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4월 28일부터 5월 3일까지 치러지는 올해 아산성웅이순신축제는 각별하다. 그간 유망축제로 치러져오다가 한 계급 강등된 채 치러지게 돼 각오가 새로운 면도 있지만, 충남도와의 공동개최, 수도권전철 개통후 처음 치러지는 축제라는 점 등에서 예년과 다른 면이 있다. 특히 근자에 이순신장군 고택터가 경매에 오르고, 또 관련 유물들이 암시장에 나돌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도는 등 어지러운 가운데 다시한번 아산과 현충사, 이충무공의 위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겠다. 순천향대학교 김기승 교수는 수년전 ‘이순신 정신의 본령은 아산이다 - 이순신의 내면세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이 논문중 특히 아산과 이순신이란 인물 재조명을 위해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 전재한다. 즉,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이순신의 태도 중 ‘이순신에게 어머니는 하늘 그 자체였다’와 ▲유교적 이상주의자 이순신 중 ‘성웅 개념은 재정립되어야 한다’가 그것이다. | | | ▲ 이순신장군의 유년기를 보냈던 현충사 내 고택. 이곳에서 이순신장군은 엄격한 아버지와 항상 이해하고 감싸줬던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내면세계를 형성했다. |
이순신에게 어머니는 하늘 그 자체였다
이순신에게 있어 가족은 부양해야 할 대상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였으며, 전쟁을 위한 궁극적 목적이었다. 이것은 어머니와 아들의 죽음에 대한 그의 태도에 잘 나타나 있다. 1597년 4월 16일 백의종군하기 위해 서울에서 아산에 도착한 직후, 그는 여수에서 배를 타고 오시는 병든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소식을 듣고 울부짖으며 할 말을 잊어버렸다. 그는 호곡하면서 ‘빨리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다’라고 했다. 또 어머니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천리나 떨어져서 종군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 보면서 또다시 어머니에 대한 불효죄를 떠올리었다. 1597년 5월 6일 꿈 속에서 작고한 두 형이 나타나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떠났으나 누가 장례를 치를 것인가하고 서로 부둥켜 안고 통곡했다고 했다. 이 꿈에서 깨어난 뒤 그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서럽게 울었는데 눈물이 엉겨 핏덩이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하기를 ‘하늘이여 막막하나이다. 나를 홀로 남겨두지 마소서! 어찌 빨리 죽게 하지 않으시나이까?’라고 했다. 낙마 꿈꾸고 아들 면 죽음 소식 들어
1597년 10월 14일 간 밤에 낙마하는 꿈을 꾼 뒤 저녁에 막내 아들 면의 죽음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 때 그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다. 봉한 것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아찔하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뜯고 열(둘째 아들)의 편지를 보니 겉에 통곡 두 글자가 씌어져 있어 면이 전사했음을 짐작했다.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놓아 통곡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는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사니 어찌 이리도 이치에 어긋나느냐? 천지가 캄캄하고 밝은 태양의 색깔이 변했구나. 슬프도다 내 어진 자식이여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특한 기가 보통 사람을 넘어서니 하늘이 세상에 남겨두지를 않는구나. 내가 지은 죄, 화가 네 몸에 미쳤구나. 지금 나는 이 세상에 살아 있으면서 장차 무엇에 의지할꼬? 죽어서 너를 따라 지하로 가서 함께 통곡하고 싶구나. 그러나 네 형과 네 여동생과 네 어미 또한 의지할 데 없구나. 잠시 참고서 생명을 연장할 밖에. 마음은 죽고 형체만 살아 있구나. 울부짖을 뿐이다. 하룻밤이 일년같구나. 하룻밤이 일년같구나.
가족은 현실 경계없는 그 이상 이 글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은 꿈과 현실을 소통하며, 이승과 저승을 왕래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은 죽음을 통해 또는 죽음을 넘어서면서까지 실현해야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파악되고 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의 삶은 참다운 삶이 아니라 껍데기뿐인 삶이라고 보고 있다. 이제부터 자신의 삶은 정신적 삶이 아니라 형식적 삶, 나머지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한 그러한 삶이라고 했다. 이순신에게 있어 마음이나 정신은 시간이 갖는 한계,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는 것, 그리하여 이승과 저승을 왕래하는 진정한 그 무엇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어머니’이상의 신성한 존재 가족 중에서도 어머니는 이순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였다. ‘난중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어머니였다. 그런데 그에게 어머니는 어머니 이상의 신성한 존재였다. 그가 어머니를 지칭할 때, 노당(老堂), 병친(病親), 근(覲), 친(親) 등 일반적인 표현을 사용한 사례는 7차례에 불과하다. 나머지 90여회 이상은 ‘천지(天只)’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바로 하늘’, ‘하늘 그 자체’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데, 어머니가 곧 하늘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에 있어 어머니의 존재는 하늘 바로 그 자체였다. 노당이나 병친으로서의 어머니는 봉양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하늘 그 자체’로서의 어머니는 자신의 성공은 물론 고뇌, 죄, 실패 등 인간의 한계를 감싸안을 수 있는 그러한 존재였다. 성장기 이순신에게 있어 어머니는 자신의 희망과는 달리 유학공부를 강제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항상 이해하고 감싸줬던 이해와 포용을 상징하는 사랑의 존재였다. ‘난중일기’에서 아버지 관련 기사는 5회 내외에 불과하지만, 어머니 관련 기사는 100회 이상으로 나온다. 이순신에게 있어 어머니는 절대적 존재였다. ‘천지’라는 용어는 ‘시경’의 용풍(?風)편에 나온다. 이 시는 사랑하는 임이 있음에도 재가를 해야하는 처지에 있는 여인의 마음을 노래한 시이다. 이 시에서는 자신의 처지를 큰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한조각의 배에 비유했다. 그리고 외롭고 고독하지만 사랑하는 임을 향한 일편단심은 변할 수 없다는 자신의 마음을 하늘같은 어머니가 하늘처럼 헤아려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이 시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되는 ‘모야천지(母也天只) 불량인지(不諒人只)’ 즉 ‘어머니는 바로 하늘, 나의 마음 몰라 주네’라는 구절에서 ‘천지’를 따온 것이다. 큰 강에 외로이 떠있는 배는 이순신이 바다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어머니를 천지라고 표현한 것은 곧 어머니가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남김없이 헤아릴 수 있는 하늘과 같은 존재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가족은 지극히 사적이며 정서적인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유교적 가치의 근원인 하늘과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공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정신의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가족을 통한 시간적 소통의 확대는 고대의 요순시대를 이상으로 하는 유교의 상고주의와 연결되는 것이었다. (본내용은 김기승 순천향대 교수의 설화문학에 실린 논문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