아마도 스나미처럼 해일(海溢)로 인해 바닷물이 밀려와 큰 수해(水害)를 입히는 재난 상황을 상정한 것 같다.

그렇다면 자연재해의 발생이 어떻게 인재의 발흥이란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다만 미래에 아산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될 것이란 이 예언은 후대에 아산 지역의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음은 틀림없다.

조선 후기에 이 예언을 믿고 아산에서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 사업을 실행한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조태만(趙泰萬, 1672~1727)이다. 조태만은 본관이 양주(楊州)이고 호는 고박재(古朴齋)라 한다. 아버지는 호조참의 조가석(趙嘉錫)이며, 동생은 소론(少論)의 5대신 중에 한명인 조태억(趙泰億)이다. 조태만의 부인은 숙종대 도승지를 역임하고 아산 염치 독정촌에 살았던 풍천임씨(豊川任氏) 임홍망(任弘望)의 딸이다. 18세기 조태만의 집안은 서인(西人)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의 수뇌부가 공존하는 집안이었다. 동생 조태억은 소론의 지도자였지만, 조태만은 장인 임홍망과 함께 노론이어서 소론으로부터 탄핵당하기도 하였다.

조태만은 송시열의 고제(高弟)인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에게 수학하였다. 동문인 외암 이간(李柬, 1677~1727), 천서 윤혼(尹焜, 1676~1725)과도 돈독한 친구 사이여서 이들 간에 왕래한 편지가 많다. 그는 거의 유일지사(遺逸之士)로 지내다 1717년(숙종 43) 학행으로 돈녕부 참봉(敦寧府參奉)에 제수되었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1722년(경종 2) 또다시 돈녕부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세제(世弟) 익위사 시직(翊衞司侍直)에 임명되었다. 당시 세제는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인데 자신을 낮추어 어진 선비를 대접하고 학문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관직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조태만은 소론 김일경(金一鏡)과의 갈등이 깊어 그가 앉은 자리를 불태우고 그의 겸종(傔從)을 두들겨 팬 사건으로 이들의 공격을 받아 내시교관(內侍敎官)으로 좌천되었다.

그 후 영조가 즉위하자 조태만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1743년(영조 19) 영조는 "옛말에 이른바, ‘세상은 모두 흐리지만 나는 홀로 맑다.’는 것을 내가 조태만에게서 보았다. 그가 성질은 간혹 과격하나 그 사람은 유일(遺逸)인데, 소론 김일경의 자리를 불사른 한 가지 일에 이르러서는 또한 그 기개를 볼 수 있었다. 특별히 자급을 올려 증직하고, 그 자손 또한 조용(調用)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이것은 영조가 동궁 시절에 자신을 가르치던 조태만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이러한 조태만은 임홍망(任弘望)의 딸과 혼인한 후 한때 처가가 있는 아산으로 내려와 독정(獨亭, 독징이 마을, 현재 염치읍 동정리)에 살며 ‘응조당(應潮堂)’이라는 이름의 학당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장인 임홍망의 사촌 형인 임홍량(任弘亮)의 『폐추유고(敝帚遺稿)』라는 문집에 「응조당서(應潮堂序)」가 실려 있다. 처의 당백부인 임홍량이 조태만을 위하여 서문을 지어 준 것이다.

『신정아주지(新定牙州誌)』에도 다음과 같은 사실이 실려 있다. “조태만은 아산의 염치 동정리에 살던 임홍망의 사위가 되어 처가가 있는 염치면 독정촌(獨亭村)에 내려와 살았다. 그는 아산 지역의 교육사업을 위해 초가집 두어 칸을 짓고 ‘응조당(應潮堂)’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토정의 예언을 받아들여 조수에 대응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읍중(邑中)에 관동(冠童) 30여 명을 모아 아침저녁으로 글을 가르치고 초하루와 보름마다 방강(放講)하니 원근에서 이 소문을 듣고 배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크게 진작할 가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시기하는 사람이 있어 한 마을을 시끄럽게 하여 독천(獨擅)하고자 하니 여러 서생들이 흩어져 돌아가고 학사가 텅 비게 되었다. 조태만은 세도(世道)가 어찌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의 장인 임홍망에게 하직을 고하고 한필의 말을 타고 돌아갔다. 당시 식자(識者)들이 이것을 애석하게 여겼다 한다”는 내용이다.

위에서 보듯이 구체적인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아산에서 훌륭한 인재를 양성해 보겠다는 조태만의 원대한 꿈은 당대에 실현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현재 곡교천을 중심으로 아산에는 순천향대, 선문대, 호서대가 위치하여 수많은 미래의 인재들이 양성되고 있다. 또 곡교천의 지천인 매곡천 가에는 삼성 자사고와 충남 외고가 자리 잡아 미래의 영재들이 열심히 공부하며 꿈을 키우고 있다. 아산이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될 것이라는 토정 이지함의 예언과 조태만의 꿈이 현재 실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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