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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균의 [행복한 아산 만들기]

민영상 송덕비

2024년 01월 15일(월) 16:04 [(주)온양신문사]

 

↑↑ 홍승균(홍가신기념관 관장)

ⓒ 온양신문

아산의 온천동 시내는 늘 대규모 개발의 소문이 무성하여 여기저기 신설 주거단지의 건축이야기가 맴돌고 있다. 그중에는 실제 진행되어 엄청난 높이의 마천루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으며, 근간 완공이 되면 도심의 인구분포를 바꿀만한 세대의 주거단지도 건설되고 있다. 하지만 공사를 위해 철거를 마친 그랜드호텔이나 옛 싸전자리를 비롯하여 더 이상의 진척이 없는 곳도 눈에 띄니, 을씨년스럽게 최근의 경기동향을 반영하는 듯하다.

입을 떡 벌릴 만큼 솟아오르는 건물군의 높이에 비해, 필자의 눈에는 지상에서 오며 가며 자주 만나는 옛사람의 짙은 흔적이 있다. 바로 ‘민영상의 송덕비’이다. 온양제일관광호텔은 아산에서도 대표적인 호텔 중에 하나이고 온천동 시내 중심부에 소재하고 비교적 높은 고층건물이라서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제일호텔의 정문과 주차장 입구는 육중한 석조 조형물을 쌓은 형태로 치장하였는데, 주차장 정문의 우측에 문패처럼 세워져 있는 것이 바로 민영상 비이다.

이 비석은 관찰사민공영상청덕영세불망비(觀察使閔公泳相淸德永世不忘碑)라고 새겨있는데, 주인공 민영상(閔泳相, 1829~1910)은 대한제국 시대의 인물이다. 그는 여흥 민씨 명성황후의 조카에 해당하는 항렬로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판서, 내무아문대신, 충청도 관찰사(1886.3 ~1889.3)등의 관직을 지냈다.
민영상에 대한 송덕비는 이곳 온천동뿐만 아니라 아산의 영인면 성내리 비석군 중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충북 괴산에도 있고 또 충청감영이 있었던 공주의 공산성 금서루 입구에 세워있는 비석군 중에서도 찾을 수 있다. 즉 이곳저곳에 민영상의 선정을 칭송하고 감사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 셈이다.

통칭 송덕비(頌德碑)는 선정비, 영세불망비, 자선비 등의 여러 이름으로 세워지는데, 우리 아산지역에서는 온주동 비석군과 신창면 비석군, 영인면 비석군, 영인면 성내리 비석군, 공세리 비석군 등에 모아놓은 옛 비석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집단으로 모아있지 않고 별도로 세워진 비석까지 합하면 우리 아산에는 매우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런 모습은 비단 우리 고장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송덕비가 세워져 있는데, 특히 조선말엽 전국적으로 송덕비를 너도나도 건립하는 풍조는 당시 위정자에게 뒤질세라 남겨야 할 유행의 한 단면이기도 하였다.

선출직인 현재의 지방관리에 비해 당시에는 길지 않았던 위정자들의 임기였다. 하지만 그들 재임 중의 고마운 선정에 대해 임기를 마치고 떠난 관리를 회상하며, 시민들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자발적으로 건립하고 덕을 칭송한 것이 송덕비의 취지이다. 현대사회에 비해 팍팍하고 더 힘겨웠던 우리의 조상네 삶에, 이렇듯 감사할 일이 많은 지방나리님들이 즐비하였을까를 생각한다면, 육중하게 세워진 송덕비의 존재가 반드시 본 취지에 부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심지어는 본인이 현업에 있는 임기 중에 지역의 토호들을 종용하여 번듯한 송덕비를 제작하고 비릿한 미소를 지은이가 속출하여 국가에서 전국적으로 송덕비의 난립을 금지시켰다는 기록도 전한다. 그러니 진정으로 선정을 베풀었고 시민들의 훈훈한 뜻의 발로에 기인하여 세워져, 후대에도 칭송받아 마땅한 비석의 당사자는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온천동 시내는 고층 건물의 건립추진과 온양관광호텔의 개발에 영괴대와 신정비 그리고 온양온천역 광장의 이충무공기념각이라는 존재로 인해 상충되는 제한의 논쟁이 있어 왔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민영상의 송덕비는 조선왕조 내내 온양행궁으로 자리하였고, 일제강점기 이후 전국적으로 각광받는 관광지로 개발되었던 곳의 지근거리에 오늘날까지 세워져 있다는 점이 매우 생소하다. 더욱이 6.25 한국전쟁시에는 온천동 일대가 폭격으로 인해 불바다가 되었으며, 온양행궁의 혜파정 등 건물들도 전화를 견뎌내지 못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영괴대비와 신정비만큼이나 네모 반듯하고 멀쩡한 민영상 송덕비의 생명력 또한 경이롭다고 하겠다.

↑↑ 제일관광호텔의 주차장 입구 송덕비

ⓒ 온양신문


↑↑ 제일관광호텔의 주차장 입구 송덕비

ⓒ 온양신문

민영상과 송덕비의 건립에 대한 기록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고종실록에 민영상의 장계에 따라 고종 26년 (1889) 2월에 평택현과 직산현의 진결(陳結 묵은 논밭에 세금을 거두는 조세)에 3년간 세금을 면제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서 이런 연유로 1890년에 송덕비가 세워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온양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 지금의 위치는 송덕비의 건립취지와 부합되지 않고, 호텔 측 관계자도 여러차례 구조변경 공사 때마다 비석을 딱히 처리하기에 애매하여 구석에 세워놓았을 뿐이라는 답을 주고 있다.

한 인물이 당대에는 물론이요 후손에게 영원히 자기 이름 석자가 잊히지 않는 수단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주변이 머리를 조아리도록 드높게 출세하여 고위 관직을 하거나 특별한 사회적 화제의 주인공이 되는 등의 방법이 있겠지만, 그 명성이 곧 너른 칭송과 자신의 보람으로 점철되어야 가치로울 것이다. 그 이름이 누군가의 가슴에 참 온기로 남겨있고, 뇌리 속에 고마움과 교훈의 존재로 기억되어야 스스로도 떳떳한 일일 것이다.

여기저기 많이 세워있는 ‘민영상’이라는 인물의 송덕비를 바라본다. 생전의 실존인물에 대해 비석을 세우는 일은 당사자의 양해가 결부되어야 그 의지에 따라 반영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당대의 권세를 가진 이의 송덕비였다.

그런데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민영상이라는 인물이 명성황후와 종씨라는 외척가문이지만, 민영상의 아들 은 이조참판을 지낸 민종식(閔宗植)으로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홍주에서 의병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는 사실이다. 민종식의 처남은 함께 의병활동을 도모하다 송악면 역촌리에서 일제에 피살된 수당 이남규이며, 당시 함께 의기투합하였던 또 다른 지사는 아산의 독립운동가 곽한일 의병장이었다. 민종식이 보여준 민족정신의 발현은 결국 부친 민영상의 가르침으로부터 형성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되어, 민영상의 송덕비가 권력자에 대한 탁한 아부의 소산이 아니었기를 믿고 싶은 마음이다.

올해처럼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허리를 굽히고, 특히 지역 어르신들께 아산시민으로서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있으신지 살갑게 살핀다. 노인의 힘은 곧 투표권에 있다. 그러나 선정의 대상은 그분들만 있지 않을 것이다. 고되고 추운 계절을 지나고 있는 즈음, 소설 ‘ 키다리아저씨 ’ 같은 존재를 기다릴 미래의 세대에게도 살가운 아저씨가 되어주는 것 또한 비석에 이름 석자 새기는 것보다 보람스러운 일일 것이다.

우리 아산 사람들은 다른 고장에 비해서 ‘ 호텔 ’이라는 공간이 매우 익숙하다. 쉽게 드나들기 어렵게 비싸고 고급진 호텔을 우리 아산시민들은 사람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면서, 여러 행사 때마다 자주 애용하는 친근함이 있다. 아산시민은 목욕도 폼나게 호텔에서 한다.

기라성 같은 건물이 솟아있는 빌딩 가운데 숨은 그림 찾기처럼 안전하게 돌기둥으로 감싸있는 민영상송덕비! 아산의 수많은 송덕비와 각종 비석에 비해 역대 임금의 흔적이 묻어있고 영괴대와 신정비가 빛을 발하는 온양행궁의 바로 옆에 있는 민영상 비는 좀 더 의미로워 보여 소중하다. 특히 제일호텔을 갈 일이 있다면 오며 가며 민영상 송덕비를 한 번쯤 관심 있게 살펴보면 어떨까 싶다.

↑↑ 영인면 성내리 비석군

ⓒ 온양신문


보고 배운다 했다.
우리가 선조의 얼을 오롯이 유지 보존 노력하여, 그 자취를 보듬어야 우리 후손들도 오늘의 우리를 기 억해 줄 것이다. 다가올 미래에는 우리 이름을 꼭 돌에 새기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온양신문사 기자  ion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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