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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萬物)은 각기(各其) 나름대로 본성(本性)이 있다. 불(火)은 아래에서 위쪽으로 상승하는 기운(氣運)이 있고, 물(水)은 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며 형평(衡平)을 유지한다. 초목은 태양광선을 따라가며 뿌리는 땅속에 있는 영양을 찾아간다. 또한 식물도 수면을 해야한다. 특히 들깨나 참깨 같은 식물은 밤에 전기불을 항상 환하게 밝혀주면 결실을 못하고 잎만 무성하게 성장한다. 동물들은 먹을 것만을 찾고 있다. 그래서 입이 땅쪽만 향하고 있다. 그러나 고등동물은 앞을 향하고 횡적(橫的)으로 됐다. 특히 인간은 만물 가운데에서 가장 신령(神靈)한 것이 사람이라고 성현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다. 인간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있다. 동물들에게는 삼강(三綱)과 오륜이 없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점차 인간의 가치성에서 멀어져 일반동물과 유사하다고까지 혹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물짐승도 제 새끼를 보호하고 있으며 위험에 처하면 제 목숨을 회생시키면서 새끼를 보호하는 본능이 있다. 그런데 몰지각한 사람들은 생활이 좀 어렵다고 자식을 버리고 자기를 생육(生育)해준 부모까지 헌신짝 버리듯 하니 송구스럽다. 우리나라의 교육수준이 세계에서 뒤지지 않는 1급 대열에 낀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진짜 교육은 뒷전으로 하고 영어, 수학에만 치중하고 있으니 불상(不常)한 일이라 하겠다. 이런 일들이 모두가 마음 하기에 있다. 도대체 마음은 무엇일까?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선생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외유기화(外有氣化)에 접영지기(接靈之氣)하고 내유신령(內有神靈)하여 강화지교(降話之敎)가 참된 마음(心)”이라고 했다. 이 말은 새겨보면 밖으로는 화(化)하는 기운과 신영한 영에 겁한 기운이 있고, 안으로는 신령한 강화(降話)의 가르침이 있는 즉 신령한 가르침의 말을 내리는 것이 마음(心)이다. 그래서 말하고 웃는 것은 조화(造化)고 선악(善惡)한 마음은 기운(氣運)이며, 사람의 수족동정은 귀신(鬼神)이라고 했다. 주역(周易)에서도 귀신은 무엇이냐? 천지 역시 귀신이요, 귀신역시 음양이라, 사람의 수족동덩이 귀신이라고 했다. 그래서 본래의 마음(천심)을 지키고 본래의 하늘 기운(氣運)을 바로하지 못하면 사욕(邪慾)에 사로잡혀 미로(迷路)에서 방황(彷徨)하게 된다고 했다. 잘하고 못하고 선악의 성패도 마음하기에 있다. 그래서 선현들께서는 심학(心學)을 말씀했다. 욕심은 무한정하다. 소인일수록 욕심 때문에 스스로가 파멸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자연계도 인간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병들고 있다. 쌍용회사의 노사분쟁은 노사 모두가 위험한 길을 가고 있다. 살기 위한 욕심 때문이라고 하지만 지나친 욕심이 투쟁의 씨가 됐다. 그래서 법치(法治)보다 덕치(德治가 좋지만 덕치를 주장하는 정당이나 지도자가 없다. 덕치관념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오양하는 다음이 있었다면 평택 쌍용의 분쟁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작은 위험에 처하면 아버지 어머니를 찾지만 큰 위험을 당하고 죽게 되면 하느님 살려달라고 한다. 그래서 옛말에 임사호천(臨死呼天)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했다. 즉 죽음에 처하면 하느님을 부르는 것은 사람의 떳떳한 정이라고 한다. 이것이 모두 마음하기에 있다. 하느님은 아주 먼 곳에 계신게 아니라 바로 자기 마음속에 계시며 풍로상설(風露霜雪)의 변화는 하느님의 의지에 따른 조화(造化)라고 한다. 허공에 떠있는 밝은 달이 멀어보이지만 자기 마음속으로 들랑날랑 할 수 있으며 지구가 아무리 광대해도 자기 손바닥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사리판단을 함에 있어 용이할 것이다. 이것저것이 모두 마음하기에 달려 있다. 정해진 법 테두리 안에서만 요리저리 생각하는 것이 법률가의 사고방식이라면 우주를 상대한 철학자들은 법률가를 올챙이 학자라고 평한다. 이것 역시 마음하기에 있다. 하느님의 존재여부 역시 자기 마음하기 여부에 있다. 그래서 하느님은 자기 마음속에 있다고 봐야한다. 그래서 인시천(人是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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