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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창고에서 꺼내 본 빛바랜 신문이 오히려 풋풋하기만하다. | | | ▲ 1989년 7월 13일 온양아산신문 창간준비 3호. 창간준비호는 5월 발행했다. | 20년전 당시 온양시와 아산군으로 분리돼 있어 제호조차 2곳을 합쳐서 사용했고, 첫 머리 글자만 따서 지은 ‘온아신문’이라는 제호도 이채롭다. | | | ▲ 1989년 9월 2일. 주간 온양아산신문 창간호. 당시 총무처장관이던 김용래 전 장관의 광고가 눈에 띈다 | 지방자치를 거세게 외치던 당시 주민의 염원을 담아 ‘지방자치를 선도하겠다’는 다짐의 1면 글자도 눈에 띈다. | | | ▲ 1990년 2월 26일. 온양타임즈 창간호 | 중간에 ‘온양타임즈’가 또다시 생겨났지만 이듬해 2개의 신문을 합병하는 결단을 보이면서 온양신문은 지역의 역사와 함께 20년을 지켜왔다. | | | ▲ 1991년 10월 31일. 온양아산신문, 온양타임즈 합병호. 온아신문 | 발행인도 긴 시간만큼이나 여러 명이 참여했다. 1989년 창간준비호에서부터는 이하원씨와 김정환, 윤정남, 이준권씨가 경영과 편집을 총괄했으며 그 후 신홍철, 리한구씨가 그 전통을 이어왔다. 94년에는 과감히 제호를 온양신문으로 바꾸고 지역의 20년 현대사를 기록했다. | | | ▲ 1994년 5월 21일 '온양신문' 제호 사용 | 지역신문의 위력은 92년 최초의 지방의회 구성과 함게 본 궤도에 올랐다. 살림살이 하는 의회를 주민은 궁금해 했고, 온양신문은 그 위력을 발휘했다. | | | ▲ 1999년 5월 26일 온양신문 창간10주년 기념호 | 그 후 95년 기초자치단체장까지 선출하는 제도가 확립되면서 지방자치제의 서막과 함께 없어서 안될 신문이 됐다. 그게 20년이다. 때로는 올곧은 폭풍으로, 날카로운 지성으로, 굴곡진 인고의 세월을 지켜왔다. 그것이 ‘내 친구’ 온양신문이다. 더 오래도록 사랑해도 좋지 않겠는가.
<창간기념축시> 더 큰 걸음으로 나라의 중심, 이 아름다운 고향 아산에서 태어나 궂고 험한 가시밭길 마다 않고 해 뜨는 아침부터 달 뜨는 저녁까지 지역 곳곳을 누비던 온양신문 그 태동이 엊그제인 듯 한데 어느덧 스무 해 인고(忍苦)의 성상(星霜)을 지나왔구나
곡교천과 아산만의 푸른 물결 영인산, 광덕산의 장엄한 자태 거기에도 사나운 폭풍우와 뼈를 깎는 아픔 무수히 이어졌지만 오늘 저리 면면히 흐르고 꿋꿋하게 서 있음은 바로 이 고장의 젖줄로, 그리고 수호자로 이 고장을 가슴으로 사랑함 아니겠는가
충무공의 백의종군 고균의 이국땅에서의 서러움 장영실의 천대 받음을 우리가 잊지 않음은 그들이 성공해서가 아니라 척박한 풍토를 이겨낸 그 자체 그 의지와 실천 때문 아니겠는가
온양신문이 지나온 스무 해 그 날도 물론 그러했으리 거센 파도와 칠흙 같은 어둠과 시기와 질투, 모함과 거짓 그 모든 질곡(桎梏)이 흔들고 또 흔들었어도 여기 이 따스한 고장, 아름다운 사람들 그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 그리고 가슴 뜨거운 사랑이 오늘 이토록 듬직하게 공든 탑을 쌓아왔구나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수고한 오늘을 쉬게 하고 더 힘껏 일할 내일을 위한 새로운 다짐이 있음이듯 여기 스무 해 힘차게 달려온 온양신문 지난 날 돌아보며 아주 작은 쉼표 하나 찍고 고개 마루에서 땀을 훔치네
이 나라의 중심은 내포 내포의 핵심은 이 고장 아산 쿵쾅거리며 돌아가는 이 나라 맥박 속에 아산과 아산인의 피와 땀도 함께 돌아 25만 시민 더욱 커져 50만, 100만이 큰 영광과 큰 환희를 함께 하리라.
여기 스무 해 달려온 온양신문 아주 작은 쉼표 하나 찍고 더 큰 걸음으로 달려가리라.
임재룡 / 본지 기자. 한밭시조문학회·가람문학회·문협아산시지부(설화문학회)·아산시인회·광장문학 회원. 학생문학현상공모(수필) 당선, 전국한밭시조백일장 장원, 전국중앙시조 백일장 입상, 송강정철 추모백일장(동아일보) 금상, 오늘의문학 신인상(시), 월간광장 신인문학상(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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