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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씨와 처세 행위는 때에 따라 참으로 간교(奸巧)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경우에 따라 예외가 아닐지도 모른다. 자기를 좋게 칭찬(稱讚)하면 기분 좋게 느껴지고 좋지 못한 허물이나 단점을 지적해주면 마땅치 못하게 생각하며 말해준 사람을 도리어 기피한다. 이러한 것들이 따지고 보면 생각이 부족한 소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씨라 하겠다. 옛글에 맹자께서 하신 말씀이 “자기를 좋게 칭찬 하는 사람은 자기의 적(敵)이고 자기의 잘못함을 일깨워주는 사람은 곧 자기의 스승”이라고 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가급적이면 상대방에게 기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칭찬하는 쪽으로 말하기가 용이(容易)하지만 단점을 지적하는 말은 하기 어렵다. 친숙한 처지나 세의 관계가 돈독한 처지라 할지라도 말해주기가 어렵다. 앞뒤 생각 없이 남의 단점과 허물을 함부로 흉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 상관없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심양(心量) 없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가해지심(加害之心)이 전혀 없는 사람의 말이라면 그 사람의 말은 곧 스승의 말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심대평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말하기가 어려워도 대의를 외면하고 충청인을 배신하는 처사는 당연히 말렸어야 했다. 심대평의 잘못은 보좌인들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인 일시지분(刃一時之忿)은 면 천일지우(免千日之憂)란 말이 있다. 즉 한때 분(忿)함을 참으면 일천날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심대평 같은 사람이 좀 참았으면 앞으로의 근심은 면했을 것이었다. 운자하방오부지(運自何方 吾不知)란 말도 있다. 심대평의 운세(運勢)가 어디에 있는지 심대평 스스로가 알지 못 함이었나? 누구나 자기 운명에 따라 자기의 성쇠기복(盛衰起復)이 점철(點綴)되는 것도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에 있다. 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유, 관, 장(유비, 관운장, 장비)삼인이 대의(大義)를 위하여 생사를 같이 하기로 하고 형제의 의(義)를 맺고서 도원(桃園)에서 맹세했다. 책사 제갈공명을 맞아드리기 위하여 삼형제가 세 번씩이나 찾아가 애원하여 맞아 들였다. 대업(나를 세우는 일)을 성취할 때까지 수많은 고초와 여러 번 죽음의 고비도 많았다. 그러나 유, 관, 장 3인은 조금도 대의를 외면하거나 버리지 않았다. 형제의 의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비록 소설에 있는 말이지만 대의를 지키고 강조한 점은 우리들 사회인에게 의미거대(意味巨大)한 교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요즘 우리사회는 의리(義理)에 관한 관념(觀念)이 희박(稀薄)한 사회로 퇴락(退落)했다고 하여 무리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옛 말에 하인을 잘 둬야 대감이 출세한다고 했다. 대감을 잘 보필(輔弼)하거나 보좌(補佐)하자면 쓸모 있고 눈치 빠른 하인을 잘 둬야 한다. 하인을 잘못 두면 그 하인들은 대감을 보필하는 것 보다 자기들 이익을 챙기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하인을 잘 두고 못 두는 것에 따라 대감의 출세와 성패가 달려있다고 한다. 자치단체의 장이나 각종 위원들도 보좌보필(補佐輔弼)하는 아랫사람을 잘 둬야 할 것이다. 그들이 배반하면 수습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니 깊이 생각해야 한다. 행위적 진실과 양심은 곧 자기 마음속에 있다고 하겠다. 아마도 심대평 주변에 있는 보좌인 중에는 제갈양 버금가는 책사(策士)가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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