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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도 미움도 버리고 바람같이 물같이 살다가자 동물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성질이 있다. 그러나 같은 공통점도 있다. 그것은 바로 공기를 호흡해야 생존한다는 것이다. 공기는 따로 따로가 아니라 똑같은 공기다. 사람 역시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 동양 공기 따로 서양 공기 따로가 아니다. 만약 공기가 부족했다면 하루살이가 황소보고 왜 내가 호흡해야 할 공기까지 네가 전부 호흡하느냐라고 항의할 것이다. 그러나 공기는 무진장 있기 때문에 공기문제로 다투지는 않는다. 사람을 위시해서 모든 동물이 공기속에서 살면서 공기를 보지 못하고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면서 물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보이면 활동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기의 고마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에 대한 고마움도 같다. 그러한 것이 모두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로(雨露)의 고마움을 전혀 모르고 있다. 자연현상은 곧 하늘의 섭리다. 사람들이 그 속에서 생존하면서 하늘의 고마움을 전혀 모르고 있으며 다만 자기 잘난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하늘의 영기(靈氣) 속에서 살면서 하늘을 멀리하고 있다. 하늘을 섬기면서도 직접 섬기지 않고 간접으로 섬기고 있다. 기도를 하되 하늘에게 직접 기도를 하지 않고 누군가를 거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무속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당을 통하여 기도를 한다. 물과 공기를 간접으로 마시고 호흡할 수 없듯이 하늘을 섬기고 기도하는 것도 이와 같다. 종교문호(宗敎門戶)가 다르면 의식(儀式) 문화도 다르다. 의식은 다르지만 귀일(歸一)점은 결국 같다. 목적지를 갈 때 어느 사람은 걸어서 가고 어느 사람은 뛰어 가고 어느 사람은 기차를 타고 어느 사람은 자동차를 타고 어느 사람은 달구지를 타고 어느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간다. 동쪽에서 가는 사람, 서쪽에서 가는 사람, 남쪽에서 가는 사람, 북쪽에서 가는사람, 따로따로 가지만 목적지점은 똑같은 것이다. 종교가 다양하지만 귀착점은 동일하다. 함에도 불구하고 옳다 그르다 시시비비하여 허송세월만 한다. 진리(眞理)를 알고 보면 별게 아니다. 이 세상 현실을 거부하고 저쪽 세상에 가본들 거기도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천지이치에 순응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생애를 살다가 영(靈)은 공계(空界)로 보내고 육신은 산하대지로 간다. 그것이 일생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러한 것을 알면서도 옮기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운명이다. 갑(甲)의 운명을 을(乙)이 대신 할 수 없고 을의 운명을 갑이 대신할 수 없다. 동물의 운명을 인간이 대신할 수 없고 인간의 운명을 동물들이 대신할 수 없듯이 이리저리 할 수 없는 것이 운명이다. 함에도 무리를 모으고 편을 짜서 갑론을박하면서 우리편은 옳고 당신편은 틀렸다, 우리편이 민주주의고 당신편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니 같이 할 수 없다하여 국토가 남북으로 양단된지 어언 반 세기가 지났다. 그동안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쟁과 혈육들이 헤어져서 살아야 하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집단적(集團的) 욕심행위의 충돌때문이다. 이제부터는 과거의 과격한 잘못을 서로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앞으로는 화해를 하면서 조국의 평화와 발전을 기대해보자. 죽어서 천당에 가지말고 살아서 살고 있는 이세상에 지상천당을 건설해보는 것이 어떤가? 나옹선사의 시구(詩句)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욕심도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자”고 했다. 얼마나 좋은 뜻인가? 물과 공기가 없으면 모든 생물은 살수 없으니 그의 의미또한 심대(深大)하다 할 것이다. 불쌍한 인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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