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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균의 [행복한 아산만들기]

여름방학과 난중일기

2025년 08월 26일(화) 08:53 [(주)온양신문사]

 

↑↑ 홍승균 홍가신기념관 관장

ⓒ (주)온양신문사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면서 하늘의 변화에 민감한 여름을 지나고 있다. 매미소리 들리고 뜨거운 햇살에 힘겹다가도 입추와 처서가 지나서인지, 조석으로 찬바람이 부는 것에 문득 여름의 종식이 느껴진다. 몸으로 기억되는 이 시기가 되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하여 미소 짓게 된다. 방학의 끝무렵과 개학이 주는 오랜 스트레스가 떠올라서 그렇다.

겨울방학과 달리 여름방학은 짧았지만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고, 물놀이도 즐기면서 정녕 방학이 주는 해방감을 만끽하던 어린 시절이 뇌리에 뚜렷하다. 그러나 달력을 볼 때마다 잔뜩 받아 안은 방학 숙제를 마감해야 할 시기는 째깍째깍 다가오니 그 당시 부담스레 억누른 심적 압박은 은근 대단했다. 그래도 구릿빛으로 그을은 얼굴이 되고 곤충채집을 하느라, 친구들과 들판에서 잠자리채를 휘저으며 하얀 솜에 곤충을 배치하고 알코올 주사를 찌르던 소중한 추억이 흐뭇한 미소를 띠게 한다. 그러나 큰 문제는 ‘일기’였다.

일상을 챙겨서 기록하느라 작문하는 고충도 큰 부담이지만, 매일 일기를 쓰기에 버거웠던 방학 중의 고약한 숙제! 새 학기 개학이 다가오는 즈음에는 어느덧 일기가 아니라 회고록이 될 수밖에 없음이다. 가장 난처한 것은 그날 그날의 날씨가 기억될 리 없고, 지나간 방학 중의 일상을 떠올릴 수 없으니 일기는 창작 작문이 되고 만다. 날씨! 지금은 검색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당시에는 정말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소소한 자신의 기록과 흔적은 누군가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고충이었다.

요란한 놀이로 즐거웠던 날이라면 쓸 이야기가 풍부할 수도 있지만, 그중에도 평범한 날에 대해서는 딱히 일기를 작문할 소재가 빈곤할 수밖에 없으니 펼쳐진 일기장에 한숨뿐이었다. 요즘의 아동들처럼 학원 수강과 TV 시청 그리고 게임에 몰두한 방학이라면 더더욱 일기는 고역스러운 골칫덩이로 다가올 것 같다. 새로움과 변화로운 추억거리가 없는 평범한 일상에서 감상을 곱씹고 정제한 글을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억지 일기에서는 작문의 정성과 진실성이 담겨있을 리 만무하다.

어린 마음에도 ‘일주일에 특별한 일이 있었을 하루 정도’만 쓰게 해 준다면, 스스로 돌아보며 성찰하고 되새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불평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숙제를 부여한 선생님께서 의도하신 작문 실력의 배양은 마른 수건 짜내듯 해서는 발현되지 않는다고 나름 정연한 의견을 가지고 일기의 폐해를 투덜거렸던 일이 생각난다.

필자는 아산이 고향이고 염치읍 백암리가 외가였던 만큼 다른 고장의 사람에 비해 현충사를 한결 많이 갔고, 사내의 눈인지라 현충사 유물관에 전시된 이순신의 장검을 우러러보며 자랐다. 또 난중일기 앞에서는 공의 필체를 붓 선에 따라 그리며 성장했다. 이순신 장군도 일기를 쓰셨다니 모든 옛 조상네들은 다들 일기를 쓰는 줄 알았다. 더욱이 필자의 선친도 늘 무언가를 쓰시는데 게으르지 않으셨던 모습이셨다. 다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조금 더 성장해서야 발견하였다.

낭랑하게 책 읽던 선비들이라 하여 모두 일기뿐만 아니라 글을 쓰지 않았다. 정신을 탁마하고 올곧은 실천을 추구하던 우리의 옛 조상들이라도, 결코 독서와 세 치 혀 그리고 미사여구의 시를 읊던 데서만 선비정신이 발현되지 않는다. 난중일기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은 무인이지만 그저 칼 휘두르며 호령만 하는 장군적 위세만으로 완성된 인물이 아니다. 적일지언정 살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 정연한 당위와 엄히 제장들의 군기를 확립하고, 공과에 단호히 처분하는 냉정함은 평소의 확고부동한 자기 확신이 갖춰져야 한다. 그것이 장군 이순신을 낳았다. 이순신의 장검이 주는 섬뜩한 검광에서 ‘장군’스런 충무공의 육중한 기개가 전해지고 왜놈을 쓸어버린 통쾌함으로 다가왔다면, 난중일기를 대할 때마다 위인 이순신의 섬세함과 ‘와! 장군이 참 성실하셨구나’ 싶었다.

현대사회에서도 모든 직종에 임하여 정리 정돈은 필수사항이다. 난중일기는 죽고 사는 일이 다반사인 치열한 전쟁터에서, 그것도 사령관이 직접 기록하였다는 데서 그의 치밀한 면모와 반듯한 성정을 엿볼 수 있다. 그릇된 사고와 삿된 행실은 의를 벗어나는 일이므로 하루의 일상을 마무리하고 저녁에 일기장을 펼쳤을 때 당당히 붓을 들 수 있는 것은, 스스로는 물론이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일기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어머니 그리고 가족을 생각하고 또 당시의 심경을 진솔하게 기록하는 이에게 낮 생활의 방종은 자기 자신에게 용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주)온양신문사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의 정초로부터 장군이 노량에서 전사하신 이틀 전까지의 기록이다. 마치 전쟁의 시작부터 끝을 예감하여 기록한 듯 시기 자체가 영험한 기록물이다. 또한 난중일기는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보고서가 아닌 비망록이었다. 그래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초서로 썼으며, 일부 글자의 판독이 어려운 정도였던 것을 훗날 정조 임금 때 정식으로 정리하면서 『난중일기』로 명명하게 되었다. 기록(일기)을 초서로 썼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배려가 불필요한 그만의 일기였음이 확인된다.

이것이 혼자만 볼 일기장에 스스로 삼가고 떳떳할 수 있는 자신감이다. 성실성이 으뜸이요, 성찰하는 삶이 돋보이는 현장이다. 이순신이 애국애족의 정신에 입각한 역사 정신으로 후손을 위해 난중일기를 썼을까? 500년 후 후손들이 자신의 일기의 자구 하나하나를 해부할 것까지 감안하여 가급적 멋진 모습과 성공사례와 지적표현에 애쓰지 않은 글이 난중일기이다. 자신에게 치밀했고 마음을 침잠하며 정리 정돈했음이다. 저녁마다 스스로 자신만의 거울을 펼치는 일은 조국과 백성과 가족과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당당할 만큼 경책하는 삶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의주까지 몽진한 왕실과 조정의 후원이 없는 상태에서 자력으로 군사를 조달하고 양성하며, 전투를 대비하고 또 충무공의 휘하로 피난 온 수많은 양민의 삶까지 책임져야 했던 외롭고 고충스러운 무게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달빛 아래 술 한잔에 넋두리하기에는 시대 상황이 너무도 절박했고, 늦은 밤 일기를 펼쳐 들고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또 고민하였던 처절한 현장이 담겨있다.

가끔은 현충사에 가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천천히 친견해 보자. 어느 순간 글을 쓰는 일이 귀찮아지고 일상을 정리함에 소홀해질 때 파도치는 전함 속에서도 기록에 소홀하지 않으신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보면 경책의 계기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유년기의 학생들에게 유독 일기를 숙제로 내어주는 이유 중에는 정리 정돈의 습관이나 성실성의 고취, 작문 실력을 함양하는 데 있겠지만, 최근에 부각되는 또 다른 문제점은 현대 학생들에게 대두되는 반듯한 서체의 문제이다. 학창 시절이야말로 학습 과정에서 글씨를 쓰는 일이 많다 보니, 나름의 필체가 확립되고 후천적인 노력이 가미되지 않는 한 성인이 되어도 각자의 필체는 평생을 이어가게 된다.

요즘 청소년들의 글씨체를 보노라면, 말쑥하고 한껏 멋을 부린 외모와 확연하게 다른 삐뚤빼뚤 글씨가 놀랄 만큼 조악하다. 자신감 없이 기어들어 가듯 움츠린 글씨인데다 숨으려는 것처럼 글씨가 무척 작아서 인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붓으로 글씨를 쓰던 시절! 우리는 서예를 예술이라 일컬었는데, 글씨 자체를 순수한 예술로 인정하는 문화권은 한·중·일 동북아시아 지역의 특색이었다. 한국이 서예라고 하였다면, 중국은 서법, 일본은 서도라 부르지만, 글씨 쓰는 일을 예술이자, 학문이자, 철학이자 인품으로 여기기는 정서는 세 나라 모두 동일하다. 글자 한자 한 자에 인품을 담고 철학을 담아야 하고 학문을 갈고닦고 자기 수양을 철저히 해야 진정한 글씨가 나온다고 여겼다. 서예의 대가 추사 김정희 선생은 ‘만권의 책을 읽어야 한 획의 글씨가 나온다’고 하였다. 그만큼 글씨는 형태가 아니라 글씨를 쓴 사람의 철학을 보는 것이며, 쓴 사람의 체취와 인간미가 풍긴다. 그래서 서예는 품격이며 마음자세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감옥을 출감하던 날의 난중일기는 딱 한 마디 ‘옥문을 나왔다’라고 쓰여있다. 토로하고 싶은 말이라면 책 한 권도 부족할 그 심경에서 그날의 일기는 이 한 줄로 함축된다. 또한 ‘ㅇ월 ㅇ일 일기 : 맑음’ 이순신 장군도 별일 없는 날의 일기 내용이 이러했다.

가슴에 담고 입술에서 뇌는 바를 글을 짓고 또 써보자! 숙제로서의 일기가 아닌 정말로 쓰고 싶은 일기를 쓰는 방학이었으면 좋겠다. 일기의 교육적 효용은 새삼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일기가 부담되는 숙제가 되었다면 의미 없는 짐덩이에 불과하다. 우리 아산의 후배들은 휴대폰 사진과 좋아하는 가수의 CD로 꾸려진 학창 시절과 청춘기 추억의 책장에 자기의 고뇌와 느낌 그리고 소망을 담은 손글씨 글, 일기, 작문집으로 채우고 간직하기를 바란다. 반드시 쓰고 싶을 때 쓰인 글이라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에게 소중하고 또 들춰보게 된다.

가을은 지금도 독서의 계절일까? 아산의 학생들은 곧 다가올 가을이 오면 TV나 게임보다 독서를 많이 하고, 이어서 맞이할 겨울방학의 일기에 대거리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어제는 아련하고 오늘은 번다하며 내일은 설렘이 적은 나이다. 찬 바람이 불고 단풍이 물드는 계절이 와도 심드렁하게 맞이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방학 숙제 걱정은 아련한 옛 추억이 되었지만, 올 가을에는 그리운 벗에게 문자 메세지나 카톡이 아니라 손으로 꾹꾹 눌러쓴 손 편지를 띄워볼까 한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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