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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균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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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침문(弔針文) 그리고 김칫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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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3일(토) 11:29 [(주)온양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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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홍승균 홍가신기념관 관장 | ⓒ (주)온양신문사 | 조선 순조 때 유씨 부인이 쓴 고전수필문학으로 규방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조침문(弔針文)! 학창 시절 썩 모범생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조침문이 떠올랐다. 조선시대 한 여인이 무려 27년이나 아끼고 애용하던 바늘이 부러지자, 어느 날 부러져서 용도를 다한 바늘을 보며 애도와 회한을 서술한 내용이다. 지극히 제한적이고 억압적인 조선사회의 여성이 드물게 남긴 여류 문학의 장르이다.
조침문의 바늘은 홀로 된 여인이 자녀도 두지 못한 채 생계를 유지하느라 긴요하게 애지중지하였고, 긴 세월을 함께 하면서 깊은 정이 들었으나 어느 날 부러지고 만다. 여인은 이를 몹시 안타까워하면서 혼절할 정도로 슬퍼하면서 깊은 슬픔에 잠긴 끝에 바늘을 의인화해서 제문형식으로 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과서로부터 접했던 그 당시에도 조침문을 원전으로 읽은 적이 없으면서 불현듯 떠오른 것은 어머니의 김칫돌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마당이 있고 장독대가 있는 가옥으로부터 현재는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계신다. 오랜 살림의 경력은 어지간한 부엌살림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는 뚝심으로 자부하였으나, 이제는 며느리가 해다 주는 김장을 맞이하며 예리한 평가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아파트 욕실에서 하얀 플라스틱 바구니의 물속에 잠긴 돌덩이를 발견하였다. 둥글 넓적하여 흡사 제과점의 맘모스빵처럼 생긴 잿빛 돌은 한동안 기억 속에 잊었던 김칫돌이었다.
첨단 김치냉장고가 가정마다 한자리씩 꿰차고 있는 시절에 그 돌덩이는 무척이나 낯설었다. 짠지와 김치 등을 누르는 돌의 용도는 항아리 대신 김치냉장고의 네모진 김치통에서도 여전히 유효한가 보다. 김장철을 맞아 물에 담그는 일은 시큼한 짠지의 냄새가 잔뜩 배어있는 돌을 희석시키는 과정이다. 마치 손님맞이 갈비찜을 하기 전에 핏물을 빼느라 담가놓은 생갈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식이 해온 김장을 맞이하는 어머니의 당연한 김치맞이 절차였었나 보다.
장독대를 떠난 지 오래라는 생각이었지만 아파트로 이주하신 지 이미 상당하거늘 아끼던 장롱이나 구식 재봉틀 등 많은 생활용구 그리고 항아리를 처분하면서도 저 돌까지 챙겨 오신 줄은 몰랐다. 남정네들은 반찬 타박은 능하더라도 상큼한 김치맛의 비결은 도무지 알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이들이고 나 또한 딱 그 수준에 불과하구나 싶었다.
저토록 후덕한 넓적 모양이 되기까지 수 만년 세월 동안 갈고 닦여 만들어진 부드러운 김칫돌은 김치 누르는 역할에 앞으로도 그 얼마나 소용될지 모르겠다. 세상에 흔하고 흔한 것이 돌이지만, 이 돌은 많은 용도 가운데서도 하필 김치 누르는 돌이 되어, 컴컴한 독 안에서 시큼하고 뻘건 김치를 누르며 지낸다.
어머니는 그 김칫돌을 수십 년 전 계모임에서 갔던 여행길에서 산에서 주워 왔고, 무거운 돌을 집까지 들고 오느라 고생했던 기억을 낱낱이 이야기하신다. 그 모습에서, 포기할 수 없는 주요 살림살이의 하나요 오래도록 김치맛을 보듬어주는 고마운 존재로 여김을 알 수 있었다. 조침문에서도 너무도 아끼며 애지중지한 바늘을 잃자 『자식이 귀하나 손에서 놓을 때도 있고 비복(婢僕)이 순하나 거슬릴 때도 있나니』 하면서 날렵하여 실망시키지 않았던 바늘을 못내 그리워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느 날 산중에 자유분방하게 있던 넓적돌은 하필 나의 어머니 눈에 간택이 되어 우리 앞마당 항아리에 갇혔다. 감옥보다 더 열악한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의 수고로움을 마감시켜주고 싶지만, 언감생심 어머니로부터 허락이 떨어질 일은 난망이다.
불교경전의 하나인 초발심자경문에서는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만들지만,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든다”는 문구가 있다. 많은 돌들이 주인을 만나는 데 따라 천양지차 고생을 한다. 돌중에 누구는 온돌방 구들장이 되어 늘상 지져지는 고충을 감내해야 하는 반면, 장엄한 성벽의 일원이 되어 위아래 양옆에 꽉 들어찬 돌 틈에서 답답해한다. 하물며 건물의 육중한 기둥을 떠받치느라 어깨가 짓눌리는 초석의 고초는 또 어떠한가?
김칫돌을 보면서 새삼 ‘쓰임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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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온양신문사 | |
흔히들 어린이를 가르칠 적에 “장래 큰 동량이 되거라!” 하며 축복하고 또 훈육한다.
육중한 아름드리 재목은 모든 쓰임새에 대한 구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즉 누군가 어느 단체나 조직으로부터 어떠한 자리와 임무를 맞이하더라도 재단하여 훌륭한 쓰임새가 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하고 열심히 스스로를 가꾸라는 의미일게다. 동량이 되고자 하는 청춘의 노력에 상응하는 길을 제시하고, 허황된 쓰임을 강요받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은 모두 한결같을 것이다.
우리는 1년 전에 일어난 경천동지할 사건으로 인해 선택과 진행된 향배에 따라 평가받고 또 단죄되는 현실에서 온 국민은 어느 한날도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을 잃었다.모두가 우등한 성적으로 남들보다 앞선 출셋길에 올랐을 인사들이 연일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몸둘 바 몰라하는 모습을 번번이 대하는 요즘이 먹먹한 현실이다.
여전히 정치인들의 험악한 현수막 문구가 거리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가운데 한편 아무개 아들 딸이 00 대학, 누구는 또 00 대학 갔다면서 자랑하고 공치사하는 현수막이 거리를 덧씌운다.
더욱이 입시학원에서 내건 현수막을 보면 그 학원 출신생이 특출한 대학을 갔다며 자랑하는 현수막도 한자리를 보탠다. 세칭 SKY대학을 나오면 한국 사회에서 동년배들과의 경쟁선상에 이미 출발선을 넘어 오십 보를 앞서가는 인생인 양 여기는 것이 엄연한 오늘의 세태이다.
잠도 못자며 눈을 비비고, 하고 싶은 일 참아낸 아산의 멋진 후배들이 이룬 성과가 보다 건강한 우리 사회에서 좋은 쓰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부디 빌어마지 않는다.
누구는 김칫돌이 되고 싶어 되었는가? 누구는 거룩한 석조미륵불이 되어 세세토록 떡과 과일이 즐비한 가운데 예경을 받고 또 누구는 묘지 비석이 되어 수백 년전의 망자를 알려주며 묘역에 을씨년스럽게 벌을 서듯 지켜내고 있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주체의식을 가진 후배가 누리에 밀알이 되는 쓰임새를 기원한다.
어머니께서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김칫돌의 고충을 보면서도, 무뚝뚝한 나보다 ‘우리 엄마’에게 각별한 쓰임의 존재가 되어있는 김칫돌이 대견한 초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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